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겨울, 딸이 처음으로 외박을 했다. 당시는 유치원 친구들끼리 서로를 집에 초대해 노는 게 유행처럼 번져 있었다. 나도 이틀에 걸쳐 집안 대청소를 한 뒤 꼬마 아가씨 5명을 초대해 극진히 수발을 들었다. 꼬마 아가씨들은 마치 CCTV 기능을 탑재한 듯,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면 사소한 것 하나까지 엄마들에게 말하곤 했다.
“가스레인지 위에 먼지가 있었어” “국이 맛이 없더라” “빨래가 안 개져 있었어
흠 잡힐 게 무서워 시부모님이 방문했을 때보다 더 정성스럽게 손님접대를 해서 보냈더니 답례처럼 이번엔 딸이 친구들의 집에 초대를 받기 시작한다. 그러다 친한 쌍둥이 자매의 초대를 받은 날, 딸이 자고 오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쌍둥이 자매의 부모도 허락한 데다 “진짜 소원이야. 응?”하며 애원하는 눈빛을 보고 있자니 거절할 수가 없다. 그렇게 일곱 살 딸이 처음으로 내 곁을 떠나 외박을 하던 날. 밤에 아들을 재우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콩콩콩 콩콩콩. 심장이 계속 두근두근거리고 갑자기 눈물도 왈칵 날 것만 같다. 왜 이렇게 불안한 거야? 방금 전 통화한 아이는 잘만 놀고 있었는데….
그때 알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분리불안을 느끼고 있는 건 딸이 아니라 엄마인 나라는 걸. 모녀 관계에 얽매여 독립하지 못하고 있던 건 어린 딸이 아니라 엄마인 나였다는 걸. 보통 분리불안이라고 하면 어린 자식이 부모에게 느끼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가 그때 처음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랬던 나였는데 딸이 아홉 살 된 지금은 태권도장에서 1박2일 합숙할 사람을 선착순으로 20명 모집한다고 하면 제일 먼저 가서 등록을 한다.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영역이 구축되며 서로에게서 심적으로 독립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자. 문제는 아들이다.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 아홉 살이지만 체감 나이는 두세 살 정도로 느껴지는 아들. 마냥 어리다고만 느끼는 아들에게서 심적으로 독립하기는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나는 아들과 하나로 연결돼 있는 것처럼 느낀다. 타인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 사실을 몇 가지 일을 통해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나는 ‘집중’하는 시간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이건 성격인지 기질인지 아무튼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결혼 전에는 퇴근 후 들어와 음악을 듣거나, 만화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할 때면 미리 가족들에게 ‘접근 금지’ 요청을 하곤 했다. 집중해서 하고자 하는 일에 몰입해 있는데 여동생이 화장품을 빌리려 노크라도 하면 화가 나서 난리를 쳤다. ‘집중’을 깼다고.
지금이라고 다를 것 없다. 마감이 밀릴 때면 딸 방에서 노트북을 켜 놓고 일을 한다. 남편과 딸에게 미리 엄포를 놓는다. 근처엔 얼씬도 말고 TV도 켜지 말라고. 집중을 깨면 안 된다고. 그러다 딸이 읽을 책을 가지러 자기 방에 들어온다. 나한테 말을 시키는 것도 아닌데 나는 딸이 방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집중이 깨진다. 화가 부글부글 난다. 그런데 아들은 방에 들어와 노트북을 만지고 내 목을 껴안고 장난을 쳐도 집중이 깨지지 않는다. 어르고 달래가면서도 할 일을 마저 한다.
