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금지되고 ‘국가’의 통제에 따라야만 했던, 잔혹하고 부끄러운 과거. 물론 이제 그러한 국가적 통제는 지구상에서 점점 소멸해가는 추세지만, 여전히 역사의 시계추가 돌지 않는 어떤 국가도 있습니다. 우리 바로 옆에 말이죠.
|他们说, 그들의 시선
얼마 전 수업 시간의 일이다. 40대 여성으로 보이는 신원 미상의 중국인이 강의실로 들어왔다.
“교수님, 제가 잠시 학생들과 나눌 이야기가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시간을 내주는 거야 어려울 것이 없지만 굳이 강의를 중단하면서까지 학생들에게 당부해야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길래… 얼마나 중요한 내용일까 싶은 작은 반발심이 일었다. 고압적인 자세로 학생들 앞에 선 그녀는 딱딱하고 메마른 목청을 한껏 높였다.
“지금 설명하는 내용은 반드시 주의해서 듣고 실천해야 한다. 18일부터 24일까지는 제 19대 당대회가 베이징에서 진행된다. 이 기간 동안 대학에서는 일체의 조퇴 또는 결석 등을 금지한다. 학생회 임원과 회원들은 이를 주의하여 새겨두고 학생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라. 이 기간에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는 것은 일체 금지된다. 만약 중국인으로서 용인되지 않은 행동으로 단체와 학교에 피해를 입힐 시에는 그에 합당한 처분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그녀가 읽어 내려간 ‘주의문’의 내용이다. 중국 공산당 19대 대회가 진행된다는 예고와 함께 해당 기간 동안에 주의해야 할 사항을 강조한 것이다.
| 她说, 그녀의 시선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우리 대학의 교무부장이었다. 모든 강의실을 돌며 학생들 앞에서 주의문을 낭독하는 그녀의 강압적인 태도에 학생 신분이 아닌 필자조차 가슴이 뜨끔했다.
그녀의 태도만큼이나 거부감이 일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주의문에 담긴 내용이었다. 당대회는 공산당이 개최하는 국가 차원의 행사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중국의 모든 언론이 일제히 1면 톱기사에 시진핑 주석의 당대회 일거수 일투족을 찬양하듯 보도하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이상한 것은 학생들의 결석과 조퇴 등 운신의 폭을 극도로 제한하는 조치가 아무렇지 않게 하달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를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교무부장의 발언 내용이 너무나 의아한 나머지 필자가 재차 확인했지만 당대회 기간에 이뤄지는 조치는 국민들이 당연히 응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필자의 학교는 당대회가 개최되는 베이징에서 비행기로 3시간, 고속 열차로 7시간이 걸리는 후난성 창사에 있다. 이토록 먼 거리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 정도인데 수도 베이징의 상황은 과연 어떨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당대회 2주 전부터 이미 베이징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전언이 나돌기 시작했다.
베이징 일대에서 대규모 김치 사업을 하는 한국인 지인은 지난 2주 전 돌연 김치 생산 및 배달 업무를 중단한다는 내용을 자신의 회사 게시판에 올렸다.
이유는 역시나 당대회 때문이었다. 베이징 공안국이 시내 도심에서 대형 트럭의 이동 자체를 금지시킨 것이다. 당연하게도 배송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김치의 보관 문제. 한국에서는 시간이 지나 곰삭은 김치를 찌개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지만 중국인들은 ‘곰삭은 것은 곧 썩은 음식’이라는 편견이 강하다. 결국, 이 업체는 계획에 없던 주문 및 배달 중단 사태로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 됐다.
이 같은 조치로 베이징 시내의 탁송 업무는 중단됐고, 상당수 업체가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럼에도 공안국 또는 정부는 아무런 보상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당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 최고 존립 기관이고, 국민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당대회는 결국 국민을 위해 진행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당연히 국민 스스로 그 정도의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다.
누구에게도 소리 높여 항변할 수 없고, 항변해서도 안 되는 이상한 분위기. 그리고 여전히 남는 의문. 정말 그들의 믿음처럼 당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국민들의 태도는 정부에 대한 신뢰인가 공포정치에 대한 두려움인가.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