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카페에서 회사 차렸다”
“난 카페에서 회사 차렸다”
2018.01.10 18:11 by 제인린(Jane lin)

 

필자가 서울에서 나고 자라, 한창 취업을 준비할 시기만 해도 ‘대학 졸업 후 취업’은 상식적인 수순이었다. 서울 모처에 소재한 370여 명이 넘는 같은 법학과 동기 중 누구도 자신의 머지않은 장래 ‘창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이는 없었다.

모두 어학 점수 확보에 매진했고, 일부는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노량진이나 신림동으로 몸을 숨기기 급급했다.

10여 년이 흐른 한국 사회의 모습 역시 크게 다르진 않다. 굴지의 대기업 끝자락이라도 부여잡거나, 산간 오지 어디라도 좋으니 공무원이 되는 것을 최고의 삶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청춘을 그렇게 소비하고 있다.

필자 역시 그들과 같은 시기, 마땅히 뜨거워야 할 청춘을 차가운 신림동 어느 구석진 독서실에서 보낸 경험이 있다. 무려 6년 동안. 신림동 주변을 그렇게 서성댔다. 운 좋게 시험공부를 그만둔 뒤에는 무려 4년의 세월을 여느 말단 기자로 보냈다.

그리고 중국으로 온 직후에야 비로소 필자는 어지럽게 보냈던 지나간 청춘과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대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온전히 필자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 시절을 마음껏 즐기지도, 방황할 여유도 없었던 시간들… 뜨겁지 못할망정 몹시 차갑기만 했던 현실에 매몰된 청춘이 몹시 아프게 다가왔다.

그런데 같은 시기, 중국에서 ‘청춘’을 보내는 사람들은 나와 많이 달랐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필자가 베이징에 가장 먼저 자리 잡았던 곳이 바로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촌’이었다. 매년 9천여 개의 스타트업이 새로 생겨나고, 그중 3천 곳은 최소 3년 이상 지속된다는 불멸의 창업 특구가 바로 이곳이다.

베이징 시 정부에 의해 창업 특구로 지정된 중관촌

 

| 중국의 실리콘밸리, 중관촌

중관촌은 지난 2013년 처음 생겨났다. 중국의 신경제를 이끌 새로운 동력으로 ‘창업’이 꼽히면서, 베이징 시 정부는 베이징대학교와 칭화대, 인민대 등 중국의 3대 명문대로 꼽히는 곳에 가장 인접한 중관촌 일대를 창업 특구로 지정했다.

창업 특구로 개발되기 이전 이 일대는 인접 대학의 학생들이 주로 찾는 서점 골목으로 유명세를 얻었던 지역이다. 약 600m에 달하는 ‘해정도서성’이라는 골목에 서점들이 밀집돼 있었는데, 지난 2013년을 계기로 ‘이노웨이(Inno way)’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노웨이가 시작되는 골목 입구에는 가로세로 약 5미터에 달하는 대형 전광판이 설치돼 있다. 해당 전광판을 통해 올 한 해 가장 주목할 만한 100인의 창업자가 방영된다.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끊임없이 전광판을 통해 방영되는 이들의 창업 성공 스토리는 이곳을 찾는 예비 창업인들을 끊임없이 독려한다.

이곳이 조성된 지난 2013년 무렵 당시만 해도 이 일대는 단순히 ‘중국판 실리콘밸리’에 불과했다. 제2의 실리콘밸리로 성장할 것이라는 비전이 있었지만, 결국 제2의 실리콘밸리라는 명칭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를 계기로 중관촌 일대는 세계 제일의 ‘글로벌 기술 허브 도시’로 거듭났다는 재평가를 받게 됐다.

최근 영국의 B2B 전문 비교업체 ‘액스퍼트 마켓(Expert Market)’은 전 세계에서 가장 창업하기 좋은 도시를 선정하는 ‘2017 기술 허브 도시 1위’로 베이징의 중관촌 창업 특구를 꼽았다.

베이징의 중관촌에 이어 △베를린 △샌프란시스코 △오스틴 △텔아비브 △상하이 △방갈로르 △보스턴 △런던 △밴쿠버 등이 각각 그 뒤를 이었다.

액스퍼트 마켓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중관촌은 엔절투자와 창업투자 유도자금의 활용이 용이하다’고 분석했다.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인 사업 초기 펀딩 조건 및 생활비 지원 규모 등의 분야에서 중관촌이 탁월한 기능을 가졌다고 평가한 것이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그대로 베낀 것에 불과했던 곳이 세계 제1의 창업 특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무엇일까.