밤에 잘 때도 그렇다. 아들과 딸을 양옆에 눕히고 내가 가운데 눕는데 아이들이 잠들기까지의 그 시간이 내가 어둠 속에서 ‘사색’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딸의 발끝이 내 몸에 닿기라도 하면 그 순간 생각이 깨어진다. 집중이 흐트러진다. 하지만 아들은 다리를 내 배 위에 올리고, 내 얼굴의 뾰루지를 잡아 뜯으려 하고, 팔로 나를 껴안고 있어도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타인에 의해 내 영역이 침범당했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냥 아들은 나 자신인 것만 같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난 큰일 났다고 느꼈다. 이건 아들을 사랑하고 딸을 미워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아들을 독립된 개체로 바라보지 못하고 나와 한 몸처럼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부모가 자식을 그리 느끼는 게 뭐가 나쁘냐고? 당연한 거 아니냐고? 오~ 노노. 절대 그렇지 않다. 부모와 자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심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지 못하면 부모는 늙어서도 다 큰 자식을 한 명의 성인으로 존중하지 못하고 일일이 삶에 간섭하고 개입하려 들게 된다. 부모 자식 사이는 허우적댈수록 더 빠져나올 수 없는 늪처럼 되어버린다. 이건 자식이 발달장애인이라도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자식이 발달장애인이기에 더더욱 조심하고 유념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자식의 자립을 말하기에 앞서 부모인 내가 먼저 자식에게서 심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나는 자식이 성인이 될 기회를 영영 박탈해 버리고 말 것이다. ‘영원한 어린 자식’으로 내 품 안에 가둬두려 할 것이다. 사실 그 또한 나쁘진 않다. 평생 책임지고 살 수만 있다면. 자식이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고 버리는 부모도 있는데 장애인인 자식을 평생에 걸쳐 책임지는 그 모성 또는 부성이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하지만 언제까지? 그 모성과 부성은 영원한 생을 약속받은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자식을 옆에 끼고 살 수 있을까? 그렇게 부모의 품 안에서 ‘영원한 어린 아이’로 살아온 자식은 부모 사후에 남들로부터 대접받게 될 ‘성인 발달장애인’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요즘 발달장애인 업계의 화두 중 하나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이다. 지난달에는 ‘발달장애인의 자기 권리 옹호 및 자립생활’이라는 주제로 발달장애인 권리증진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그곳에선 성인 발달장애인이 생활하는 기존의 그룹홈이나 거주시설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지원생활 모델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분명 사회는 조금씩이지만 변화되고 있고, 내 아들은 지금보다 더 나아진 환경에서 성인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들의 자립을 위해 아무리 좋은 모델이 구축되어도 엄마인 내가 아들로부터 심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분리불안을 느끼는 건 아들이 아닌 내가 되어버려서 아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을 수시로 찾아가거나 주변에서 빙빙 돌며 매사에 개입하고 간섭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가 아들을 아들 자신으로 인정하기임을, 아들은 나와 한 몸이 아닌 스스로의 주체성을 지닌 타인으로 받아들이기임을 절실히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다행히 주변에서 바람직한 성인 발달장애인의 사례를 관찰할 기회가 많다. 발달장애인 자식을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 대하고 있는 선배 엄마들은 말도 어눌하고 행동도 어린아이 같은 20~30대 자식을 ‘어린이’로 대하지 않는다. 장애가 없는 보통의 자식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모 자식 간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선을 그을 것은 확실하게 긋는다. 그러면서 일상생활 자조 기술을 가르치는데 누구보다 열심이다.
언어치료나 작업치료보다 만 배는 더 중요한 일상생활 자조 기술. 혼자서 세탁기를 돌리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찾아 하게 하면서 그렇게 독립된 성인으로 혼자 살아나가게 될 그 언젠가를 준비시킨다.
내가 가야할 방향도 그 길이다. 그러기 위해 할 일은 아들과 내가 독립된 두 개체임을 자각하고 서서히 정서적인 분리를 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나선 아들을 두세 살이 아닌 아홉 살로 대하고 그에 맞는 존중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20살의 아들은 20살의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냥 발달장애를 가진 성인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공주병을 지닌 성인이 되듯이, 누군가는 우울증을 가진 성인이 되듯이 그냥 그렇게 발달장애를 가진 성인이 되는 것이다.
“자식이 독립하기를, 자립하기를 바라십니까? 그럼 부모가 먼저 자식으로부터 독립하고 자립하세요.”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사진: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