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모임, 어디까지 해봤니?
엄마 모임, 어디까지 해봤니?
2018.02.01 18:57 by 류승연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고, 깔깔 웃으며 수다를 떨고, 아이들도 함께 놀게 하지만 시간이 지나 학년이 바뀌고 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관계. 내가 생각하는 ‘엄마 모임’의 고정관념은 이런 것이다.

이런 나의 고정관념을 처음으로 깨뜨려 준 것은 ‘무지개’라는 자조모임이었다. 기존의 ‘엄마 모임’이 함께 모여 노는 데 중점을 뒀다면 발달장애 아이들의 엄마들이 모여 만든 ‘무지개’ 모임에는 ‘목표’라는 게 더해졌다.

자조모임이라는 것에 눈 뜨고 나니 이미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여러 자조모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굉장히 독특한 성격의 자조모임을 하나 알게 된다. 경기도 안산에 터를 잡고 있는 ‘꿈꾸는 느림보(이하 느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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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느림보’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굉장히 독특한 형태의 자조모임이다. 바로 규모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10여 명 내외의 엄마들이 모여 자조모임을 꾸리는 데 반해 ‘느림보’엔 이미 400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돼 있다. 이쯤 되면 이미 지역의 터줏대감이다.

분명 ‘엄마 모임’인데, 어떻게 그런 대규모 자조모임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지역 전체를 모두 아우른. 나는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그래서 안산행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느림보’의 대표는 문순덕 회장(qtyu1122@naver.com)이다. 올해로 17살이 된 자폐증 아들의 엄마다. 아들은 자폐 1급의 중증 장애인이다.

문 회장은 늘 아들이 살아 나갈 미래를 걱정했다. 받아주는 곳 없는 중증 장애인 아들이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아갈 수 있을까? 마을에서 안착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러다 2015년, 같은 치료실에 다니던 엄마들 7명과 함께 밴드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좋은 글이 있으면 공유하고 서로 마음을 다스리자는 취지였다. 밤에 만나 종종 치맥을 하며 마음을 나누다 보니 ‘엄마 모임’은 더욱 끈끈해졌다. 마음으로 하나가 된 엄마들은 의욕도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장애와 관련한 스터디 모임을 꾸렸다.

그렇게 만나서 공부하고, 마음 나누고, 웃고, 울기도 하는 평범한 ‘엄마 모임’에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우연한 기회에 시 예산으로 비누사업을 하는 공모전에 당첨된 것이다. 엄마들은 3000박스의 비누를 제작해야 했다.

주변의 장애 아이 엄마들을 불러들였다.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사무실을 대여했고 그 곳에 20~30명의 엄마들이 모여 비누를 만들기 시작했다.

비누 사업은 문 회장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친분을 나누고 스터디를 하는 것만이 아닌, 서로 힘을 합하면 엄마들끼리도 사업적으로 모종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엄마 모임’을 더 전문적이고 조직적으로 꾸려나가면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2016년에 ‘꿈꾸는 느림보’가 재탄생을 했다. 시내에 작은 사무실을 얻고, 창립총회 비슷한 행사도 가졌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엄마들의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발달장애 아이들을 위한 동아리 활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러 공모전에 나가 사업을 따내는 것이었다.

다양한 동아리 활동은 지역 내 엄마들을 더욱 끌어당기는 원동력 역할을 했다. 물리치료와 특수체육, 감각통합치료를 받을 때 외에는 몸을 움직일 일이 많지 않은 장애 아이들을 위해 수영, 탁구, 배드민턴, 인라인, 방송댄스 등 다양한 체육 동아리를 운영했다.

음악적 자극을 느낄 풍물 동아리도 운영했고, 미술치료의 효과를 볼 미술반도 꾸려졌다.

그러는 한편 성인기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여러 공모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엄마들이 나서서 사업을 따냈고, 그 사업으로 아이들은 사무실 안에서 직업재활 교육의 기회를 얻었다. 입소문이 번져 나갔다. 이제 ‘느림보’ 회원 수는 400명을 훌쩍 넘는다. 사무실도 더 큰 곳으로 이전을 했고 비영리법인으로 등록도 했다. ‘엄마 모임’ 그 이상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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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의 스토리는 대강 이 정도면 요약이 된다. 여기에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전하고자 한다.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느림보’만의 특별함이라는 게 있다면 앞으로 자조모임을 꾸리고자 하는 후발주자들에게 좋은 팁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느림보의 첫 번째 성공 요인은 사무실이다. 사무실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다. 대다수의 자조모임이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공간을 대여하는 데 반해 ‘느림보’는 일찍부터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갖고 있었다.

