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질린 사람들을 위하여
재밌는 선택형 SNS를 만든다, 사바나덕
페이스북이 질린 사람들을 위하여
2017.11.29 15:11 by 최현빈

“난 SNS 다 지웠어. 들어가면 예쁜 카페, 외국 여행 사진만 있어서 괜히 자괴감이 들더라고.”

연말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말했다. 많은 이들이 그 말에 공감했다. SNS에 마지막으로 글을 쓴 게 언제였던가. 게시물과 댓글은 물론, ‘좋아요’ 버튼도 잘 누르지 않았다. 내가 하는 행동들이 남에게 보이는 게 불편했으니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하지만 여전히 SNS에 대한 갈증은 있었다. 버디버디부터 싸이월드,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온라인 속 나만의 공간은 항상 필요했으니까. ‘익명’으로 ‘선택’하는 SNS, 사바나보트가 눈에 들어온 이유였다.

사바나덕 팀원들의 모습. 왼쪽부터 표동열 대표, 안재민 마케팅총괄, 이지은 개발자, 엄현태 개발자
사바나덕 팀원들의 모습. 왼쪽부터 표동열 대표, 안재민 마케팅총괄, 이지은 개발자, 엄현태 개발자

 

| [FIRST trigger] 표현은 자유롭게, 노출은 은밀하게

사바나덕(SAVANNADUCK)은 익명∙선택∙재미 지향적인 SNS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지난해 말, 기획을 시작해 올 9월, ‘사바나보트(SavannaBoat)’란 이름의 서비스를 선보였다.

“페이스북은 너무 많은 사람에게 보여지고, 인스타그램은 좋은 모습만 올리는 게 싫었어요. 남들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SNS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죠.”

표동열(29) 사바나덕 대표의 말이다. 사바나보트의 아이디어는 표동열 대표와 안재민(28) 마케팅총괄의 머릿속에서 시작됐다. 구체적인 기획안이 잡히고 엄현태(26)∙이지은(34) 개발자가 합류하며 팀 ‘사바나덕’은 완전체가 됐다.

사바나보트에 로그인을 해봤다. 이름이 있을 자리엔 ‘욜로족 푸른가슴왜가리’라는 닉네임이 보여졌다. 이곳에선 자신의 이름이 절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매일 한 마리 동물 닉네임이 랜덤으로 주어진다. 오늘은 ‘소소한 장수거북’이 되고, 내일은 ‘배신하는 늘보원숭이’가 될 수 있는 식이다.

참여 방식은 간단하다. 각 게시물이 두 개의 Vs.이미지로 구성되는데, 자신이 선호하는 선택지를 두 번 터치∙클릭하면 된다. 한때 예능에서 유행했던 ‘이상형 월드컵’ 같은 걸 생각하면 편하다.

게시물은 중의적인 의미의 보트(Boat)라고 불린다.

사바나보트 페이지의 모습. 우측 하단에 보이는 ‘욜로족 푸른가슴왜가리’가 에디터에게 부여된 오늘의 닉네임이다.
사바나보트 페이지의 모습. 우측 하단에 보이는 ‘욜로족 푸른가슴왜가리’가 에디터에게 부여된 오늘의 닉네임이다.

 

| [FIRST trouble] 익명성이 가진 딜레마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대부분의 SNS는 자신의 실명과 사진으로 프로필을 만든다. 반면 사바나보트는 어떤 경우에도 이름을 노출할 수 없다.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건 익명성이 가진 장점이지만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자신을 뽐내거나, 누군가와 콘텐츠를 나눌 수 없는 점이다.

“사실 ‘익명성을 고집해야 하나?’하는 고민도 많이 했어요. 댓글을 통한 소환이나 팔로우(Follow) 같은 기능을 포기해야 했으니까요. 아무래도 기존 SNS 시스템에선 자신을 노출하는 게 더 익숙하죠.

하지만 어떤 주제에 대해 순수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플랫폼의 완성도를 높이고 회원을 모으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안재민 마케팅총괄)

사바나덕의 최우선 목표는 많은 사용자를 모으는 일이다. 그때까진 자신들이 만들고 싶었던 SNS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낼 계획이다. 사용자가 확보되면 수익에 대한 계획도 본격적으로 실행된다. 이미 수익모델은 만들어져 있다. 네이티브 형태의 광고를 콘텐츠로 내보내는 것이다. 표동열 대표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이는 콘텐츠의 특성상 자연스러운 광고 제작이 가능하다”고 했다. 네이티브 광고가 자리를 잡으면 쇼핑몰, 크라우드펀딩과의 협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 [FIRST join] 느리지만 견고하게, 댐을 만드는 비버처럼

수익모델에 대해선 팀원 모두 줄줄이 읊을 수 있을 정도지만, 사용자가 모이기 전까지는 ‘그림의 떡’이다. 이제 막 사막(사바나)에서 생존을 시작한 오리(덕)들은 현재 어떤 상황일까? 표동열 대표는 “지금은 모두가 버틴다는 생각이다”고 운을 뗀 뒤 “수익이 났을 때 분배에 대한 부분은 이미 내부적으로 정리가 돼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지금 팀원들과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표 대표는 “스타트업을 경험해 보니 가장 중요한 건 팀원을 구하는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렇다면 다른 팀원들은 사바나보트의 팀워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엄현태 개발자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걸 기획하다 보니 의견이 충돌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의 팀워크가 빛을 발할 때가 바로 이런 상황이죠. 새로운 의견에 대해서 절대 무시하거나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요. 가능성에 대해 최대한 생각하고 대안과 아쉬운 부분에 대해서도 함께 얘기합니다. 의견이 모이지 않으면 완전히 설득될 때까지는 결정하지 않죠. 조금 느리긴 하지만, 덕분에 충돌 없이 발전할 수 있어요.”

사실 사바나덕이 표동열 대표의 첫 스타트업 팀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만난 안재민 마케팅총괄과 신소재를 아이템으로 팀을 결성했던 적도 있다. 최우수 프로젝트팀으로 선정될 정도로 각광받았지만, 사업화라는 벽에 부딪혀 실패를 맛봤다. 

고배를 마셨던 두 사람이 지금까지 함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팀워크가 있었기 때문. 네 명의 팀원들은 입을 모아 “앞으로 사바나보트가 얼마나 커지던든 지금의 팀원들과는 꼭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바나덕은 견고한 팀워크를 자랑한다.
사바나덕은 견고한 팀워크를 자랑한다.

 

| [FIRST outcome] 모든 사람들이 Vote와 Boat를 헷갈릴 때까지

사바나보트는 지난 9월 웹 페이지를 론칭한 데 이어 11월부터는 안드로이드∙iOS 스토어에 어플리케이션 등록을 마쳤다. 지난여름엔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1500만원의 투자금도 유치했다. 내년 3월, 투자자를 상대로 한 성과평가의 결과가 좋을 경우, 추가 투자금도 받을 수 있다. 현재 사바나보트의 회원 수는 약 1300명에 불과하지만, ‘0’에서 시작한 이들에겐 이 모든 것들이 달콤한 과실이다.

사바나덕의 진짜 목표는 매출이나 투자 같은 게 아닌 듯하다. 팀원들은 한목소리로 “페이스북에서 쓰이는 ‘타임라인’란 말이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것처럼, 선택에 기로에 놓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보트 띄워봐’라고 말하게 되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티-타임 제안이 왔다. 에디터가 메뉴를 고민하자 표 대표가 당연한 듯 팀원들에게 말했다.

“보트 띄워봐.”

당신의 선택은?
당신의 선택은?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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