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진 것처럼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매우 신성한 존재였습니다. ‘살아있는 신’처럼 여겨질 정도였죠. 물론 파라오는 실제로 사람이었으니, 그들의 인성이 완전히 부정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파라오는 거의 모든 상황 속에서 신과 동등하거나, 최소한 신에 아주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의 육체는 신의 몸으로 취급되었고 아무나 쉽게 만질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신성한 파라오의 몸을 직접 만질 수 있었던 사내가 있었습니다. 이번 회는 그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사내의 이름은 프타쉡세스(Ptah-Shepses)입니다. 그는 고왕국 제 5왕조 시대 파라오인 니우세레(Nyuserre) 치세 때, 그러니깐 기원전 2440년경의 인물로, 결국에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집트 사회에서 최고위직을 경험했던 이 남자는 왕실과도 연을 맺는데, 니우세레의 딸이었던 카메레르네브티(Kha-merer-nebty) 공주와 결혼하여 파라오의 사위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주 명예로운 경력을 갖고 있었던 그는 자신의 무덤에 자랑스럽게 자적전 기록을 남깁니다. 망자가 자신이 생전에 경험했던 일들을 자랑스러운 어투로 무덤에 기록하는 것은 고대 이집트에서는, 특히 상류층들 사이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었습니다. 프타쉡세스의 기록은 이러한 자전적 기록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가 무덤에 남겨놓은 기록에 따르면, 그가 생전에 갖고 있던 칭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귀한 자, (파라오의) 유일한 친구, (파라오의) 머리장식의 보관자, 군주에게 사랑받던 자, 대법관, 총리, 왕의 업무 관리자, 왕좌의 종복, 왕의 장신구를 보관하던 두 방의 감독자, 성구낭독 신관”
모두 다 굉장한 것들이죠. 그런데 이 화려한 이력 속에서 우리의 주목을 특별히 더 끄는 칭호가 있습니다. 그것은 “왕궁의 이발사”와 “왕궁의 손톱 관리사”라는 칭호입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이발사와 손톱 관리사는 그다지 고위직일 것 같지 않은 직위이지만,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궁정에서는 상황이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파라오의 몸은 아주 신성한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허가를 받은 이들만이 파라오의 몸에 손을 댈 수 있었습니다. 머리를 깎거나 손톱을 자르기 위해서는 당연히 몸에 손을 대야만 했고, 결국 파라오를 담당하는 이발사나 손톱 관리사는 아주 특별한 직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직책을 맡는 것은 그 직책을 맡는 개인에게도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 시리즈의 초반부에 ‘나르메르의 팔레트’에 대해 얘기하며 언급했던 ‘파라오의 신발 운반자’라는 호칭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호칭은 파라오의 최측근, 아마도 거의 총리급의 인물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이것을 보면 파라오의 신체와 일상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업무가 고대 이집트에서는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대략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분명히 파라오 니우세레와 무척이나 가까웠을 프타쉡세스는 죽어서도 자신이 모신 왕 아주 가까이에 묻힙니다. 그의 거대한 마스타바(고대 이집트의 무덤 형식)는 니우세레의 피라미드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로, 세로가 각각 50, 40m가 넘고, 높이 역시 7m 이상인 이 무덤은 고왕국 시대의 개인 묘들 가운데, 사카라에 있는 메레루카(Mereruka)의 것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것입니다. 또한 무덤 내부구조 역시 무척이나 복잡한데, 이 정도의 복잡함은 역시 고왕국 시대 개인묘들 가운데 단연코 최고입니다. 프타쉡세스의 복잡하고 거대한 무덤은 이집트 사회에서 그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의 마스타바는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 자크 드 모르간(Jacques de Morga)에 의해서 1893년에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체코 프라하의 찰스 대학교 이집트학 연구소 팀이 수십 년 째 조사 및 복원해오고 있습니다. 사실 프타쉡세트의 마스타바가 있는 아부시르(Abusir)는 체코 이집트학자들의 독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덤은 높이가 6m에 이르는 두 개의 기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하얀색 석회암 기둥들은 연꽃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프타쉡세스는 상이집트 네켄 지역 출신이거나 그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연꽃 모양의 기둥이 사용된 것이 그 이유죠. 연꽃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기둥들은 고대 이집트 문명기 내내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는데, 프타쉡세스 무덤 입구의 이 두 기둥은 그 기둥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