그들은 왜 척박한 땅으로 향했나(전편)
그들은 왜 척박한 땅으로 향했나(전편)
2017.10.02 09:00 by 최태욱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이웃의 문제를 듣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복지체계의 손발이 되어주는 현장 활동가들이죠. 누구보다 귀한 일을 하는 손길이지만 이들의 처우·인식·업무환경은 여전히 박하기만 합니다. <더퍼스트미디어>에서는 9월 7일 ‘사회복지의 날’을 맞아 각 분야 복지 현장 활동가들의 고백을 통해 그들을 재조명하는 특별기획 ‘이웃사랑 마스터를 말하다’를 연재합니다.

“특이한 음주문화가 생겨날 정도죠.”

몽골의 추위를 묻는 질문에 서태원(45) 굿네이버스 국제인력개발센터장이 답했다. 서 센터장은 재작년까지 약 5년간 몽골에서 파견 업무를 수행했다.

“우리도 연말이면 송년회 같은 걸 하잖아요. 몽골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꼭 ‘당번’을 정해놓죠. 사람들 상태나 인원수를 체크하는 역할이에요. 행여 화장실 간다고 밖에 나갔다가 술에 취해 잠들면 얼어 죽을 수도 있거든요. 실제로 그런 일이 왕왕 일어나고요. 그야말로 살인 추위인 거죠.”

서 센터장의 설명이다. 그는 사실 추위에 약했다. 한여름에도 뜨거운 물을 마실 정도였단다. 그런 그가 ‘한겨울 허공에 뜨거운 물을 던지면 얼음 가루가 되어 떨어진다’는 곳에서 5년을 버텼다. 그것도 산간오지 가정을 매일 수십 곳씩 방문하면서 말이다. 서 센터장은 “털이 덕지덕지 달린 등산화를 신고 다녀도 발가락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시렸다”고 회상했다.

몽골에서의 첫 겨울, 따뜻한 남쪽나라 보내 달랬더니…

 

해외개발 현장의 첫 임무는 ‘적응’

서태원 센터장이 체질까지 뒤집고 추운 나라로 갔던 이유는 오로지 현지 주민들을 위해서다. 다양한 자원이나 방식을 활용해 저개발국 취약계층의 성장과 자립을 돕는 것. 우린 이를 ‘국제개발협력’이라 부른다. 서 센터장이 소속된 굿네이버스 같은 국제구호단체에서 주로 하는 일이다.

지난달 25일 만난 굿네이버스 국제인력개발센터 직원들은 국제개발협력 활동을 국내에서 기획‧관리하는 전문가들. 당연히 센터장 이하 모든 팀원들이 해외파견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해외 업무는 비행기에서 내리면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적응이 잘 돼야 현지 활동을 순조롭게 수행할 수 있기 때문. 그만큼 적응이 관건이다.

굿네이버스 국제인력개발센터 왼쪽부터 서태원 센터장, 이선의 대리, 조미경 과장, 고기남 대리

팀의 수장이 추위 때문에 고생하는 동안, 더위와 싸운 이도 있다. 베트남과 방글라데시, 네팔, 태국 등에서 약 4년간 활동했던 조미경(32) 과장이다.

“정말 너무 덥죠. 40도는 기본이니까요.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도 늘 상해있어요. 전기가 귀해 냉장고가 돌다 말다 하거든요. 워낙 더우니까 옷을 얇게 입는데 그럼 또 벌레에게 무방비죠. 우리한테 벌레는 파리‧모기 정도지만, 그 나라엔 정체불명의 벌레 천지에요. 지금도 그때 사진 보면 죄다 어딘가를 긁고 있는 것들뿐이죠.”

조미경 과장의 설명에 같은 국가를 경험했던 이선의(35) 대리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리는 “첫째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싱크대 위에 준비했던 음식물을 쥐가 다 먹어치웠더라”면서 “파견 가서 가장 먼저 했던 건 집안 곳곳에 직접 제작한 쥐덫을 설치했던 일”이라며 웃었다.

조미경 과장(왼쪽)과 이선의 대리는 더위와 먼저 싸워야 했다.

유일한 아프리카 경험자인 고기남(34) 대리의 적응기는 조금 더 필사적이다. ‘미지의 영역’이 다른 팀원들보다 조금 더 넓었기 때문. 난관은 첫날밤 바로 찾아왔다.

