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자격
가장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찬사
아버지의 자격
2018.02.15 09:00 by 모자

도심 외곽에 위치한 마을버스 종점에서는 밤이면 별이 보였다. 원형 파이프 네 개를 인도에 심어 지탱하고 그 위로 아치형 천막을 덮은 작은 정류장이었다. 정류장 옆으로 문이 없는 공중전화 부스와 커피 자판기가 밭을 등지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종점에 멈추는 마을버스 노선은 두 개뿐이었고, 차고지는 멀리 떨어진 허름한 공터에 있었다. 비가 오면 낡은 천막 틈으로 빗방울이 모여 떨어졌다. 천막의 올이 몇 가닥쯤 풀려 바람에 흔들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은 정류장 안에서도 우산을 펼쳤다. 보도블록 사이를 비집고 나온 잡초 때문인지 풀 냄새가 났다. 파이프는 빗물에 녹이 슬어 기댈 수 없었다. 정류장의 모든 것은 외로웠다. 어떤 것도, 어느 누구도, 기댈 곳이 없었다.

정류장을 마주보는 작은 가건물에 위치한 편의점은 자정이 넘으면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막차를 탄 손님들은 편의점에 들러 술과 담배를 샀다. 마른안주를 사들고 집으로 향하는 이들은 말이 없었다. 그들은 새벽이 찾아오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빠르게 걸으면 새벽이 오지 않을 것처럼 도망치듯 걸었다. 손님이 모두 떠난 편의점에는 밤새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날벌레가 불빛이 환한 간판에 부딪쳐 몇 번이나 바닥으로 추락했다. 길고양이가 떨어진 벌레를 주워 먹지 못하게 소시지를 사 줘야 하는 날도 있었다. 배가 부른 고양이는 편의점 입구에 드러누워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 떠났다. 청소를 하고 물건을 정리하는 내내 산골 어느 마을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시간을, 새벽이 오는 것을 기다리며 보냈다. 멀리 어둠을 뚫고 그가 편의점에 들어올 때까지.

그는 언제나 컵라면 값으로 천 원짜리 한 장을 맡기고 떠났다. 차갑고 쓸쓸한 새벽의 공기가 천 원짜리 지폐에도 묻어 있었다. 그가 차고지에서 마을버스를 끌고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에겐 취향이 없어서 아무거나 내밀어도 곧잘 먹었다. 라면이 설익거나 불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첫차로 배정된 날이면 운전석 창문으로 손을 내밀어 인사만 하고 떠나는 그에게, 컵라면을 어떻게 할지 물을 수 없었다. 가끔 기분이 내키면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타서 건넸고, 대가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핸드폰에 담긴 아기 사진을 보여 주었다. 아기의 눈동자가 그를 닮아 진하고 맑았다. 한쪽에만 있는 볼우물이 아내를 닮은 것 같았다. 성별을 알 수 없어 감상을 전하기 어려웠다. 그는 곤란해 하는 모습을 즐겼다. 끝내 가르쳐 주지 않는 아기의 성별을 캐묻지 않았다. 새벽 네 시에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오는 버스기사는 웃을 일이 별로 없을 것만 같았다.

밤늦게까지 운행을 하는 날이면 동네 어르신을 부축해 주고 얻은 과일을 나눠먹기도 했다. 봇짐을 들어다가 자리에 올려 드렸더니 그러면 자기는 어디 앉아서 가냐고 오히려 역정을 내더라. 지팡이 짚은 노인네가 버스에도 잘 못 오르길래 안아주다시피해서 태워줬다. 고맙다면서 귤이 담긴 봉지를 통째로 내밀기에 세 개만 꺼내고 돌려줬다. 같은 과장 섞인 무용담을 한차례 풀어놓고는, 아내가 기다린다며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뒷모습이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눈을 쓸고 있으면 그것도 제대로 못 하냐며 빗자루를 빼앗아 시범을 보이고, 비가 오면 파라솔을 함께 정리해 주는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담배를 피우며 그는 종종 이직을 하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는 사람이 이번에 광역버스 회사로 이직을 했는데 월급도 두 배쯤 받고 휴게 시간을 무조건 이십 분씩은 보장해 주더라는 부러움 섞인 말이었다. 전해들은 그의 월급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배차 시간이 짧고 인원이 부족해 화장실도 못 가고 운행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큰 회사는 경력이 있어야만 일을 할 수 있다며, 그는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랐다. 아기가 크기 전에 자신도 광역버스 운전기사가 되고 싶다고.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해주고 싶다고. 그는 해주지 못할 것들을 미리 걱정했다. 그러니 담배 하나만 달라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아쉽게도 편의점이 문을 닫는 바람에 그를 오래도록 볼 수 없었다. 마지막 날에도 그는 컵라면을 먹고 떠났다. 커피와 담배를 받아들고 미소 짓는 그의 눈동자가 진하고 맑았다. 사진 속 그의 아기는 걸음마를 하느라 의자를 잡고 서 있었다. 부디, 그가 늘 입에 달고 살던 광역버스 회사로 이직했길 바란다. 배차 시간이 길어 마음 편히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는, 월급이 두 배나 돼서 가족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복지가 좋고 잘릴 걱정이 없는, 그런 회사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아기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모든 날이 행복했다. 그리고 그는 좋은 대우를 받고 일할 자격이 충분했다.

 

*원문 출처: 모자 지음, 『숨』, 첫눈출판사, 2018.

 

필자소개
모자

세상을 마음으로 관찰하는 작가. 필명 모자의 의미는 작가의 말로 대신한다. ‘모자를 좋아합니다. 모자라서 그런가 봅니다.’ 지은 책으로는 『방구석 라디오』와 『숨』이 있다. 섬세한 관찰력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꾸밈없이 담백하게 쓴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평범하게만 느꼈던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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