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가능한 삶을 살고 싶어요!
예측 가능한 삶을 살고 싶어요!
2017.10.25 18:17 by 류승연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신혼 초 남편과 나는 툭하면 부딪히곤 했다. 나는 한 번에 몰아서 청소하는 스타일인데 남편은 그때그때 치워가며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퇴근 후 소파에 늘어져 쉬고 있던 난 방금 전 먹은 사과껍질 치우라는 남편이 쫌생이 같다. ‘여자는 이슬만 먹고 사는 존재’인 줄 알았던 남편은 나 때문에 여자에 대한 환상이 산산이 조각났다. 부딪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부부싸움을 하고 난 뒤 친구를 만나 하소연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화려한 싱글로 살 걸. 네가 부러워”.

친구는 뜻밖의 얘기를 꺼낸다.

“너는 결혼을 한 덕분에 ‘안정감’이라는 걸 찾았잖아. 이젠 둘이 계획한 대로 미래를 살면 되잖아. 앞날이 예측 가능하잖아. 나는 아직도 내 인생이 불안정해. 그것이 늘 불안해”.

결혼이 주는 큰 선물 중 하나는 ‘안정감’이다. 둘이 만나 한 곳을 바라보면서 인생 계획이라는 것을 세운다. 하지만 그 선물도 모두가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식이 장애인 판정을 받는 순간 한 가정의 모든 것은 불확실성에 휩싸인다.

핑크빛 미래는 회색 안개에 가려지고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그곳에서 불안감이란 놈이 스멀스멀 활동을 개시한다. 그 불안감이 부모의 정신을, 한 가정을 좀 먹기 시작한다. 야금야금 거리다 어느덧 꿀꺽꿀꺽.

아들이 어릴 때는 ‘행동의 불확실성’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비장애인 딸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적인 상황에서 아들은 난리가 났다. 대체 왜 우는 거야? 왜 떼를 쓰는 거야? 왜 방방 뛰는 거야? 왜 한 가지 일만 반복하려 드는 거야?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불편한 점을 말해줘야 해결해 주던가 하지. 아이도 울고 나도 운다. 엉엉엉. 아이도 화내고 나도 화낸다. 버럭버럭.

그런데 알고 보니 아들의 문제는 감각처리 때문인 부분이 컸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많은 수는 감각처리에 어려움을 겪곤 했다. 감각이 너무 예민하거나 너무 둔했으며, 여러 감각을 하나의 지각으로 통합하는 데도 문제가 있었고, 외부 정보나 자극을 처리하는 기능도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사진:Michael William/shutterstock.com)

김성남 박사가 진행하는 ‘발달장애 마음 읽기’ 강의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감각이 너무 예민한 아이들의 경우는 각성도가 높은 상태로 일상을 살게 된단다. 그게 어떤 느낌이냐면 롤러코스터 높은 곳에서 슝~하고 내려올 때 오금이 저린 듯한 느낌으로 매 순간 사물을 접하고 있다는 얘기다.

흐미. 우리는 한 번만 타도 정신이 아찔한데 그것과 비슷한 상태로 일상을 산다고라? 사람을 쳐다보면 얼굴이 전체적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수십 개 모공이 확장되어 다가오고, 속눈썹의 떨림이 1초에 몇 번인지가 지각이 된다고라? 얼마나 피곤할까. 얼마나 지치고 힘들까. 왜 감각이 예민한 발달장애인이 대화할 때 타인의 얼굴을 보려 하지 않는지, 눈 맞춤을 하지 않는지 이해가 된다.

반대 상황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감각이 둔화된 아이들은 우황청심원을 몇 잔 완샷한 것과 같은 상태로 매 순간을 보낸단다. 저하될 대로 저하된 특정 감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볼까? 만약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데 발을 딛고 있는 땅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나라면 어떨까? 방방 뛰어줘야겠지. 발에 닿는 땅의 느낌을 더 확실하게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서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도록 확인을 해야겠지.

