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전선의 최전방 수호자 ‘사례관리팀’
복지전선의 최전방 수호자 ‘사례관리팀’
2017.11.15 18:13 by 최태욱

「 현관문을 열자마자 눈을 의심했다. 사람 사는 집이라고? 여기가?

첫 공습은 냄새. 쾌쾌하다 못해 코가 아릴 정도다. 시각적 쇼크는 더했다. 바닥에는 좁쌀 만 한 바퀴벌레 새끼가 활개치고, 식탁부터 찬장까지 이어지는 벽 이음새는 거미줄이 빼곡했다.

“청각장애인이 혼자 계신데, 도움이 필요해 뵌다”는 이웃의 의뢰. 

급한 마음에 달려오긴 했지만, 문 앞부터 난관이다.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 하나, 아니 들어갈 수는 있나…’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사연은 이렇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재가하여 집을 나갔다. 아들은 상처를 고스란히 떠안은 채 혼자 남겨졌다. 더군다나 청각장애인, 소통이 힘들다는 얘기다. 이후 아들은 세상과의 담을 높고 굳건히 쌓았고 어느덧 나이 사십을 훌쩍 넘겼다.

40대 독거남이 관심 있는 건 딱 한 가지. 프라모델 조립이다. 수급비를 받으면 몽땅 거기에 썼고, 하루 종일 로봇을 조립하며 지냈다. 청소는 당연히 관심 밖. 쌓이다 못해 찌들어진 때가 무심했던 세월을 보여준다.

일단 환경을 바꿔야 했다. 이런 상태라면 건강도 빨간 불이다. 하지만 굳게 닫힌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청소를 해드리겠다”는 허락을 받는 데만 몇 주가 걸렸다. 

문제는 또 있었다. 집안 상태를 본 청소전문업체가 작업을 거부했다. ‘너무 더럽다’는 이유였다. 최소한 청소업체가 일할 수 있을 정도론 만들어놔야 했다.

그때부터 집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거둬냈다. 안 쓰는 서랍장, 낡아 부식된 의자 같은 것들. 뭐하나 치워내면 벌레 먹어 썩은 곳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청소하고 돌아가면 늘 코끝엔 여운이, 신발엔 바퀴벌레 알이 끼어 있었다. 마스크로 무장한 공익근무요원들이 청소 사이사이에 방역작업도 도왔다.

여름 끄트머리에 시작된 작업은 초겨울이 돼서야 끝났다. 긴 설득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은 한 사람의 생활환경을 싹 바꿔놓았다. 이 일을 계기로 이 집의 문턱은 많이 낮아졌다. 지금도 2주에 한번 씩 들르는데, 청소 상태 ‘양호’다. 화장실 청소는 여전히 조금 미흡하지만 」

 

정영애(29) 대리가 지난해 가을을 회상했다. 지금도 그 냄새가 또렷이 기억난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새로운 발령지에서 처음 맡은 가정에 대한 추억. 그것만으로도 무슨 일을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정영애 대리는 ‘방화2종합사회복지관(서울 강서구)’의 사례관리팀 소속 사회복지사다. 사례관리팀. 복지서비스가 필요한 가정과 직접 만나는 복지 전달체계의 마지막 손길이다. 그만큼 중하고, 그만큼 고되다. 지난달부터 처음 손발을 맞추게 된 이 팀은 3명의 평균연령이 29.3세에 불과한 젊은 팀이다. 하지만 경험과 경력만큼은 결코 앳되지 않다.

방화2종합사회복지관 전경(좌), 사례관리팀원들 왼쪽부터 정영애 대리, 황보혜영 팀장, 김민교 대리.
방화2종합사회복지관 전경(좌), 사례관리팀원들 왼쪽부터 정영애 대리, 황보혜영 팀장, 김민교 대리.

“오전엔 주로 서류작업을 해요.”

황보혜영 팀장이 책상을 가득 덮은 서류 뭉치를 보면서 말했다. 사회복지기관이나 관련 부처에서 온 공문, 주민들이 신청한 서류, 회의 자료 같은 것들이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라는 지역 특성상, 사회복지사의 어깨는 더 무겁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차상위 계층의 비율이 66%에 이르고 독거노인, 장애인, 조손가정 등도 고르게 분포돼있다. 황보 팀장은 “공문이나 신청서 같은 게 아침에 몰리기 때문에 제 때 확인해 필요한 곳으로 연결해야 한다”며 바쁜 손을 움직였다.

오후 2시. 황보 팀장의 무대는 사무실 밖으로 바뀐다. 오전에 서류를 상대했다면, 오후엔 본격적으로 ‘사람 대하는 일’이 펼쳐진다.