내가 찾아간 날에도 ‘느림보’에는 많은 엄마들과 많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사무실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올해 1월 초 이전한 새 사무실은 이전 사무실의 두 배 크기다. 안에는 탕비실도 마련돼 있고, 따뜻한 온돌이 깔린 방도 하나 있다.

넓은 사무실에서 어떤 엄마들은 비누를 만들었고, 어떤 엄마들은 대화를 나눴으며, 아이들은 그 사이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사무실 비밀번호는 정회원 모두에게 공개돼 있다. 치료실 순방 중간에 시간이 남든가 특별히 갈 데가 없는 주말, 심심한 어느 날 밤이면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사무실에 모였다. 모여서 치킨도 시켜 먹고 함께 게임도 하고 수다도 떨었다.

엄마들에게는 스트레스를 푸는 힐링의 공간이 되었고, 아이들에게는 여러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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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한 아이가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몇 번이나 보여주며 자랑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우와~” 그러며 놀라는 반응을 보여주고 아이는 신이 나서 옆의 아줌마들에게도 계속 자랑을 한다. 밖에서 그랬다면 냉담한 반응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이 아이는 모두 내 엄마 같은 남의 엄마들 덕에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자신감이 붙는다.

내 아들 생각이 나며 ‘느림보’에 놀러 온 아이들이 부러웠다. 이 아이들은 치료실과 키즈카페가 아닌데도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이다.

내가 느낀 ‘느림보’의 성공 요인 두 번째는 사업을 통한 엄마들의 성공 경험이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성공의 경험을 반복함으로써 자신감을 얻고 자존감을 회복한다. 장애 아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덕분에 자존감이 바닥에 내려가 있곤 하는 장애 아이 엄마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나서서 무언가에 도전하고, 그것이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그 결과물로 내 아이도 덕을 보는 이런 시스템은 장애 아이 엄마로만 살아온 가슴에 ‘자신감’이라는 글자를 새로 새겨주었다. 실로 오랜만이다. 이런 경험. 이제 자신감이 붙은 엄마들은 일상의 삶도 조금 더 씩씩하게 살아낸다.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는다.

세 번째 성공 요인은 엄마들의 주체성이다. 보통 조직이 대규모가 될수록 운영진 따로, 회원들 따로의 이원성을 지니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느림보’는 엄마들로만 이뤄진 ‘엄마 모임’의 특성 때문인지 그런 부분이 크지 않았다.

어떤 엄마가 ‘느림보’ 안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으면 문 회장에게 제안을 하면 됐다. 그러면 문 회장은 말했다. “오~ 좋은 아이디어네. 한 번 추진해 봐”.

그랬다. ‘느림보’ 회원이면 누구든 모임 안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주체적으로 추진해 볼 수 있었다. 개인이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열린 무대인 것이다.

네 번째 성공 요인은 ‘함께’라는 공동체성이다. 그동안 혼자라서 외롭고 혼자라서 힘들었던 엄마들은 이제 ‘느림보’라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당당히 어깨를 펴고 부당한 일에도 맞설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수중 치료를 지원하는 복지관에서 뇌병변 아이들만 제외시키고 있을 때 엄마 개인의 항의로는 꼼짝 않던 복지관이 ‘느림보’의 제안에는 요구를 받아들여 수업을 개설해 주는 일 같은 것.

이렇게 지역 안에서 공동체의 이름으로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감으로써 엄마들은 희망을 갖게 되었다. ‘느림보’가 있기에 내 아이가 마을에서 살아나갈 미래를 꿈 꿀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엄마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대규모 자조모임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느림보는 아직도 성장 중이다. 완성형이 아니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해 가고 있는 특이한 케이스의 자조모임이다. 한 지역 안에서 기존의 발달장애인 부모 단체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하는 자조모임은 아마 ‘느림보’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지켜보고 싶어진다. 엄마 모임이, 자조모임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엄마 모임의 끝판왕, ‘느림보’의 발전을 기원한다. 부디 ‘엄마 모임’의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시해주기를…. 많은 엄마들에게 영감을 주기를…. 조직의 타성에 젖지 말고 지금의 순수성을 유지해 가기를…. 나는 기원한다.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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