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 하인들리 쓰고, 헬렌 크레이그 그린 <로지의 작은 집>
“할머니, 나는 내일 캠핑 갈 거야. 우리 가족은 여행으로 기억을 채우거든.”
스스로 꽤 근사한 말을 했다고 생각하는지 아이의 표정이 아주 근사해졌다. 나머지 어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표정도 정말 근사해서 감탄만 하고 싶은데, 여섯 살 아이의 머리통이 너무 동그랗고 귀여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의 말대로, 우리 가족은 여행으로 기억을 채운다. 대단한 여행은 거의 없다. 우리만의 여행이 대부분이다. 마음에 드는 장소에 깨끗하고 예쁜 집을 찾고 며칠을 머문다. 짧게는 이틀 길게는 일주일을 느긋하게 어쩌면 조금은 심심하게 보내고 돌아온다. 나는 그 ‘집’을 까다롭게 구한다. 진짜 내 집도 아니고 고작 몇 시간 잠잘 때만 들어가는 곳인데 대충 고르라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집 떠나 들어가는 ‘집’ 아닌가. 여행이니까 늦은 밤까지 놀다가 늦게 일어날 생각을 하면 대충 고를 수가 없다. 방은 좀 작아도 괜찮지만 정갈한 인테리어와 깔끔한 손질이 필요하다. 여기에 적당한 가격까지. 모두 갖춘 ‘집’구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워 잔뜩 예민해지곤 하는데 캠핑은 그럴 필요가 없어 편하다.
그러고 보니 캠핑을 할 때에는 집에 대한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 텐트는 내가 주인이라 그런 것일까. 집 떠나 들어갈 ‘집’의 역사와 상태를 분명히 알고 있기에 대비와 대책 또한 내 손 안에 있으니 두 번째 집이라 할 만하다. 참 편하다.
그래, 캠핑은 참 편하다.
매일 안하면 지구가 멈출 것 같은 느낌이 들던 샤워도 슬쩍 건너뛴다. 친환경 식재료로 갓 만든 집밥이나 과일 대신에 즉석밥과 냉동식품, 온갖 군것질들이 아이 입 속으로 들어가도 불안하지 않다. 주근깨가 마중 나온 맨 얼굴로 남편의 친구들을 봐도 부끄럽지 않고 늦은 밤 아이가 밖에서 놀고 있어도 걱정이 안 된다.
캠핑은 비일상을 위해 일상을 짓는, 비일상과 일상이 뒤죽박죽인 여행이기 때문이다. 일상을 벗어나려고 향한 낯선 장소에 익숙한 나의 집을 갖는다. 머무는 내내 가장 공을 들이는 일은 아무래도 끼니 챙기는 일이다. 특별한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다듬고 불을 피운다. 음식을 만들어 먹고 또 치운다. 그 사이사이에는 산책이 필요하다. 적어도 텐트에서 개수대까지는 몇 번이고 왔다갔다 걸어야 물을 얻을 수 있으니, 중요한 과정이다. 세끼를 챙겨 먹는다는 점에서 일상과 비슷하지만 오랜 시간과 힘을 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일상과 다르다. 여가 시간에도 일상은 비집고 들어온다. 별일 없이 배드민턴을 치거나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스마트폰도 여전하다. 비일상도 지지 않고 틈틈이 고개를 내민다. 진한 초록 나무를 보고 발아래 흐르는 물을 본다. 밤에는 별들이 쏟아질 듯 내린다. 그 아래 모닥불을 피워 발간 불꽃을 본다. 이들에게는 모두 소리가 있다. 평소에 들리지 않았던 소리라, 쉽게 감동을 하거나 잠 못 들고 뒤척인다. 비를 맞아 머리가 젖을 때도 있고 커다란 두 발로 위협하는 사마귀를 마주할 때도 있다.
낯설다가 익숙하다가, 캠핑의 근본은 뒤죽박죽이라 나도 같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의무와 규칙을 잊는다. 혼란은 아니다. 서로 다른 색 물감을 섞어야 원하는 색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뒤죽박죽 이것은 캠핑이 삶에 주는 기회다.
잘 다녀왔습니다,
<로지의 작은 집>
어느 날 로지는 혼자서 새 집을 찾아 이사를 가겠다고 결심한다. 로지의 바퀴 달린 바구니에는 담요, 베개, 책, 인형,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물건들이 담겨있다. 얼마 안 가 로지는 자기만의 집을 찾아낸다. 커다란 나무 밑동 구멍 속이다. 집 안을 쓸고 닦고 정리한다. 가져온 물건들의 자리를 정하고 공간도 구분한다. 우리가 캠핑을 위해 집을 짓고 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새 공간에, 쓰던 시간을 담아두는 것.
로지는 망원경으로 멀리, 땅과 바다와 하늘을 바라본다. 집 ‘안’을 정돈하고 집 ‘밖’을 기대한다. 이제 ‘안’은 질서 있는 나의 세계이지만 ‘밖’은 예상할 수 없는 모두의 세계이다. 잠깐의 기다림 끝에 로지가 바라본 그곳으로부터, 손님들이 찾아온다. 어떤 질서도 관심 없다는 듯 다채로운 몸짓으로 로지의 공간으로 들어와 로지의 시간이 된다.
분명 이사를 간다고 나갔는데, 실컷 놀고 난 로지는 엄마가 저녁을 만들고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로지의 키가 처음 봤을 때보다 좀더 자란 것 같은데, 나만의 느낌일까.
우리의 캠핑도 로지의 집도, 익숙한 ‘안’에 낯선 ‘밖’을 불러 뒤죽박죽이 되어보라 말한다. 질서는 사라지고 의무와 규칙을 잊는 시간, 고민과 불안은 잠잠해지고 볕과 바람 들 자리가 생긴다. 그때 우리는 기꺼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Information
<로지의 작은 집> 글 : 주디 하인들리 | 그림 : 헬렌 크레이그 | 번역 : 김서정 | 출판사 : 웅진닷컴 | 발행 : 2003.03.30 | 가격 : 7,500원
/사진: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