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만나는 발달장애인
지하철에서 만나는 발달장애인
2017.12.13 17:56 by 류승연

지난주 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지하철을 탔다. 행사 후 술자리가 예정돼 있어 차를 놓고 갔다. 모처럼 나도 맥주 한 잔 마실 기대감에 부풀었다.

대가는 치러야 했다. 올 때는 택시를 타더라도 갈 때는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아들이 버텨줄까 조마조마했지만 살아나가기 위해선 익혀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루한 지하철 여행에 적응하는 법.

“잉잉~”하면서 짜증을 내기도 했고 살짝 울먹이기도 했지만 두 번째 지하철까진 그럭저럭 합격이다. 문제는 세 번째. 마지막 지하철이 역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아들의 몸이 비비 꼬인다. 잠실역에서 석촌역까지 딱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된다. 남편과 나는 아들을 달랠 새도 없이 팔을 잡아끌었다.

지하철 안에 들어서자마자 아들이 폭발을 한다. “우왕~” 그러더니 울면서 바닥에 대(大)자로 누워 버린다. 금세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고 나는 무릎을 꿇어 아들을 달래고 일으켜 세웠다. 훌쩍 큰 아이가 말은 못하고 옹알이 같은 외침을 쏟아내면서 드러누우니 사람들이 알아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라는 것을.

이런 순간마다 쏠리는 시선. 시선. 시선들.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처음엔 창피했고 수치스럽고 화가 났는데 이제 그런 단계는 지났다.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내 할 일을 한다. 얼굴에 철판이 깔린 것인지, 해탈한 것인지….

하지만 이날은 나도 그러질 못했다. 한껏 멋을 낸 20대 아가씨 한 명이 “어머낫” 그러며 과도하게 반응한다. 아들을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바닥에 고인 구정물을 피하기 위해 발을 빼는 듯한 모습으로 거리를 둔다. 그 모습을 그냥 넘기지 못 하고 순간적으로 화가 나 버렸다.

아들이 드러눕자 분명 엄마인 나는 잽싸게 따라 앉으며 상황을 수습했다. 그 과정을 옆에서 모두 지켜봤으면서 굳이 그런 반응까지 보일 필요가 있었을까?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자 나는 그만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봐 버렸다. 3초쯤 되었을까? 5초까지 되었을까?

째려보는 게 아닌 정면으로 쳐다보는 눈 맞춤이다. 침묵한 채 하고 싶은 모든 말을 눈빛에 담아 건네는 눈 맞춤. 허허. 그런데 이 아가씨도 보통이 아니다. 내 눈빛이 과히 살갑지는 않았을 텐데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본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다. 하지만 내 옆에는 남편이 있었다. 욱하는 다혈질의 남편. 당황하기는 남편도 마찬가지. 아들이 눕자마자 곧바로 조취를 취한 건 남편도 마찬가지. 그런 상황에서 아가씨가 보인 태도는 남편의 뚜껑도 열어버렸다. 안내방송이 나오고 서서히 정차역으로 들어서는데 남편이 그녀에게 덕담을 건넨다.

“너도 이 다음에 결혼하면 꼭 장애 아이를 낳아라!”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남편의 모습을 처음 봤다. 문이 열리고 내리자 나는 남편을 나무랐다.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겠어”.

얼마나 독하고 못된 장애아 가족이라 여겼을까. 당황해서 남편을 꾸짖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시원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가진 평범한 사람. 장애 아이의 엄마이기 이전에.

시선은 말이다. 우호적이지 않은 그런 시선은 말이다. 자존감에 큰 상처를 남긴다. 남편과 나와 딸의 자존감뿐 아니라 당사자인 아들의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발달장애인은 어떤 성인으로 성장하게 될까?

시선을 바꿔 내가 아닌 세상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세상에 좋은 건 어느 쪽일까?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발달장애인일까? 아니면 세상은 언제나 자신에게 등 돌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발달장애인일까? 어느 쪽이 세상에 좋을까? 좋은 싫든 자신이 껴안아야 하는 ‘세상’의 입장에서 말이다.

