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채비’, 어떻게 보셨나요?
2017. 11. 14 by 류승연

영화 ‘채비’가 개봉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노모가 혼자 남겨질 발달장애 아들의 자립을 위해 홀로서기 준비를 시켜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채비’. 발달장애 자식을 키우는 모든 부모가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을 담아낸 영화다.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먼저 이 영화를 제작키로 한 제작사 대표와 영화감독, 주연배우인 고두심씨와 김성균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발달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부담스러울밖에 없다. 흥행적인 면도 장담할 수 없고 연기하기도 어렵다. 잘해야 본전이고 자칫하면 도리어 욕만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도전할 용기를 내어준 ‘채비’ 관계자 모두에게 박수를.

덕분에 영화라는 대중성을 타고 성인 발달장애인 자립의 문제가 조금은 화두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은 세상 관심 밖에 있는 영역 중 하나다. 평소 우리네 삶에 ‘장애인의 자립’이라는 건 생각하고 살 필요도 없고, 접할 기회도 없다. 어쩌다 병 든 노모가 지적장애가 있는 중년의 자식을 살해하거나, 부모와 자식이 함께 동반 자살한 뉴스가 나오거나, 시설에 감금당해 학대당한 장애인 소식이 들려올 때야 잠깐씩 거론되곤 했던 사회적 문제랄까.

그런 무게감 있는 소재를 영화라는 픽션을 통해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나 더 고맙게 생각하는 건 슬픈 소재를 다루면서 억지 눈물 쥐어짤 신파를 지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고 경쾌하다. 발달장애인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발달장애인 자식만이 줄 수 있는 순수하고 엉뚱한 즐거움을 영화 내내 느낄 수 있다.

흔히들 자식이 장애인이라 하면 가족들의 삶이 고되고 불행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내가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그래도 참 밝으세요”다. ‘그래도’ 라니…. 자식이 장애인이면 매일 슬플 것 같나요? 아뇨 아뇨. 우리도 일상을 산답니다. 행복하고도 엉뚱한 일상을.

물론 손이 많이 가는 자식이기에 부모로서 몸은 고되다. 그럼에도 남다른 자식만이 줄 수 있는 남다른 행복감과 재미, 엉뚱함과 어이없는 웃음이 터지는 순간이 많다. 몸이 힘든 것과 마음이 불행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영화에선 그 부분을 아주 살짝이라도 담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렇게 칭찬받아 마땅할 영화지만 나는 몇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의 고두심이 될, 발달장애 자식을 둔 당사자 엄마이기에 영화를 영화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다큐적인 시각에서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발달장애인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일반 관객들이 영화 속 현실을 픽션이 아닌 논픽션으로 이해하게 될까봐, 대한민국 장애인의 현실로 받아들이게 될까봐 우려가 들기 때문이다. 알면 걸러볼 수 있지만 모르면 정보로 인식해 받아들여 버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왜곡을 막기 위해 영화와는 다른 몇 가지 현실은 알리고자 한다.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보통의 평범한 발달장애인은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자립생활 기술을 터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인규(김성균)는 엄마인 애순(고두심 역)의 특훈을 받으며 자립생활을 준비한다. 영화가 시작할 때의 인규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인규는 딴 사람이다. 심지어 인규는 나보다도 야무지게 부엌살림을 꾸린다. 정리정돈의 강박을 가진 자폐인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나보다 100배는 더 훌륭한 주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렇게 기능 좋은 발달장애인은 소수에 불과하다. 의사소통이 완벽하고 지시 따르기에 큰 문제가 없는 인규는 한 마디로 ‘엘리트’인 셈이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나서 모든 발달장애인이 저만큼 집중 교육을 받으면 모두 자립이 가능할 거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례로 우리 아들 같은 경우는 먼 훗날 자립생활을 하게 되더라도 완벽한 홀로서기는 불가능할 가능성이 크다. 엘리트와는 거리가 먼 중증의 지적장애인. 숫자개념을 익히기는커녕 말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이런 아이들에겐 전 생애에 걸쳐 자립생활 기술이 이뤄져야 한다. 늘 도움의 손길이 곁에 있어야 한다. 올해 아홉 살인 우리 아들. 나는 아들이 성인이 될 20살을 목표로 아직 11년 남았으니 천천히 가자라고 생각했다가 선배 엄마들한테서 혼쭐이 났다. 10년으로도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준비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고. 영화처럼 몇 달 만에 후딱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그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구청의 박 계장 역할을 맡은 박철민이었다. 그는 인규의 자립을 위해 많은 것들을 내 일처럼 앞장서서 지원했는데 나에겐 그 광경이 매우 낯설었다. 왜냐면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얘기를 들은 구청과 주민센터의 공무원들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한 부서에서 평생 일하지 않는다. 1년 또는 2년마다 부서를 이동한다. 새로 장애인 복지과에 온 공무원들은 늘 모르기만 했다. 그래서 장애 아이 부모들 사이에선 ‘새로 온 공무원을 가르쳐가며 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 마디로 영화 속 박 계장의 모습은 우리나라 복지 지원 인력의 현실을 보여준 게 아니라, 가야할 지향점을 보여준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저희 담당 아닌데요” “다른 과 가서 물어보세요”라는 말 대신 자신이 앞장서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공무원이라니. 게다가 그 따뜻한 시선은 대체 뭐지? 아무리 한 동네 살아도 공무원한테 그런 시선은 받아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영화는 모든 공무원이 박 계장처럼 되는 세상을 꿈꾸며 그런 캐릭터를 창출해 낸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바로 취업이다. ‘엘리트’인 인규는 참 쉽게 발달장애인 업계의 최상위 직업 중 하나인 제빵 분야에 곧바로 취업을 한다. 현실에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성인 발달장애인의 취업 현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암울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부터 갈 데가 없는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취업을 하려해도 일자리 자체가 너무 없는 데다, 얼마 없는 일자리도 기능이 우수하거나 사회성이 좋아야만 한다. 그렇게 특출한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이들은 몇 개월, 몇 년씩의 기다림을 참아낸 끝에 겨우 하루 3~4시간 일할 수 있는 주간시설 등에 간신히 한 자리를 얻곤 한다. 물론 그나마도 삼진 아웃제 등에 의해 몇 번 사고를 치면 쫓겨나기 일쑤지만.

