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 제조 디자이너, 나눔을 히트시키다
히트 제조 디자이너, 나눔을 히트시키다
히트 제조 디자이너, 나눔을 히트시키다
2014.11.11 16:23 by 더퍼스트미디어
   배상민 카이스트 교수 
배상민
1996년, 미국 산업디자인 협회 왕중왕전의 심사 무대에 한 청년이 검은색 한복을 입고 올라섰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단 두 마디. ‘불을 꺼주세요, 그리고 즐기세요!’ 그의 외침에 맞춰 그가 직접 디자인 한 사운드펌프(soundpump, 인체의 장기 모양을 본뜬 스피커)가 빛을 내며 음악을 울렸다. 엄숙했던 심사장은 순식간에 클럽으로 변했다. 심사위원들도 리듬에 맞춰 춤을 췄다. 청년은 당당히 1등을 차지했고, 동양인 최초로 27세의 나이에 파슨즈 디자인 스쿨의 교수가 됐다. 지금은 카이스트에서 ‘나눔디자인’을 실천 중인 카이스트 사회공헌디자인연구소(IDIM) 배상민 교수(42・사진) 이야기다.

배 교수는 열혈청년이었다. 한국의 최고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미국 유학길에 오른 배 교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디자인에만 매달렸다. “미국에서 산 14년 동안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요. 사운드펌프를 만들 땐, 14일 동안 밤을 새우기도 했죠.” 경력은 날로 화려해져갔다. 산업디자인의 메카 뉴욕에서 코닥, 디즈니, 페덱스, 코카콜라, 펩시콜라 등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을 도맡았다. “상업 디자인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어요. 최고의 상업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의감이 밀려왔다. 클라이언트들이 원하는 디자인의 수명은 길어봐야 6개월이었다. “명작은 영원해야 해요. 그런데 정작 저는 조금만 지나면 버려질 쓰레기를 만들고 있었어요. 잠깐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 소비된 후, 6개월 후에 바뀌는 디자인은 사실 ‘비주얼 피싱(visual fishing)’이나 다름없는데 말이죠. 더욱 더 가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어요”

그는 답을 ‘나눔디자인’에서 찾았다. 디자인을 통해 나눔을 실천한다는 뜻이다. 그는 2005년 뉴욕을 떠나 카이스트로 자리를 옮기고 사회공헌디자인연구소 ‘IDIM’을 열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전 세계의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을 시작했다. 판매수익 전액을 월드비전을 통해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나눔프로젝트’와 개발도상국 주민들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는 ‘시드프로젝트’가 주요 사업이다.

갓 10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성과는 놀랍다. 세계 4대 어워즈(레드닷, IF, IDEA, 굿 디자인 어워드)에서 무려 47번이나 수상했다. 나눔프로젝트 작품 ‘허티(빨간색, 파란색 불로 내용물의 온도를 알려주는 텀블러)’는 2009년 출시 이후 2년 연속으로 세계 디자인 4대 어워즈 그랜드슬램을 달성했고, 크로스큐브(큐브 모양으로 접어서 사용하는 MP3)는 2007년 IDEA에서 애플의 아이팟을 제치고 은상을 받았다. 이런 나눔프로젝트 제품들을 통해 올린 19억 원의 판매액은 모두 저소득층 어린이에게 돌아갔다. 매년 240명의 어린이에게 2000만 원씩 기부한 것이다. 배상민 교수는 이를 기적이라 평한다. “소외된 90%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만의 진정성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결과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배상민 교수가 개발해 세계 디자인 어워드를 휩쓴 나눔 상품들. (카이스트 제공)


 

시드프로젝트를 통해서는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자립도 돕고 있다. 아프리카 마사이족에게는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도록 정수기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줬다. “똘똘해 보이는 아이들한테 황토로 정수기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면, 다음에 올 때는 다른 부족에까지 정수기가 쫙 퍼져있어요. 우리 도움 없이 자립할 수 있는 거예요. 이게 시드프로젝트의 힘이죠.” 말라리아 모기를 쫓는 ‘초음파 스프레이’도 보급시켰다. 내용물을 새로 채워 넣을 필요가 없어, 아프리카 사람들 스스로 지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

배 교수가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뭘까. “아프리카에 학교를 만들어서 디자인 교육을 하는 거예요. 대전에는 세계 최고의 사회 공헌 디자인 연구소를 만들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사회공헌 디자인을 하려면 대전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게 하고 싶어요. ‘나눔디자인’을 하고 싶어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못하는 디자이너들을 위한 인프라를 만들겁니다.” 그의 나눔 디자인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

 



글/김민정
김민정
소셜에디터스쿨 청년세상을 담다 1기 다음에는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은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기사를 읽는 사람들이 현장의 메시지를 좀 더 생생하고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한 번쯤은 정말로 열심히, 꼼꼼히 취재해 잉크 냄새보다 현장의 냄새가 더 진한 기사를 써보고 싶습니다. 이번 취재가 그때를 위한 좋은 공부가 되었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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