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프라이데이의 검은 그림자
블랙 프라이데이의 검은 그림자
2017.11.24 13:48 by 제인린(Jane lin)

‘블랙 프라이데이’가 시작됐습니다. 원래 미국에서 연중 최대의 쇼핑이 이뤄지는 날을 부르는 용어죠. 미국에선 한 해 소비의 20%를 차지할 만큼 핫한 시기랍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대형 쇼핑 이벤트로 정착되는 중이고요. 중국에서도 지난주 비슷한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지름신’ 제대로 강림한 그들의 풍경을 살펴볼까요?

 

| 他们说 , 그들의 시선

我回家就买买买买买!’(집으로 돌아가서 물건을 사고사고사고 또 사겠어!)

한 학생이 이런 내용의 문자를 보내왔다. 필자가 강의하고 있는 대학교의 1학년생이었다. 올해로 갓 스물을 넘긴 앳된 모습. 이 청년은 지난 한 달간 매일같이 야간 아르바이트를 해왔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과거에도 주말 아르바이트를 통해 용돈을 마련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매일같이 밤새도록 주방을 청소한 적은 없었다. 아침 8시면 학교 수업이 시작됐지만, 그에게 수업은 부족한 잠을 채우는 시간일 뿐이다.

지난 한 달간 매일같이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유는 11월 11일 단 하루 동안 진행되는 ‘슈앙스이’ 행사 때문이었다.

 

| 她说, 그녀의 시선

중국에서는 매년 11월, ‘슈앙스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쇼핑 행사가 열린다. 슈앙스이는 중국 최대 온라인 유통 업체 ‘알리바바(alibaba)’에서 2009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는 대형 이벤트. 알리바바는 중국의 블랙 프라이데이로 불리는 ‘광꾼지에(光棍節)’를 실시하는 대표적인 온라인 유통업체다.

하루 동안 업체에선 수십억 위안의 홍바오(紅袍, 빨간 봉투를 뜻하는 무료 쿠폰)를 뿌린다. 이날은 자정을 넘긴 시각에도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잠들지 않는다. 홍바오를 사용해 저렴한 가격으로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서다. 이날 하루는 새벽이 깊어질수록 창밖으로 불이 새어 나오는 집이 늘어나는 진귀한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더욱이 올해 슈앙스이 행사가 진행된 11월 11일은 토요일이었다. 전날인 10일 금요일 저녁 시간, 쇼핑을 위해 너나할 것 없이 평소보다 퇴근을 서두르거나 지하철 플랫폼에서 달리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엔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중국에서 금요일 저녁을 온전히 쇼핑행사에 할애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행동이 느리다는 의미의 ‘만만디’라는 별칭을 가진 중국인들을 ‘뛰게’ 만드는 슈앙스이는 대체 무엇일까.

올해는 지난 10월 중순부터 슈앙스이에 대한 다양한 이벤트성 홍보가 줄곧 진행됐다. 해당 이벤트는 현지 유력 언론을 통해 주로 보도됐는데, 올해는 특히 소비자를 현혹하는 ‘슈앙스이 전야제’라는 이름의 축제도 대규모로 열렸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 메인 페이지에 노출돼 있는 ‘슈앙스이’ 행사 홍보 문구. 해당 문구를 클릭하면 다양한 업체 상품을 바로 구매할 수 있다. (사진: 바이두 메인 페이지 캡쳐)

알리바바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淘宝)’는 슈앙스이 전야제를 개최하면서 1500만 가지의 제품을 판매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쇼핑몰인 ‘티엔마오(天貓)’는 소비자들에게 총 6억 위안에 달하는 홍바오를 제공했다. 인근 국가들의 관심도 상당했다. 올해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대형 쇼핑몰과 연계해 ‘타오바오 컬렉션’이라 일컬어지는 행사도 진행됐다.

전 세계 각국의 브랜드가 참여하다 보니 업체의 홍보를 위한 저가 제품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제품들은 1개 계정당 구매할 수 있는 수가 5개로 제한됐다. 슈앙스이에 대한 관심은 국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1월 11일 하루 동안, 포털 사이트 네이버 최다 검색어엔 ‘슈앙스이’, ‘광군제’가 걸려 있는 기현상이 목격됐다.

‘오늘 단 하루’라는 문구로 홍보하고 있는 ‘티엔마오’ 메인 홈페이지. (사진: 티엔마오 캡쳐)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온라인 쇼핑몰 ‘징둥(京東)’에서는 ‘징동 Top Life’라는 명칭으로 고가의 전자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행사를 진행했다. 징둥에서는 스마트폰, 컴퓨터 등 고가의 전자제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 최신 휴대폰, 노트북 등 160여 종류를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내놨다.

징둥의 이벤트엔 5000여 곳의 전자 제품 업체가 참여했다. 중국 전역에 소재한 400여 곳의 오프라인 대형 전자상점에서도 징둥과의 협업을 통해 같은 할인을 적용했다. 이벤트 기간 동안 징둥은 총 1억 1000만 위안(약 181억원)의 홍바오를 지급했으며 베이징, 저장, 산시, 후난 등 일부 지역의 주문은 자체 개발한 로봇을 활용해 무인으로 배달하는 이벤트를 펼치는 등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같이 성대한 온라인 쇼핑 행사들이 11월 11일 자정 시작과 동시에 베이징 위성TV, 저장 위성TV, 선전 위성TV 등에서 생중계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도 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아이들은 온라인 노출에 취약하다. 대형 할인 행사를 언론이 앞다퉈 보도하고, 업체들은 한 달 전부터 ‘전야제’라는 이름으로 홍보하니 아이들이 이 행사를 위해 10월과 11월을 고스란히 할애하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11월 11일 단 하루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홍바오(紅袍, 무료 쿠폰)과 할인 행사 제품. (사진: 타오바오 홈페이지 캡쳐)

실제로 필자가 아끼는 학생 중 몇 명은 이번 행사를 위해 대부 업체에서 돈을 빌린 뒤, 11월 한 달 동안 대출금을 갚기 위해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겠다는 포부를 당당히 밝혔다. 중국의 새로운 사회문제 중 하나가 대학생에게 신용대출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어른들이 만든 ‘쇼핑데이’의 가장 큰 희생자는 지나친 소비문화에 노출된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학생들이라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른들이 만든 ‘사고파는’ 문화에 무분별하게 뛰어든 어린 학생들은 과연 ‘소비자’일까? 오히려 문화의 주체성을 잃고 야간 아르바이트와 건설 일용직으로 팔려나가는 ‘상품’은 아닐까?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