세상에 좋은 게 발달장애인에게도 좋다. 자존감은 비장애인만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니다. 안 그래도 성장의 과정에서 친구들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점점 알아채 가며 자존감에 상처받을 일이 수두룩한 게 발달장애인 당사자로서의 삶이다. 스스로가 느끼는 자괴감도 상당할 텐데 여기에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까지 가미된다면 어떨까? 그것도 반복적으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발달장애인을 가장 자주 만나는 곳은 지하철이다. 발달장애와 관련된 직종에서 일하지 않는 한 평소엔 발달장애인과 한 공간에 있어 볼 기회가 거의 없다.그런데 지하철에서 만나는 발달장애인은 이상하기만 하다.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몸을 앞뒤로 흔들어대기도 하며, 나이가 어릴 경우 우리 아들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드러눕기도 한다. 경계심이 들만도 하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알고 나면 오해는 풀린다.

혼자서 말을 중얼거리는 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려는 노력이다.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머리를 때리는 등 상동행동을 하는 건 지하철이라는 환경에서 오는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불안할 때 입술을 깨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 아들처럼 갑자기 드러눕는 어린 발달장애 아이들의 경우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서, 요구하는 게 있어서 그런 것이다. 말을 못하니 온몸으로 자신의 부정적인 의사를 표현하는 것인데 어린 그들의 곁엔 상황을 수습할 보호자가 함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발달장애인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건 장애가 없는 우리들의 몫이다. 그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나를 위해서도, 세상의 관점에서도 자존감이 잘 형성돼 있는 발달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게 더 좋다.

아들이 드러눕기 이틀 전, 나는 지하철에서 특이한 케이스의 발달장애인을 한 명 만났다. 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년은 할머니와 함께 지하철에 올랐다. 아직 말을 못하는지 “응응~ 응응~”그러며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소년은 “응응~”이라는 말만 하는데 할머니는 모든 걸 알아듣고 소년과 대화를 나눈다. 나는 대단한 할머니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보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소년이 “응응~” 그럴 때마다 핸드폰을 내밀었고 그때마다 할머니가 핸드폰을 본 뒤 소년에게 말을 건넸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휙 돌아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 아들도 장애가 있는데 소년의 모습을 지켜보다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다고. 아이랑 핸드폰으로 대화를 하는 거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그렇다면서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갈때@@마트에들려서사가”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띄어쓰기는 안 돼 있었지만 의미는 명백했다. 갈 때 집 근처 마트에 들려서 무엇인가를 사가지고 들어가자는 뜻이었다.

말을 할 줄 모르는 발달장애 소년이 한글을 익혀서 핸드폰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말보다 글을 먼저 익히는 아이들 얘기를 듣곤 했는데 실제로 그런 사례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글을 익혔다는 게 아니다. 말은 못하지만 이미 문장으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아이의 인지가 형성돼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발화가 안 되는 육체에 갇혀 있을 뿐 아이의 정신세계는 우리와 같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그런 발달장애인에게,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옆에서 수군대거나 이상한 시선을 쏘아대면 어떨까? 그 수군거림과 시선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자란 아이의, 발달장애인의 심정은 어떨까?

평소 우리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발달장애인을 만날 때 5초 정도만 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는 건 얼마든지 해 볼 수 있다. 내가 그라면…. 나는 지금 어떤 느낌이고 무슨 생각이 들까? 단 5초면 된다.

그러고 나면 그 이후부터 달라질 것이다. 그를 쳐다보는 내 눈빛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건 그를 쳐다보는 내가 아니라 나를 쳐다보는 그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발달장애인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방법? 어렵지 않다. 5초 동안 입장 바꿔 생각하고 눈빛만 바꿔주면 된다. 그 하나의 작은 실천이 쌓이고 쌓이면 발달장애인은 세상을 따뜻한 곳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자존감이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실은 발달장애인만이 아닌 모두가 함께 누리게 될 것이다. 나는 그리 믿는다.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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