이 모든 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면, 발달장애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평생 개학하지 않는 방학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자식만이 아닌 엄마 또는 아빠의 방학도 시작된다는 뜻이다. 비장애 아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펼쳐갈 스무살을 기쁨으로 맞이한다면, 발달장애 아이들은 긴긴 방학이 시작될 스무살을 두려움으로 시작한다는 뜻이다.

발달장애인 취업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어야 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생성키 위한 각계의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나서 “장애인은 빵 만들면 되겠네”라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라고 모두가 삼성전자에 쉽게 취업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김성균씨의 연기를 두고 “지적장애냐, 자폐냐” “중증이냐 경증이냐”를 두고도 말이 많다. 하지만 그건 아주 디테일한 부분이라 부모인 우리들 눈에나 크게 다가오지 일반 관객 시각에선 큰 차이가 없을 것이므로 넘어가기로 한다.

영화 ‘채비’가 개봉을 했다. 미래의 고두심이 될 나에게 이 영화는 픽션이 아닌 다큐다. 우리 아들이 성인이 되기까지 11년이 남았고, 내가 세상을 뜨기까지 20~40년이 남았다. 그 때 나는 무사히 아들을 자립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창문에 청테이프를 붙이고 번개탄을 피워 먼 여행길에 아들을 동행시킬까? 그 선택은 내 몫이 아니다. 영화 ‘채비’를 본 일반 관객들의 손에 달려있는 문제다. 우리 사회의 변화 여부에 달려 있는 문제다.

나는 영화를 본 관객들이 허구의 인물인 인규가 아닌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 아들의 자립을 도와줬으면 좋겠다. 작게는 인식을 바꿔주는 것으로, 크게는 발달장애인의 취업과 자립 등의 사회문제에 한 번씩 관심을 가져주는 것으로. 우리 아들처럼 중증의 발달장애인도 자립을 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을 보태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 역시 행복한 할머니가 되어 고두심처럼 웃으며 죽어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여행길에 동행할 준비를 하는 게 아닌 홀로 남겨두고 갈 ‘채비’를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사진: <채비> 공식 사이트

필자소개
류승연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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