아들의 행동이 감각의 문제라는 걸 모르던 과거의 난 김치와 쌀밥 외에는 어떤 음식도 안 먹으려 하고, 모자나 마스크도 안 쓰려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반복적으로 타며, 전등불을 껐다 켰다 하고, 눈과 손이 따로 노는 아들과 씨름하느라 지치곤 했다.

지금은 아니다. 아이가 아홉 살이 되고 나니 이젠 척하면 척이다. ‘행동의 불확실성’이 많이 줄었다. 아이는 그대로인데 엄마인 내가 아들 행동의 패턴을 이해하게 된 덕분이다.

이젠 딸보다 아들의 행동이 더 예측가능하다. 좋아하는 환경과 싫어하는 환경이 확실하고, 각각의 환경 속에서 아들이 보일 행동들이 눈에 먼저 보인다. 그에 따라 미리 준비를 하고 대비를 하게 되었다.

딸과 둘이서 외출할 때는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작고 예쁜 가방을 들고 나간다. 가방 안에 지갑과 핸드폰만 넣으면 준비 끝이다. 하지만 아들과 외출할 때는 기저귀 가방 수준의 큰 가방을 어깨에 둘러멘다. 여러 상황을 대비한 여벌옷부터 기저귀, 특정 상황에서 아이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과자와 장난감 등을 모두 챙긴다. ‘알고’ 나니 ‘예측’을 해서 ‘대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불안감도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아들의 미래, 성인기를 생각하면 깜깜하기만 하다.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살아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비장애인 딸에 대해서는 불안감이 없다. 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 나가리라. 딸이 개척해 나갈 미래는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예측할 수 있는 범주 안에 속해있다.

하지만 아들의 경우는 다르다. 성인기 발달장애인의 삶을 여러 경로를 통해 관찰하고 있지만 볼 때마다 신세계고, 볼 때마다 더 모르겠다. 그럴 때면 불안감이란 놈이 마음의 약해진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기 위해 조용히 염탐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이놈! 내가 또다시 들어오게 두고 볼 것 같아? 훠이훠이~ 저기로 가 버렷!

불안감이란 놈을 멀리 쫓아내기 위해선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 제도와 시스템만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사람은 믿을 수 없지만, 제도와 시스템은 믿을 수 있다. 발달장애인 자식을 세상에 남겨놔도 부모가 마음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와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그래야 부모 사후에 남겨질 장애인 자식의 삶이 예측 가능해진다. 부모의 불안감이 사라지면 한 가정의 정신적인 부분도 건강해진다. 그렇게 각 가정들이 모이고 모여야 사회도 이전보다 더 건강해진다고 믿는다.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아들 성인기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다. 아들의 장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부모교육부터 신청했다. 사람들도 만나기 시작했다. 발달장애 관련 각 단체와 기관, 모임 등에 속한 이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듣고 나와 아들이 나아갈 방향성을 잡기 위해서다.

계획했던 공부가 끝나 나아갈 방향성을 잡고 나면 제도와 시스템도 공부하려 한다. 알아야 예측할 수 있고 그래야 대비할 수 있다. 또 요구할 수도 있고.

원래 인생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범주 안에서 변수가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딸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진:ImageFlow/shutterstock.com)

할 일이 많다. 전에는 아들과 씨름하느라 할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아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엄마인 내가 공부하느라 할 일이 많다. 나는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아들 덕분에 엄마가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회에 큰 관심이 없던 나였는데 이제는 사회와 제도, 인간과 시스템 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만화 ‘드래곤볼’에 비유한다면, 전에는 그냥 사이언인이었는데 이제는 초사이언인이 되려고 하고 있다. 아마도 일련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는 초초사이언인, 초초초사이언인도 될 수 있으리라. 그때마다 머리도 더 뾰족뾰족하게 솟구치면서.

이 모든 게 장애를 가진 아들 덕분이다. 아들이 내 삶의 고통이자 동시에 축복인 이유다.

 

/사진: 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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