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돈, 나쁜 돈, 이상한 돈(feat. 정치자금)
좋은 돈, 나쁜 돈, 이상한 돈(feat. 정치자금)
2017.12.22 16:39 by 이창희

‘정치자금’이란 단어는 당신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 뭔가 불투명한, 검고 탁한 이미지와 함께 자연반사적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지. ‘누가 무슨 대가로 얼마를 받았다더라’라는 뉴스, 카메라 앞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피의자, 자동차 트렁크 속의 사과박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정치자금의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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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게 불법적인 돈이 전부일까? 정치인이 돈을 받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일까? 지성인인 우리는 욕을 하더라도 정확히 알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먼저 정치자금의 정의부터 알아보자. 현행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호는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당비, 후원금, 기탁금, 보조금과 정당의 당헌·당규 등에서 정한 부대수입, 그리고 정치활동을 위해 정당이나 공직선거에서 당선된 자, 공직선거 후보자 또는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 후원회·정당의 간부 또는 유급사무직원 등을 포함해 정치활동을 하는 자에게 제공되는 금전이나 유가증권, 그 밖의 물건과 정치활동에 소요되는 비용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름 참 길다. 대통령부터 지방 군수까지, 모든 공직선거를 관장한다.)의 설명을 조금 더 살펴보자.

후원인이 후원회에 기부할 수 있는 후원금은 연간 2000만원을 초과할 수 없으며, 하나의 후원회에 기부할 수 있는 금액은 대통령선거 후보자 및 예비후보자/대통령선거 경선 후보자의 후원회 각 1000만원, 그 외의 후원회(국회의원 등) 각 500만원이다

저 복잡하고 딱딱한 내용을 모조리 이해할 필요는 없다. 정치인 혹은 선거에 나가는 이들이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그 기준과 한도를 지켜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왜 정치자금은 ‘검은 돈’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을까.

올해 연말에만 쏟아진 정치인들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관련 기사들이다. 하나 같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그들의 변명 역시 한결같다. ‘나는 몰랐다’. 자신이 부리는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고 자신과는 선을 긋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아직 검찰의 기소 단계로, 향후 재판을 통해 잘잘못이 가려질 예정이다.

이들은 법을 만들 수 있는 국회의원이고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기소된 상당수의 정치인들은 ‘혐의 부인→유죄 선고→항고→상고심 실형 확정’ 등의 단계를 거쳤다. 정치자금에 대한 우리의 학습효과는 이렇게 축적됐고, 그들의 변명을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자금이 투명하게 모이고 바르게 사용되는 경우도 점차 늘고 있다. 재벌 대기업이나 지역 유지 등 말썽이 잦은 ‘큰 손’들의 돈 대신 일반 시민들의 소액 후원이 활발해지면서다.

이는 개별 정치인에 대한 팬덤 현상(지난 대선에서 일부 후보들이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것을 상기해보라), 그리고 후원금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의 영향력(비록 극히 미미할지라도)을 행사할 수 있다는 유권자들의 의식 변화가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다.

1시간 만에 329억원을 모금한 ‘문재인 펀드’
1시간 만에 329억원을 모금한 ‘문재인 펀드’

 2010년대 들어 선거를 앞두고 펀드투자 방식을 차용,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딴 이른바 ‘○○○펀드’라는 공개적인 모금 방식이 등장한 것이 그 시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유시민(알쓸신잡의 그 유작가 맞다) 경기지사 후보가 오픈 3일 만에 무려 41억원을 모금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선후보 시절 펀딩을 개설, 1시간 만에 329억8063만원을 모았다(역시 아이돌을 능가하는 인기).

물론 이 ‘정치인 펀드’는 후원자가 수익을 노리고 투자하는 일반 펀드와는 다르다. 후원할 수 있는 금액 한도가 있을뿐더러 이자율도 연 3.6%, 그것도 소득세 원천 징수분을 공제하기 때문. 경제적 이익이 아닌 ‘정치적 이익’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특이한 투자방식이다.

좀 어렵나? 다시 정리해보면, ‘펀드’라곤 하지만 돈 벌자는 게 아니다. 정치인에게 아예 기부해버리는 돈도 아니다. 원금은 100% 보장되고, 아주 약간의 이익도 있긴 하다. 대신 내가 원하는 정치를, 내가 원하는 정치인이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단 거다. 누군가에겐 이 기회가 백만금보다 값진 투자회수인 셈이다.

또한 선거에 입후보한 정치인 입장에서는 열심히 뛰어 15% 이상을 득표할 경우 선거비용을 국고에서 전액 보전 받도록 돼 있어 환급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국회의원이나 정당 역시 후원계좌를 열어놓고 상시적으로 모금을 한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의원들이 SNS나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유권자들의 후원을 호소하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입법 활동을 열심히 할테니 좀 도와달라는 얘기다.

응원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한번쯤 후원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연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가 되기 때문. 10만원을 냈으면 연말정산 시즌에 나라에서 모두 돌려준다는 거다. 왜냐고? 국가 입장에서는 이를 ‘정치에 대한 국민의 고마운 관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치의 영역에서 부도덕한 이들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문제의 중심에는 항상 돈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관심 가져야 하고 더 알아야 하고 더 감시해야 한다. 유권자들의 정확한 정보 습득과 냉철한 인식은 정치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니까.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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