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독립영화의 강을 건너오
독립영화가 뭐길래?
님아, 독립영화의 강을 건너오
2018.01.12 19:24 by 송희원

“독립영화… 얘긴 많이 들어봤는데 사실 정확한 기준도 범위도 잘 모르겠어요. 독립영화, 예술영화, 저예산영화, 다양성영화 등 비상업적인 영화를 이르는 듯한 용어들도 너무 많고요. 이들을 모두 독립영화로 봐도 되나요? 정확한 개념이 궁금합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한유라(35)씨가

|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인가

독립영화, 일명 인디영화로 불린다. 여기서 ‘인디’는 독립이라는 뜻의 ‘independent’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이번 회의 독자질문은 ‘과연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인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답이 나올 것이다.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포스터 (사진: 네이버 영화)

독립영화의 독립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바로 ‘자본’과 ‘권력’이다.

#독립1. ‘자본’

먼저 ‘자본’에 대해 살펴보자. 영화는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산업이다. 재작년 한 해 동안 개봉한 한국영화 302편의 편당 총제작비 평균은 24억원으로 집계됐다(영화진흥위원회, 2016) 순제작비 17억원에 마케팅 비용으로 평균 7억원이 들어간다. 이중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의 수를 고려하면 대형자본이 들어간 영화와 그렇지 않은 저예산영화의 제작비 편차는 더욱 심해진다. 2017년 한국영화 흥행순위 1위인 <택시운전사>는 제작비 150억원, 2위인 <공조>는 제작비 100억원이 들었다.

이처럼 높은 제작비가 들어가는 영화, 일명 상업영화는 반드시 ‘제작비 회수’란 일차 관문을 통과해야한다. 이윤추구를 목표로 할 수밖에 없단 얘기다. 그러다 보니, 소위 ‘흥행코드’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스타 배우를 출연시키고, 대중들에게 익숙한 소재나 서사구조 등을 따르는 것이다.

<신세계>(2012), <아수라>(2016), <마스터>(2016)로 예를 들어보자. 이 영화들에는 ‘남자 배우’들이 나오는 ‘조폭영화’란 공통 코드가 있다. 이런 코드 영화가 흥행하니 비슷한 부류의 영화들이 시장에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고 폭력적으로 소비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런데도 비판에 대한 성찰 없이 계속해서 비슷한 영화들이 시장에 나온다. 이윤을 보장받기 위해 ‘대세’ 흥행 공식을 안전하게 따라가는 것이다. 자연히 상업영화 시장에서는 이런 지배적인 흐름을 따르지 않는 영화들의 다양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반면 독립영화는 기존의 상업 자본에 의존하지 않는다. ‘기존의 상업 자본’은 대형 제작사와 배급사를 말한다. 독립영화는 이런 대형 제작·배급사와 계약을 맺지 않고 창작자가 독자적으로 예산을 마련하여 제작한다. 감독이 자비를 털어 만들거나, 크라우드 펀딩 같은 모금을 통해 제작된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최승호 PD의 <자백>(2016)이 크라우드펀딩으로 개봉된 대표적 사례이다(1만7261명 참여, 4억3000여만원 모금). 이밖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같은 기관이나 단체의 제작 지원금을 받아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다.

독립영화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기에 상업영화처럼 대세를 따르지 않을 수 있다. 이윤보다 창작자의 의도를 중시하고 주제나 형식도 훨씬 다양하고 자유롭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을 주목하거나 세월호나 성주 사드 배치 등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들도 과감하게 다룬다.

#독립2. ‘권력’

두 번째, 독립영화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한다. 한국에 독립영화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80년대 중반이다. 초창기 독립영화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보다는 군사독재 정권의 불합리한 검열과 탄압으로부터 독립한다는 의미가 더 강했다. 올림픽을 위해 달동네 재개발사업을 밀어붙였던 정부를 고발하는 <상계동 올림픽>(1988)과 노동조합을 결성해 파업을 조직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파업전야>(1990) 같은 영화가 이를 잘 대변한다.

정권에 의해 장악된 공중파 방송에서 하지 못했던 비판도 활발히 이뤄진다.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2009), <공범자들>(2017) 같이 권력을 풍자적으로 묘사하거나 고발하는 영화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 다양성영화? 예술영화?

독립영화와 함께 거론되는 용어들을 좀 더 짚고 넘어가 보자. 2007년부터 영진위는 ‘다양성영화’라는 용어를 만들어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진흥사업을 펼쳐 왔다. 상업영화와 구분되는 다양한 유형의 비주류 독립영화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다.

