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모금에 울린 경종
방송모금에 울린 경종
2017.11.27 19:31 by 이창희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 마음 깊은 곳까지 밀려드는 딱한 마음,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돕고 싶다는 결심. TV를 통해 모금 방송을 지켜본 시청자는 그렇게 기부자가 된다. 하지만 최근 단 한 번의 사건으로 인해 그 같은 루트는 쪼그라들었다. 연말을 앞두고 난데없이 불어 닥친 ‘기부한파’. 그럼에도 어려운 이들에게 온정의 손길이 향해야 한다는 ‘정의’는 변치 않는다.

 

| 우리가 접한 방송모금, 이렇게 이뤄져 왔다

이태헌 굿네이버스 미디어팀장에 따르면 방송모금은 방송사와 구호단체의 협의 하에 사례자를 선정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굿네이버스 같은 국제구호단체의 해외 지부나 관련 기관에선 적합한 사례자를 확인한 뒤 출연 동의를 받는다. 이와 함께 모금의 전반적인 과정과 지원 내역 등을 설명하고 난 후에 방송 제작에 착수하게 된다.

사례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방송을 통해 모금이 이뤄진 후 2~3개월 내에 이뤄진다. 가급적 현물 지원으로 하되 생계비 같은 부분은 다달이 쪼개 현금으로 지원한다. 현금 지원을 요구하는 사례자들이 많지만 기부자들의 모금액은 절차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길 수는 없다.

굿네이버스와 SBS가 함께 진행한 희망TV SBS
굿네이버스와 SBS가 함께 진행한 희망TV SBS

적잖은 이들이 모금 전반의 투명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공개하는 것은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기부자의 개별 기부액은 물론이고 사례자 개개인이 얼마를 어떻게 받았는지는 일일이 계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 실질적으로 ‘얼마’가 지원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례자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도 있다.

대신 기관 홈페이지 내 캠페인 결과, 연말보고서, 별도 안내지를 통해 사례자들의 후기와 변화 등을 충실히 다루는 것으로 이를 대신한다. 이를테면 상반기에 방송모금을 진행했다면 하반기에 그 결과를 충실히 소개하고, 특히 임팩트가 있었던 부분을 조명해 모금의 결과를 설명하는 식이다.

 

| 인권과 교육의 불모지 아프리카에 꽃핀 희망

#사례1
아프리카 차드에 사는 잔느 무스타파 사지르(16·여)는 2010년 개교한 요나스쿨의 1기 졸업생이다. 요나스쿨은 배우 고(故) 박용하 씨와 그의 팬들의 뜻을 모아 굿네이버스가 건립한 학교다. 조혼 풍습으로 인해 여성 청소년이 중등교육을 받는 것이 이례적인 차드에서 잔느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며 첫 여성 총리의 꿈을 키우고 있다. 무엇보다도 잔느의 부모님이 요나스쿨을 통해 교육에 눈을 뜬 부분이 고무적이다. 슬하에 여섯 남매를 모두 학교에 진학시켰을 정도다.

#사례2
탄자니아의 우굼바(19·여)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아픈 몸과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으나 2012년 마엔델레오 스쿨에 입학하면서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굿네이버스와 희망TV SBS가 함께한 모금 방송을 통해 이뤄진 결과다. 2년 만에 다시 만난 우굼바는 학교에서 반장을 맡고 거의 모든 과목에서 1등을 차지하는 등 활기찬 학생으로 변모했다. 상급학교로 진학해 회계사의 꿈을 키우고 있는 우굼바는 마엔델레오 스쿨 학생들의 롤모델이 됐다.

방송모금을 통한 지원으로 새 삶을 찾게 된 잔느(좌), 우굼바
방송모금을 통한 지원으로 새 삶을 찾게 된 잔느(좌), 우굼바

위의 두 사례는 방송모금이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온 스토리다. 특히 잔느의 경우 방송 이후 결연후원도 연계돼 더욱 안정적인 환경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요나스쿨은 약 500명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초등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보건‧위생교육, 부모대상 교육 등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오고 있다. 우굼바 역시 방송 모금을 통해 지속적인 의료 및 교육 지원을 받아 건강을 되찾고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단순히 우굼바 개인의 구제를 넘어 탄자니아 사회 전반에 교육의 필요성을 일깨운 점이 큰 수확으로 꼽힌다.

특히 희망학교 지원사업은 아프리카의 열악한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교육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2012년부터 시작돼 올해 1월 탄자니아에 100호 희망학교가 개교했다. 굿네이버스는 이 중 34개교를 희망TV SBS와 함께, 자체적으로는 18개교를 건립해 11개국 총 52개교(2016년 12월 기준)를 세웠다.

5년 동안 희망학교 평균 학급 수는 38% 증가했고 1개 교실당 학생 수는 22% 감소해 교육 환경이 점차 쾌적해졌다. 희망학교 출신 학생의 진학률과 졸업률은 각각 21%와 14%씩 늘었다. 교육의 질 자체도 높아졌지만 학업의 지속성이 갖춰진 점이 큰 성과로 분석된다.

현지 교육 현장의 반응도 뜨겁다. 차드 로로 지역개발위원회 대표인 압델 아지즈 모스 씨는 “희망학교를 통해 아이들뿐만 아니라 희망이란 단어 그 이상을 선물해 준 ‘좋은 이웃’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뜻을 보내왔다. 차드 요나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무무네 구드야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희망학교 장학생으로 선발되면서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며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장학금을 받아 정말 기쁘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전했다.

 

| 그럼에도… 다시 구축해야 할 신뢰

방송을 통한 모금은 전통적으로 그 효과성을 입증받은 방식이다. TV를 통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도가 여전히 높다는 것을 나타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른바 ‘어금니 아빠’ 사건은 이런 신뢰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범죄 자체는 개인의 일탈로 비롯됐지만, 그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과 사후관리를 게을리 한 방송사와 기관의 책임 역시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계자들은 “꼼꼼한 관리가 이뤄지지 못한 채 ‘방송을 위한 방송’이 된 사례로, 방송모금이 방송장르 중 하나로 여겨지는 세태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도움이 필요한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기부 한파’ 속에 당장 여론을 되돌리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신뢰를 회복해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도록 하는 것은 NPO들의 몫으로 남았다.

이태헌 굿네이버스 미디어팀장
이태헌 굿네이버스 미디어팀장

이태헌 팀장은 “이번 일은 방송모금을 하는 모든 구호단체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든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사실 방송모금을 통해 기부를 결심하는 분들은 어떤 형태로든 용기를 낸 분들입니다. 직접 기부 의사를 밝히는 것도, 결제계좌 등 자신의 정보를 믿고 맡기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용기들이 모일 수 있도록, 기부자의 손길이 수혜자에게 온전히 연결되도록 노력해야죠.”(이태헌 팀장)

 

* 이 콘텐츠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와 함께 합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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