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빠, 나쁜 아빠
좋은 아빠, 나쁜 아빠
좋은 아빠, 나쁜 아빠
2017.10.18 18:22 by 류승연

발달장애 아이의 부모들과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깜짝 놀랄만한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이럴 수가~. 아이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좋은 아빠’들이 이 세상엔 부지기수로 많았던 것이다. 아빠 즉 남편은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엄마 즉 아내는 장애 아이 육아를 전담한다는 전통적 공식이 깨어지는 걸 보면서 나는 남편을 째려보기 시작했다.

내가 알게 된 다른 아빠들은 돈도 벌어오면서 아이를 위해 장애이해 공부도 하고, 자조모임도 꾸리고, 아빠모임도 갖고, 법과 제도와 아이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까지 하는데 내 남편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제발 그러지 좀 말라고 통사정을 해도 여전히 아들 얼굴에 멍이 들 정도로 볼을 물고 빤다. 아이가 숨도 못 쉴 정도로 꽉 껴안으면서 혼자 좋아라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슬슬 부아가 치민다.

“자기야, 자기도 동환이 장애에 대해 공부 좀 하자”

“내가 아빠모임 하나 알아왔는데 자기도 나가볼래?”

그때마다 남편은 고개를 젓는다. 아들의 장애에 관해선 내가 공부해서 자기한테 알려주고, 아빠 모임에도 내가 대신 나가서 정보를 듣고 오란다. 자기는 아들 일과 관련해선 내가 하자는 대로 무조건 따르겠단다.

음…. ‘회피’일까? 기분이 좋지 않던 난 어느 날 결국 폭발을 해 버렸다.

“언제나 나만 생각해! 언제나 나만 고민해! 왜 동환이에 대한 짐을 나 혼자 다 지고 있어야 해? 나만 부모야? 나 혼자 낳았냐구!”

“너 혼자 모든 짐을 다 지고 있다고 생각해? 정말 그래?”

조용하지만 강하게 이어지는 남편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점점 고개가 떨구어졌다. 무심한 듯 보인 남편의 행동이 사실은 아들과 우리 가정을 위한 것이었음을, 비록 장애이해 공부는 하지 않아도 다른 방식으로 아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야기가 이어지기 위해선 이쯤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장애도’라는 섬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장애도’라는 섬은 없다. 그 어느 지도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섬 ‘장애도’. 하지만 난 무형의 섬 ‘장애도’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내 스스로가 ‘장애도’에 갇혀 헤어 나올 수 없이 힘든 시간을 보낸 적 있기 때문이다.

아들이 장애진단을 받은 건 4~5살 무렵이었는데 생후 13개월부터 치료실을 전전하며 나는 장애 가능성을 마음속에선 일찍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설마~”하면서도 치료실 순방을 이어가면서 나 자신도 모르는 새 나는 ‘장애도’라는 섬을 향해 노를 젓기 시작했다.

모든 게 슬프고, 모든 게 힘들고, 모든 게 화가 났다. 발달이 느린 아이. 모방행동도 하지 않고, 똥오줌도 못 가리고, 말귀도 못 알아듣는 아이 때문에 한평생 아들 뒷바라지를 하며 인생을 보내야한다는 절망감이 솟구쳐 올랐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저당 잡혔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문득문득 그런 원망이 솟구쳐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루에도 열 몇 번씩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 밥을 먹이다 말고 꺼이꺼이 울었으며, 기저귀를 갈다 말고, 빨래를 널다 말고 흐느끼곤 했다.

(사진:graphbottles/shutterstock.com)

아들 때문에 180도 바뀌어버린 내 미래에 ‘희망’이란 글자는 없었다. 온종일 하나의 생각만 반복됐다. “아이들을 데리고 죽을까 혼자 죽을까”. 그 고민만 수천 번을 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도 싫었다. 동네의 그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도 상대방 손만 쳐다봤으며 병원을 가도 의사의 눈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이 창피했다. 가끔씩 사람 많은 장소에서 이상한 소리라도 질러대면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들 때문에 망쳐버린 내 인생엔 잿빛 절망만 가득했다. 난 그 시기를 ‘지옥의 3년’이라 부른다. 당연히 그 시기엔 부부 사이도 최악이었으며, 양가 부모들과의 관계도 절연 직전까지 치달았다.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으면 다음엔 올라간다고 했던가. 아이들이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오전만이라도 숨 쉴 수 있는 숨구멍이 트이자 나는 스스로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통해 오랜 시간 심리상담도 받고, 동네 사람들과의 교류도 시작했다. 또 소소하게나마 내 일이라 할 만한 것도 시작하면서 나는 ‘장애도’에서 조금씩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장애도’에 소속은 되어있지만 그곳에 갇혀있지만은 않은 그런 상태가 된 것이다.