“아프리카 하면 ‘말라리아’가 가장 무섭잖아요. 첫날밤 모기장이며 모기향에 완전무장을 했는데 금세 가려운 거에요. ‘모긴가, 아님 빈댄가. 물린 건가, (말라리아) 걸린 건가’하는 걱정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죠.”

빨래를 널다가 우연히 뱀을 발견한 이후엔 요상한 버릇도 생겼다. 집에 오면 안 보이는 곳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다. 고 대리는 “파견 오기 전에 봤던 아프리카의 독사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면서 “현관이나 화장실 문을 열 때 특히 경계를 세게 했고, 자기 전에는 침대 곳곳을 기다란 막대기로 때려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말라리아

모기가 옮기는 병으로 발열‧오한‧떨림으로 시작해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한 해 평균 100~300만 명이 이 병으로 사망한다. 특히 아프리카에 흔한 열대열 말라리아가 가장 치명적. 하지만 말라리아에 걸렸다고 모두 위험한 건 아니다. 실제로 고기남 대리 역시 말라리아에 걸렸던 적이 있다. 다행히 빠른 처방으로 감기몸살 증상 정도에서 멈췄다고 한다. 참고로 고 대리가 있었던 탄자니아는 세계 최대의 동물원 ‘세렝게티’만큼, 말라리아 발병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럼에도… 해외파견 업무는 국제구호단체의 ‘꽃’입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행을 자처한 걸까? 실제로 국제구호단체의 해외파견 업무는 100% 신청자에 한 해 이뤄진다. 등 떠밀려 가는 상황은 결코 없단 얘기다.

서태원 센터장에게 해외파견 업무는 복지 영역에서의 10년을 정리하는 시간이자, 새로운 도전의 기회였다.

“국내 아동학대 예방 분야에서만 10년을 일했어요. 그러다 2005년에 인도네시아 쓰나미 현장 긴급구호를 가면서 첫 해외 경험을 했죠. 하루 50여 구의 시체를 맞닥뜨리는 긴박한 상황을 겪으며, ‘언젠가 해외에서 일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기더라고요.”(서태원 센터장)

다짐이 현실이 된 건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같은 일을 하고 있던 아내와 초등학교 3학년‧ 유치원생 아이들도 가장의 큰 뜻에 박수를 보냈다. 서 센터장은 “사실 가족의 공감과 응원이 가장 큰 계기가 됐다”고 귀띔했다.

서태원 센터장은 이제 추위에 강한 남자다.

조미경 과장과 이선의 대리는 마치 ‘고향 가는 심정’으로 해외파견을 선택했다. 이 길로 들어선 결정적 계기가 바로 해외봉사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베트남에서 일 년간 해외봉사 활동을 했던 조 과장은 “거기서 일하면서 국제개발에 대한 꿈이 확실해졌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 굿네이버스에 입사했고, 아동학대 예방 분야에서 2년 넘게 활약했지만, 꿈은 시들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일이 결국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저개발국 아이들은 훨씬 더 심각하게 침해당하거든요. 일을 하면서도 베트남 아이들이 자주 오버랩됐죠. ‘지금이다’ 생각됐을 때 (파견) 신청했습니다.”(조미경 과장)

이후 방글라데시, 네팔, 태국을 돌며 해외에서만 3년을 보냈다. 조 과장은 “나라가 바뀔 때마다 적응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막연한 두려움의 크기도 덩달아 작아진다”며 “어떤 상황이 와도 용감하게 맞서고, 어디든 쉽게 스며들 수 있다는 건 해외파견을 통해 얻은 값진 선물”이라고 했다.

이 선물의 가치가 꽤나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듯하다. 실제로 기관 직원들 사이에서 해외파견에 대한 인식이 매우 긍정적인 이유다. 이선의 대리는 “가정사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나간다’고 여기는 게 해외파견 업무”라고 설명했다. 국제구호단체 종사자의 통과의례와 비슷하단 얘기다. 현재 굿네이버스는 35개국, 212개 사업장에 120여 명의 직원(해외봉사 단원 포함)을 파견하고 있다.

고기남 대리(왼쪽)는 “돌파구 삼아 선택했던 해외파견으로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고 털어놨다.

 

/사진: 송희원 에디터 ‧ 굿네이버스

* 이 콘텐츠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국제구호개발NGO ‘굿네이버스’와 함께 합니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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