“사례관리팀 복지사 한 명 당 거의 30가구 정도를 살핍니다. 미리 약속한 분들이 복지관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가정으로 직접 방문하기도 하죠. 구청이나 병원에서 ‘도와줄 수 있냐’고 문의하는 경우도 있고요. 신규 상담도 계속 들어와요. 동네로 이사 오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채비를 마친 황보 팀장이 하얀 종이상자를 짚어든다. 얼마 전 적십자에서 들어온 식료품 상자. 쌀, 라면, 떡 같은 것들이 빼곡 들어차있다. “보통 설 앞두고나 지금처럼 추석 앞둘 때 이런 게 많이 들어오죠. 1차로 나눠드리는 건 마쳤는데, 거동이 어렵거나 연로하신 분들은 직접 가져다드리기도 합니다.” 블랙&그레이 톤의 시크한 복장에 분홍색 삼색 슬리퍼, 그리고 하얀 식료품 상자를 든 모습이 묘한 부조화를 이룬다.

사례가정을 방문 중인 황보혜영 방화2종합사회복지관 사례관리팀장
사례가정을 방문 중인 황보혜영 방화2종합사회복지관 사례관리팀장

“한 달도 안됐는데 왜 약이 떨어져요. 달력에 약 먹는 날 표시해두시라니까.”

황보 팀장이 방문한 곳은 김순영(가명‧75‧서울 강서구)씨 혼자 사는 독거노인 세대. 김씨는 초기치매 증세에, 눈과 다리도 성치 않다. 인사 대신 약부터 챙기는 이유다. 이날 방문 목적은 사례관리팀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만족도 조사. ‘은빛천사파견지원사업’(소외됐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또래 노인이 신체‧정서적으로 돕는 서비스)의 성과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 다행히 김씨에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고맙지, 너무 고맙지. 오늘 아침에도 한 시간 넘게 청소해주고 갔어. 내가 눈에 안개가 낀 것 같아 청소를 못하거든. 저번 주엔 파마할 때 됐다고 미장원에 데리고 가더라고. 자기 다니는 데라면서. 말벗도 되고 참 좋아.”

김씨의 칭찬이 끊이질 않는다. 냉장고에 붙은 연락처를 가르키며 “아까도 전화 왔었다니까. 주말 잘 보내고, 급한 일 있으면 연락하라면서”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람과 자원을 이어주는 사회복지사에겐 최고의 찬사. 황보 팀장도 “심성 좋으신 분 뽑아드려서 그렇다”며 짐짓 너스레를 떤다.

프로그램 평가는 면밀하게(좌), 냉장고에 붙어있는 봉사자와 사회복지사의 연락처
프로그램 평가는 면밀하게(좌), 냉장고에 붙어있는 봉사자와 사회복지사의 연락처

오후 4시. 사례관리팀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한 팀이 된 지 이제 한 달 남짓, 아직은 살짝 어색하다. 어색할 때는 칭찬이 최고다.

“제가 팀장 초년생이라 부담이 많은데… 사실 우리 팀원들이 굉장히 엘리트거든요. 저보다 복지관 경험이 많아 배울 점도 참 많고요.”(황보혜영 팀장)

“옆에서 본 팀장님은 끊임없이 연구하는 분이에요. 요샌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한다더라고요. 사람의 심리를 잘 아는 건 사회복지사에게 굉장한 강점이죠.”(김민교 대리)

“김 대리님은 정말 열정적이에요. 전화로 해도 될 걸 굳이 방문해서 얼굴 보며 이야기를 하고 오죠. 큰 에너지를 얻습니다.”(정영애 대리)

겉보기엔 별 걱정 없이 살 것처럼 보이는 이들. 이웃 걱정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게 고될 법도 하다.

“아무래도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보니… 반말이나 욕을 듣는 경우가 있어요. 아동학대 분야에서 일할 땐 가족 욕까지 들어봤다니까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실 때도 있죠. 나름 치열하게 고민해서 나눠드리는 건데 ‘안 줄 거면 복지관 뭐 하러 있냐’란 말을 들으면 참 허탈하죠.”(황보혜영 팀장)

“저는 남자라 상관없는데, 여성들은 그런 대처가 어려울 수 밖에 없어요. 술 취해서 화를 내거나 희롱을 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 것에 익숙하지 못한 분들이 결국 그만두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김민교 대리)

하지만 이들에게 힘을 주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어떻게 사회복지사가 됐냐는 물음엔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 듯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사회복지학과 실습을 할 때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 일을 해야 겠다’란 확신이 들었다”는 것. 꿈을 묻는 질문에도 사람이 빠질 수 없다. 사회복지에 다양한 분야를 접목시켜보고 싶다는 황보혜영 팀장, 소소하지만 분명하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꿈이라던 정영애 대리, 사례관리를 통해 얻은 자양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김민교 대리. 이들 포부의 방향은 여지없이 사람을 향한다.

이야기를 마치고 복지관을 구경시켜주겠다고 나선 황보혜영 팀장 앞에 휠체어 한 대가 쪼르르 다가선다. 반갑게 인사하려던 황보 팀장은 휠체어에 앉은 여성의 근심어린 얼굴을 확인한다. “긴히 드릴 얘기가 있어서 왔어요.” 조심스레 꺼낸 한 마디. 이후 휠체어와 함께 사라진 황보 팀장은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복지관 구경대신, 사회복지사의 가치를 제대로 구경한 셈이다.

 

/ 사진: 문지원 작가

* 이 콘텐츠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국제구호개발NGO ‘굿네이버스’와 함께 합니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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