자. 다시 돌아와서. 아들의 장애를 회피하는 듯 보였던 남편의 무심한 태도는 바로 ‘장애도’와 관련이 있었다. 외부의 스트레스를 잘 이겨내지 못하는 남편의 성격 상 아들의 장애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하면 이번엔 남편이 ‘장애도’에 갇힐까 두려웠던 것이다.

아내로부터 발발된 ‘지옥의 3년’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남편도 잘 알고 있다. 그 시간을 함께 겪었기 때문에. 그래서 스스로는 그 길을 걷지 않으려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를 지키는 동시에 가족 모두를 지키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005

오랜 대화 후 남편의 진짜 마음을 알게 되면서 나는 철없이 굴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좋은 아빠’들과 남편을 비교했던 게 미안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남편은 남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주말에는 아이들을 위해 일체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고, 평일에 운동을 가거나 술 약속이 있어도 퇴근 후 일단 집에 들러 아들을 조금이라도 봐준 다음 아이들이 잠들 무렵에 다시 나가곤 했다.

무엇보다 장애가 있는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장애가 있다고 구박하기는커녕 오히려 장애의 특성 중 하나인 ‘갓난아기 같은 순수함’에 한없이 행복해했다.

그건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아들의 감각통합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도 모르고, 자조모임에 나가 열띤 토론을 벌이지도 않았지만 남편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남편은 아들의 장애를 크게 인식하지 않고 아들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와 생각하니 남편의 이러한 태도는 나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만약 남편이 다른 아빠들처럼 장애를 정면으로 직면한 ‘좋은 아빠’였다면 우리는 우리 부부의 성격상 쌍으로 ‘장애도’에 갇혀버렸을지 모른다.

‘장애도’ 안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던 내가 그 섬을 탈출하기로 마음먹고 세상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은 ‘장애도’보다 ‘세상’에 더 많이 발을 담그고 있던 남편이 세상과의 연결고리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백 명의 장애 가정이 있으면 백 가지의 세상이 있다. 각각의 가정마다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부부의 성격, 가정을 둘러싼 환경, 아이의 장애 정도 및 특성에 따라 저마다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우리 가정에 잘 맞는 선택은 바로 지금 우리가 선택한 이 길이다. 남편은 ‘장애’에 무심한 듯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나는 나대로 ‘장애도’와 ‘세상’에 한 발씩 걸치고 있는 이 삶. 그러면서 둘이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이 길이 우리 가정에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남편이 ‘좋은 아빠’들과 같지 않다고 해서 ‘나쁜 아빠’는 아니었던 것이다.

003

‘지옥의 3년’에서, ‘장애도’에서 탈출한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들이 창피하지 않다. 사람 많은 곳에서 아들이 “아갸갸갸~”그러며 이상한 소리를 내면 “응~ 강아지 귀여워?”라며 맞대응을 한다. 외계어와 한국어를 사용하는 두 사람이 각각의 말로 대화를 한다.

아들이 갑자기 질주를 시작하면 나도 따라 100m 달리기를 한다. 남들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길 한복판에서 펄쩍펄쩍 뛰는 상동행동을 하면 남편도 아들 흉내를 내며 함께 펄쩍펄쩍 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딸과 나는 까르르르 웃는다.

더 이상 우리 가정에 ‘장애’는 ‘장애물’이 아니다. 비록 남들과 같은 방식의 ‘좋은 아빠’는 아니지만 다른 방식으로 ‘좋은 아빠’ 역할을 하고 있는 남편 덕분이기도 하다. 그거면 충분하다. ‘좋은 아빠’를 측정하는 절대 기준이란 없으니까 말이다.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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