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북클럽
마리예 톨만/로날트 톨만 지은 '책'
엄마들의 북클럽
2018.02.02 16:21 by 지혜

모두 여섯이다. 왼쪽에 셋 오른쪽에 셋.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하얗고 네모난 테이블이 딱 떨어진다. 서로에게 서로의 이름을 건네며, 다섯은 엄마 나머지 하나는 엄마가 되길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려고 모인 ‘우리’의 첫 장면이다.

지난 가을 내내 망설이기만 하다가 결국 종이 한 장을 들고 동네 책방으로 갔다. 가장 좋은 자리에 그 종이를 붙였다. 몹시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러나 과한 기대는 거두고.

 

안녕하세요. 우리 같이 책 읽어요.

어떤 문장으로 시작해야 매력적으로 보일까 고민하다가 가장 평범한 문장을 쓰기로 했어요. ‘나’ 답게. 이름도 생김새도 성격도 그래서 삶도 평범합니다. 처음부터 엄마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닌데, 평범하게 살다보니 엄마로 살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평범하면 안 되나요? 엄마로만 살지 말라는, 자아를 찾으라는, 꿈을 향하라는 말들이 좀 불편해요. 

왜 ‘엄마’와 ‘엄마의 일’은 늘 이런 충고를 받아야 할까요? 이 질문을 시작으로 책을 읽기로 합니다.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같이 모여 답을 구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보고 싶어요.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고 이곳에 모여 같이 이야기 나눌 분들을 기다리겠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해왔다. 모임에 참석하겠다는 사람은 물론이고, 아이가 너무 어려 참석은 못하지만 혼자서라도 같은 책을 읽겠다는 사람과 워킹맘이라 평일 오전에는 시간 낼 수가 없어서 아쉽다는 사람과 집이 멀어 책방까지 가기 힘들지만 응원하겠다는 사람과 이런 모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나에게 책모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세상에 고맙다니, 우리는 얼마나 같이 읽고 생각하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가끔 ‘엄마’는 ‘벽에 걸린 그림 같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자애롭고 인자한 얼굴과 몸으로 자식을 위한 희생, 가족을 향한 애정, 삶에 대한 인내라는 영원을 살아야 하는 그림. 그림 같은 엄마는 생각되고, 읽히고, 말해진다. 생각하고, 읽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아이를 낳고 처음 젖을 물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싫었다. ‘직수’도 못했고 ‘완모’도 못했다. 아이의 백일을 겨우 채우고 모유를 끊기로 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시간을 견딜 수가 없어서 모유를 끊겠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죄스러움에 그럴 수 없었다. 하루에 두 번 모유 양을 줄인다는 양배추 크림을 가슴 위에 듬뿍 발랐다. 그러는 동안 산부인과 벽에 걸려있던, 행복한 표정으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의 그림이 방안을 둥둥 떠다녔다. 그 그림은 모유수유는 엄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다. 이 방 안에 존재하는 ‘나’라는 엄마는 줄 수 없는 선물이었다. 나는 그림 같은 엄마가 아니라서, 그림 밖에서 외로웠다.

‘그림 같다’는 말은 긴 감탄사이다.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나 순간 앞에서 우리는 꼭 그림 같다고 감탄을 한다. 그러니까 산부인과 벽에 걸린 ‘그림 같은 엄마’는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엄마에 대한 감탄이다. 하지만 세상은 엄마에게, 부디 그림 같이 ‘완벽한’ 엄마로서 살기를 요구한다. 그렇게 엄마는 ‘엄마’로서 생각되고 읽히고 말해진다. 생각하고 읽고 말할 수 없다.

‘모유수유는 엄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나는, 엄마들은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말해진 말이다. 이미 말해진 그 요구에,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 행복할 수 없었던 나의 입을 막았다.

그림 같은 엄마가 아니라서, 그림 밖에서 외로웠다. 그렇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점점이 떨어진 엄마들이 보였다. 그들과 함께 생각하고 읽고 말하고 싶었다.

 


변화와 연대 그리고 확장, <책>

코끼리 한 마리가 서 있고 하늘 끝에서부터 책들이 날아온다. 마치 새처럼. 새처럼 나는 책들은 코끼리와 한 약속을 지키려고 왔다. 무거운 몸으로 평생을 익숙한 땅에만 머물러야 하는 코끼리가 서러워 울고 있는데 지나가던 마음 착한 책 한 권이 널 다른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리고 도와 줄 친구들을 찾으러 잠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 그림책은 글 없는 그림책이므로 코끼리와 마음 착한 책의 약속은 나만의 상상이다. 설렘과 고마움과 반가움이 골고루 섞인 코끼리의 얼굴이 참 예뻐서 한참을 보다가 마음 가는대로 생각해본다.

코끼리는 수많은 책들 중에 한 권을 들고 읽는다. 그림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는 코끼리는 여전하다. 다만 배경이 노란색에서 파란색으로 또 보라색으로 그러다가 촘촘한 집 사이로 들판으로 얼음으로 바뀐다. 붉은 코끼리가 호랑이가 악어가 사자가 거북이가 물고기가 펭귄이 쳐다보고 따라가고 둘러싼다. 모두가 코끼리다. 책을 읽는 코끼리가 변화하고 연대하며 스스로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이 그림책은 조용히 말한다.

얼음 위에서 책 읽는 코끼리를 중심으로 펭귄들이 한데 뭉쳐있는 장면에서 나는 좀 울컥했다. 책을 읽는 코끼리가 펭귄이 되고 또 그 펭귄들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순간을 얼마나 그리워했었나. 그림 같은 엄마가 아니라서, 그림 밖에서 외로웠던 우리들이 모였다. 읽히고 생각되고 말해지지 않으려고. 점점이 떨어져 있던 한 사람 한 사람이 펭귄처럼 한데 뭉쳐 서로의 찬 몸을 부비며 목소리를 내보려고 한다. 언젠가 세상에 가닿길 바라면서.


 

첫 모임에서는 김혜진의 소설 ‘딸에 대하여’(민음사)를 읽고 생각을 나눴다. 다행스러운 책이었다.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말 때문이다. 소설 속에 늙은 엄마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다. 잠깐 휘청했지만 이내 손잡이를 단단히 잡았다. 작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입을 벌려 스스로 말하기 시작한 그 순간을, 우리는 기억하기로 한다.

 

/사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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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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