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그녀에게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그녀에게
2017.11.23 18:36 by 류승연

오랜만에 걸려온 지인의 전화 한 통. 안부를 묻는 말에 왈칵하고 터지는 울음. 아이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한마디. 말문이 막힌 나는 잠깐 동안의 침묵. 그러고 나서 꺼낸 말.

“괜찮아. 괜찮아. 인생 끝난 거 아니야.”

이제 막 이쪽 세계에 입문한 지인. 나는 지금부터 지인을 ‘그녀’라 부르기로 한다. 그녀는 친구일 수도 있고, 동네 아줌마일 수도 있고, 학교 선후배일 수도 있고, 옛 직장 동료일 수도 있지만 이제 막 이쪽 세계에 입문한 그녀가 자식의 장애를 주변에 공개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므로 ‘그녀’라는 말로서 신상을 보호하고자 한다.

발달이 또래보다 늦는 것 같던 아이가 결국 병원에서 발달장애 확진을 받게 되면 부모는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을 느끼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계획했던 가족의 모든 미래도 함께 무너져 버린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떻게 하면 될까?

울고만 있을 겨를은 없다. 엄마이기에, 부모이기에 방법을 찾아내려 한다. 이미 그 과정을 겪어 온 나는 그녀의 심정이 오롯이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알리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한배를 탄 동지가 되었으니까.

그녀가 눈물을 그치는 대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역 주민센터로 가서 바우처 카드(희망e든 카드)를 신청하는 것이다. 치료지원을 받을 수 있는 카드인데 100% 지원은 아니다. 매달 22만원 어치의 치료를 소득수준에 따라 0원~8만원을 내면 받을 수 있다. 그다음엔 주민센터에서 바우처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치료실 명단을 받는다. 일일이 찾아가 방문상담을 받고 각 과목별로 치료 대기 신청을 걸어놓으면 된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까지도 기다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처음엔 눈에 띄는 모든 치료실마다 대기를 걸어놓는 게 좋다. 그래야 나중에 연락이 왔을 때 거절을 할 수도 있고 치료실을 옮길 수도 있다. 지역 내 장애인복지관은 대기 1순위다. 치료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면서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데다 부모를 위한 각종 활동도 많기 때문에 자주 드나들면서 ‘정보의 창구’로 활용하는 게 좋다.

치료 과목은 의사의 견해와 치료실 초기상담을 통해 얻은 정보를 토대로 엄마가 결정해야 한다. 아이가 장애 진단을 받고 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치료를 다 받게 하고픈 게 부모 마음인데 무작정 치료실을 많이 다닌다고 그에 정비례해 좋아지는 건 아니다. 아이에게 과도할 정도의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아야 하고, 가정 경제에도 무리가 따르지 않을 범위 내에서 치료 계획을 세우면 딱 좋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치료를 제공받은 아이는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도를 넘어간 과도한 치료는 위험하다. 아이는 물론 엄마도 힘들게 되고 그 때문에 가정경제까지 흔들리기 시작하면 부부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악화된 부부관계는 주 양육자인 엄마를 더욱 지치게 하고, 지친 엄마는 아이를 잘 돌볼 수 없다. 우울감에 빠져 상호작용 해주지 않는 엄마로 인해 아이의 발달은 더 늦어진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반면 이런 말도 있다. 취학 전에, 그러니까 장애 진단을 막 받았을 이 시기에 ‘엄마가 원하는 만큼’ 이런저런 치료를 다 시켜봐야 나중에 후회도 미련이 없다고. 맞는 말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많은 엄마들은 아이가 다니는 치료실 개수를 늘리는 것으로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덜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에서 아무리 말해도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나 역시 친정엄마가 아들 치료 한 과목을 줄이고 그 돈으로 딸래미 학원 하나를 더 보내거나 아이들 고기를 한 번 더 사 먹이라고 그렇게 말해도 귓등으로 흘려보내곤 했다. 스스로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온갖 치료에 매달리고 난 뒤에야 나중에 내려놓을 줄 알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 어떤 치료들을 받게 할까라는 부분에 있어선 각자가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장애 아이들의 특성은 저마다 다를뿐더러 각 가정의 여건도 다르기 때문.