영진위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다양성영화는 국가별 점유율 1% 미만 국가의 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을 말한다. 모두 극장에서 쉽게 관람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여기에는 독립영화, 예술영화가 포함된다. 예술영화 역시 영진위에서 그 기준을 명시해놓았다. ‘예술적’이라는 말이 모호하긴 하지만 대개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나 문화 다양성의 확대에 기여하는 국내외 작품을 말한다.

하지만 영진위의 방식대로 용어를 통칭하는 것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비긴 어게인>(2014)이란 영화는 259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고, 유명 할리우드 배우도 나오지만 ‘예술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아 다양성영화의 성공사례(총관객 342만명)로 거론된다. 이럴 경우 한국 독립영화는 한정된 다양성영화상영관을 놓고 이런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해외 예술영화와 경쟁해야 한다. 지원 정책 때문에 만들어진 다양성영화라는 용어 때문에 오히려 국내 독립영화의 설 자리가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다양성영화로 분류되는 <비긴 어게인>(2014)(사진: 네이버 영화)

 

| 독립영화,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

지금까지 독립영화와 비슷한 범주의 용어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독립영화가 무엇이다’라고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서울독립영화제’에 참가한 감독 중에서도 자신을 독립영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저예산영화, 단편영화, 예술영화, 학생영화, 노인영화 등 다양한 유형들을 ‘독립영화’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만, 독립영화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독립영화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변성찬 평론가(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는 그 방향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독립영화에서 자본과 권력의 독립은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배적인 사회의 감정의 흐름으로부터 독립되는 것입니다. 즉 ‘정서의 독립’이 필요하죠. 독립영화는 그런 주류적인 감정의 흐름에서 독립되어 그 흐름의 위험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입니다.”(변성찬 평론가)

변성찬 영화평론가

시대에 따라 독립영화의 예산, 제작방식, 배급경로는 다양해진다. 하지만 변하지 않아야 할 건 바로 독립영화 창작자의 방향성, 즉 태도이다. 변 평론가는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작업에 대한 자각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 그 긴장 관계를 놓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독자의 질문 내용이었던 ‘독립영화의 정확한 개념’은 결국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독립영화의 개념은 계속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변해가기 때문이다. 독립영화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독립영화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매년 계속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결국, 독립영화는 ‘무엇이다’라는 닫힌 정의가 아닌, 끊임없이 성찰하고 질문하는 현재진행형인 태도 그 자체로 봐야 한다.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독립영화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
‘독립영화와 자본 사이(1) 2014년 한국 독립영화의 빈익빈 부익부(2015.5.13.)’,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스페셜] 영화계 내 성폭력 여섯 번째 대담: 영화평론가(2016.12.28.)’, <씨네21>
이현재, 『미국 독립영화』 커뮤니케이션북스, 2017

Editor's Choice

(왼쪽부터) <두 개의 문>(김일란·홍지유 감독, 2012), <탐욕의 제국>(홍리경 감독, 2014) <다이빙벨>(안해룡·이상호 감독, 2014) (사진: 네이버 영화)

작년 한 해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그 리스트에는 국내 유일의 독립다큐멘터리 배급사인 시네마달도 있었다. 시네마달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들을 주목하는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배급해왔다. 용산 참사 희생자를 다룬 <두 개의 문>(2012), 삼성 반도체 공장의 실체를 폭로한 <탐욕의 제국>(2014), 세월호를 주제로 한 <다이빙벨>(2014), <나쁜 나라>(2015) 등이 대표적이다.

블랙리스트로 지원 대상에서 철저히 배제된 시네마달은 한때 폐업의 위기까지 놓였었다. 하지만 작년 2월 영화인들과 시민단체들이 나서 ‘시네마달 지키기 공동연대’를 구성하고 ‘촛불영화: 블랙리스트 영화사 시네마달 파이팅 상영회’를 진행했다.

자본과 권력에 대항해 핍박받았지만, 다시 시민들의 힘으로 지켜진 시네마달의 독립영화들을 한번 감상해보자.

시네마달이 제작·배급한 영화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에서 볼 수 있다.

 

※<TF_독립영화>는 독자 여러분의 참여로 꾸려나가는 콘텐츠입니다. 평소 독립영화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 있거나 제보할 것이 있는 분들은 댓글을 달아 주시거나, 메일(ssong@thefirstmedia.net)로 보내주세요:)

 

필자소개
송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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