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회공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국내외 CSR 우수사례
기업 사회공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2017.12.29 18:45 by 이창희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은 다분히 전략적이어야 한다.”

지난 16년간 세계 최대의 글로벌 인프라 기업 ‘제네럴 일렉트릭(GE)’을 이끌었던 제프리 이멜트(Jeffrey Immelt) 회장의 발언. 다각화·다분화하는 기업 사회공헌의 트렌드와 미래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으로 꼽힌다.

지난 반세기 동안 기업 사회공헌의 역사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기업들은 갈수록 많은 비용을 투자해 사회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회를 위한 것이니만큼, 사회의 분위기에 기민하게 대응한다. 단순한 자선기부의 형태에서, 기업이 가진 고유의 전문성을 접목한 형태로, 근래 들어서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에 발맞추는 모습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이 구역의 사회공헌은 우리가 책임진다

기업은 저마다의 미션과 비전을 갖추고 있다.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을 생산하며 그 가치와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지가 명확하다. 이를 바탕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형태로 사회에 공헌한다. 2000년대 들어서 각광받기 시작한 소위 ‘전략적 사회공헌’이다.

국내 1위의 완성차 업체인 현대자동차는 지난 2010년부터 ‘기프트카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선정된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자사 차량을 무료로 제공하고 취득세 및 보험료까지 지원한다. 다양한 차량을 보유한 만큼 창업 업종에 맞는 차량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2013년부터 항공업계에 꿈이 있는 청소년에게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조종사, 승무원, 정비사 등 다양한 직군의 자사 직원들이 교육기부봉사단을 꾸려 학교 및 기관을 직접 찾아가 강연과 교육을 실시한다. 여기에서는 항공업 전반에 대한 설명과 승무원 직업을 실제 체험해 볼 수 있다.

국내를 대표하는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은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Make-up your life)’를 통해 여성 암 환자들을 돕는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급작스러운 외모 변화를 겪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심적 고통과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게끔 메이크업 및 피부관리 키트와 노하우를 전달한다.

종합음악 기업인 로엔엔터테인먼트의 경우 해마다 캠프를 열어 K-POP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가진 청소년들에게 재능을 기부해오고 있다. 전문성이 축적된 전문 보컬트레이닝과 댄스트레이닝은 물론 인성교육 멘토링까지 받을 수 있다.

“결국, 다른 것에 집중하기보다 우리 회사에서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살려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봅니다. 안정적으로 오래 할 수 있는 힘도 그로부터 나올 수 있죠.”(모 이동통신사 CSR담당자 A)

(좌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현대차 ‘기프트카 캠페인’/아시아나항공 교육/로엔엔터테인먼트 ‘로엔뮤직캠프’/아모레퍼시픽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사진: 각 사 홈페이지)

 

|바로 지금, 사회 목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자사의 특성과는 별개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이슈에 집중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수시로 변화하는 사회적 트렌드와 정부 정책 등에 발맞춰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형태다.

최근 전문가들이 꼽는 대표적인 트렌드는 일자리 창출이다. 청년실업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이 사회공헌의 영역으로 이를 가져오는 추세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데 역할 해주시면 업어드리겠습니다.”(6월21일 일자리위원회 1차 회의, 문재인 대통령)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첫 과제이자 중장기 과제로 ‘일자리’를 내세웠다. 청와대에는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됐고, 각 기업들의 고용 창출을 강하게 독려했다. 이에 따른 세부 정책도 속속 마련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올해 기간제 근로자 1379명 중 91%에 해당하는 1261명의 정규직 전환을 결정했다. 또한, 지역인재 채용 시스템을 갖추는 동시에 우수 일자리를 창출한 협력업체에 대해 입찰 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법도 도입했다.

숙박 스타트업인 야놀자는 지난 4월부터 ‘실버문화페스티벌’을 통해 시니어 호텔리어 과정과 시니어 CS 마인드 과정 등 숙박 관련 전문 교육을 진행 중이다. 숙박업 교육은 물론이고 전국 6만여 개 숙박시설에 취업을 연계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야놀자 ‘실버문화페스티벌’ (사진: 야놀자 공식 홈페이지)

두 번째 트렌드는 4차 산업혁명이다.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만큼 CSR의 확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다.

미국 초등학생의 20%가 난독증을 앓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디지털북을 만들어 교과서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포스코는 올해 6월부터 취약계층 청년들을 대상으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IoT·빅데이터·AI 관련 무료 교육을 실시해오고 있다.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포스텍 교수진이 교육과정을 맡고 포스코에서 제반 비용과 교육장비를 지원하는 형태다.

인공지능 디지털북 (사진: MS 홀로렌즈)

세 번째로, CSR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늘면서 환경·인권처럼 전통적인 공익 영역이 다시금 부흥의 시기를 맞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의약품 생산업체인 바이엘은 지구 온난화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산화탄소를 재활용해 고품질의 폴리우레탄 폼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기능성 의류를 만드는 포드 스포츠 역시 폴리에스테르 대신 100% 녹여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를 도입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30년간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던 유한킴벌리의 사례가 가장 첫 손에 꼽힌다.

바이엘 CO2 폴리우레탄 폼 생산 공정(사진: 바이엘社)

“사회 변화에 발맞춰 자발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21세기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 덕목입니다.”(장진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사회적 책임은 유행 타지 않습니다

이처럼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또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변화의 형태가 어떻든 간에 지속적으로 변화를 도모해 나가는 것 자체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기업이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의 무게는 이 같은 변화나 유행과 관계없이 무겁다. 여전히 대중들은 “기업은 이윤 추구에 목매는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부도덕한 경영 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사회 기여 필요성에 둔감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기업들은 이 같은 문제들을 본질적으로 해소해야 하고, 이를 위한 신뢰의 구축은 사회공헌에서 시작된다.

“지배구조 문제나 불공정거래 등으로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대기업이 태반입니다. 사회공헌을 면피성으로 하는 기업도 많고요. 결정권자의 철학이 명확해야 한다고 봅니다. 비용 충분히 들여서 오래 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지속성이고, 진정성인 셈이니까요.”(모 NGO 사회공헌 기업모금 담당 팀장B)

SK그룹은 올해 3월 각 지주사와 계열사 정관을 뜯어고쳤다. ‘회사는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증대시키고 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해 충분한 이윤을 지속적으로 창출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회사는 이해관계자 간 행복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로 바뀐 것. 기업의 존재 목적을 이윤 추구 대신 사회적 책임에서 찾고 있다.

바야흐로 사회공헌의 위상이 달라졌다. 이제 더 이상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부수적인 일이 아니다. 기업의 존재 이유 그 자체가 됐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그런 시대다.

 

필자소개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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