아! 본격적인 치료실 순방 이전에 특수교육지원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고 통합어린이집이나 특수학급이 개설된 유치원에 입학신청을 해 놓는 것은 필수다.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되었음에도 다른 아이들과 같은 교육을 받게 하려고 무리하는 것보단 아이의 발달상황에 맞는 특수교육을 일찍부터 시작하는 게 낫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일단 아이에게 필요로 하는 환경이 제공되었으면 이젠 부모의 차례다. 부모도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다. 일단 같은 슬픔을 지닌 이들을 만나 정보와 공감을 나눌 방법을 찾아 볼것. 인터넷 카페나 밴드, 페이스북 등을 통하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과 교류를 늘려가는 건 단지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양육자인 부모의 정신건강에 도움을 받는 측면이 더 크다. 나 또한 같은 처지의 부모들을 많이 알아가면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한다. 바로 우리 아들보다 어린 영유아 부모들이 하는 고민이 나도 그 시기에 했던 고민 그대로라는 사실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 또한 나보다 앞서 아이를 키운 선배맘들이 했던 고민 그대로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대로라고.

그렇기에 우리는 교류를 통해 서로서로 연계됨으로써 고민을 나누고, 앞선 지혜를 나누어 받고, 가야 할 방향성을 정하고, 어깨 토닥토닥 위로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아무리 같은 슬픔을 지니고 있다 해도 이 세계 역시 사람들이 모인 ‘똑같은 세상’이라는 점이다. 갈등도 있고 배신도 있고 시기와 질투도 있다. 그러니 각자가 중심을 잡고 적당한 선을 지킬 것. 이리저리 휩쓸리지 말고 중심을 잡을 것.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이 세계에서도 그러면 된다.

이제 막 장애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 아마 그녀는 향후 몇 년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될 것이다. 살면서 경험해 본 적 없는 아이의 낯선 행동에 당황도 하고 눈물도 나고 화도 날 것이다. 거리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타인의 시선에 ‘부정적 감정’이 실리는 경험도 처음으로 하게 될 것이다. 그때 받는 상처와 충격은 꽤나 커서 자꾸만 마음의 문을 닫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남편과의 관계도 한동안은 악화될 것이다. 아이의 장애는 부모 때문이 아니지만 갑자기 바뀐 환경에 부부 모두 서로를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아빠는 밖으로만 나돌지도 모르고 그럴수록 엄마는 아이의 과도한 치료에 매달릴지도 모른다.

눈물 흘리는 밤이 많아질 것이고, 죽음에 대한 생각도 시시때때로 찾아올 것이다. 때론 정신이 폭발할 것 같은 답답함에 마구 소리를 지르며 미쳐가는 것 같은 느낌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이 모든 슬픔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녀는 장애를 가진 아이로 인해 더 많이 웃고, 스스로 더 나은 인간이 되어, 더 행복한 일상을 살게 될 것이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며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며 그동안 알고 있던 가치관은 전부 깨지게 된다. 좋은 대학? 대기업 직장? 유명 브랜드 아파트? 인생에서 중요한 건 스펙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그보다는 다섯 살 된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렀을 때 느끼는 감동에 눈물을 흘리게 된다. 여덟 살 된 아이가 혼자서 바지를 입은 어느 날 엄마는 춤을 추게 된다. 열일곱 살의 아이가 식당에서 혼자 음식 주문에 성공했을 때 엄마의 가슴은 찌르르 울리며 자식을 껴안는다. 고맙다고 속삭이게 된다.

인생에서의 행복은 거창한 데서 오는 게 아니다. 매일의 일상 속에, 소소한 일상 속에 눈물마저 날 것 같은 기쁨과 행복이 숨어 있다. 그것을 발달이 느린 장애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알게 된다. 깨닫게 된다. 장애를 가진 아이 덕분에 심심할 틈 없으면서도 많이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일생을 살게 되었다는 걸 어느 순간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괜찮다고. 아이에게 장애가 있어도 괜찮다고. 인생 끝난 거 아니라고.

그녀가 발달장애라는 세계에 새로 입문을 했다. 환영한다고, 어서 오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 길은 힘든 길이기에 축하해 줄 수가 없다. 하지만 슬픔만 있는 길은 아니다. 이 세계에도 기쁨은 있고 그 기쁨은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종류의 것일 터이다. 그러니 나는 말한다. 괜찮다고. 아이가 장애를 갖게 되었어도 괜찮다고.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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