 

| 무자본, 무일푼 청년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만 있다면 OK

중국 정부는 청년 창업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발굴, 우수한 아이디어가 상품화되고 시장에 판매되기까지의 역량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가난한 청년 창업자에게 유리한 회사법 개정을 감행했다.

중관촌이 창업 특구로 지정된 해, 중국 정부는 회사법 개정을 통해 무일푼 청년이라도 우수한 재능과 시장성 있는 아이디어로 무장했다면 누구나 창업할 수 있도록 새로운 등록자본금제도를 발효했다.

해당 새 회사법은 발효된 그해 즉시 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판 국회)를 통과, 기존에 운용됐던 회사법에서 요구한 최저등록자본금 제도 일체가 전격 폐지되기에 이른다. 청년 창업가가 쉽게 소규모 창업을 도모할 수 있는 현실이 마련된 셈이다(해당 법안이 통과되기 이전에는, 유한책임회사는 3만 위안(약 600만원), 1인 유한책임회사는 10만 위안(약 2천만원), 주식회사는 500만 위안(약 5억원) 등을 소지해야 했다).

실제로 해당 법안이 통과될 무렵부터 중국 내 청년 창업자의 수는 급격하게 증가했는데, 2013~2015년까지 베이징 중관촌 일대를 기점으로 등록된 창업 기업의 수는 연평균 9천여 곳에 달한다. 이들 중 창업 후 3년이 지난 후에도 활발한 운영을 이어오고 있는 기업의 수는 3천여 곳에 이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6~2017년 두 해 동안 중관촌을 중심으로 총 15억 달러 규모의 투자금을 무상으로 지원해오고 있다. 기존 창업자는 물론이고 창업을 꿈꾸는 예비 창업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와 신기술, 시장성 등의 비전을 담은 사업계획서를 통해 막강한 투자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무상’ 또는 ‘무이자’로 말이다.

또, 이들에겐 중관촌 이노웨이 입구에 자리 잡은 ‘중관촌창업지원센터’를 통해 △창업 시 3년간 지원되는 조세 혜택 △지분 투자자 소개 △창업투자 기업의 파트너를 대상으로 한 소득세 면제 정책 △기술양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득세 면제 등의 경제적·정책적 지원을 향유할 수 있다.

중관촌 창업특구의 전경

실제로 필자의 지인이자, 대학 동기인 중국인 손씨와 그를 포함한 대학 동아리 친구 3인은 이 일대에서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작은 결혼식’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웨딩 사업을 시작한 바 있다.

지난 2016년 문을 연 해당 사업체는 단돈 3만 위안(약 600만원)이라는 소규모 자본으로 창업했다. 한국 유학생 출신의 이들은 한국에서 지난 몇 년간 유행하고 있는 ‘작은 결혼식’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일대에 사무실을 무상으로 임대한 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결혼식을 치르려는 중국 예비부부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이들이 판매한 제품은 웨딩과 관련된 모든 상품으로, 한국에서는 주로 ‘스·드·메’로 불리는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 등에 대해 저렴한 가격에 일체의 업무를 담당했다.

이 모든 업무와 고객과의 만남은 오직 앱을 통해서만 진행된다. 물론 직접 결혼식을 진행할 때에는 고객과 대면하지만, 결혼식과 관련한 일체의 정보와 과정에 대한 내용은 오직 앱을 통해서만 소통하게 되는 신개념 비즈니스다. 때문에 기존의 웨딩 전문업체가 제공하는 고가의 가격과 비교해 최대 10배 이상 저렴한 가격에 운영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들이 소자본으로 창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특구에서 운영되는 공유 사무실 제도 덕분이다. 중관촌 이노웨이 골목에 자리한 약 20여 곳의 창업 전문 카페에는 카페마다 약 100여 개에 달하는 널찍한 사무실 책상과 의자를 배치해두고 있는데, 중관촌 창업지원센터에서는 이들 의자와 책상에 대해서도 마치 개별 사무실과 같이 취급해, 창업자 1인이 해당하는 책상을 주소로 법인신고를 가능토록 배려해오고 있다.

일명 ‘공유 사무실’로 불리는 창업 전문카페로 ‘3W’가 대표적인데, 카페 3층에 마련된 공유 사무실에 마련된 책상과 의자를 원하는 이라면 누구나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 저렴한 책상 임대료만 지불하고 입주할 수 있는 형태다.

중관촌의 대표적인 창업 전문카페 ‘3W’

예약은 입주하기 24시간 전까지 확정해야 하며, 의자와 책상 임대 후에는 해당 카페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사무 집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재도 해당 카페를 포함한 약 20곳의 창업 카페에는 수백여 명의 예비 청년 창업자들이 제2의 마윈을 꿈꾸며 ‘창업’이라는 원대한 꿈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제인린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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