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 아이들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 아이들
2018.02.14 17:31 by 류승연

아들 반에는 은지(가명)라는 꼬마 아가씨가 한 명 있다. 은지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친구인데 성격이 어찌나 활기차고 밝은지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난다. 사랑만 듬뿍 받고 자랐을 것 같은 은지에게는 아픔이 있다. 연고 없이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란 것이다. 아들 반만 하더라도 6명의 아이들 중 3명이 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다.

나는 장애인 거주 시설이 어떤 곳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시설’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만으로도 무섭고, 우울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뉴스에서 봤던 장애인 학대 소식이 떠오르기도 한다. 철창이 있고, 수갑이 있고, 오물이 난자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시설이란 내 아들이 들어가서는 안 될 금단의 영역 같은 곳이다. 내가 죽은 후 시설에 끌려가 수갑을 찬 채로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느니 같이 떠나자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특수학교로 전학을 왔더니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입양이 안 되어 시설로 보내진 아이들이란다. 학부모 참관수업 날 나를 쳐다보는 은지를 보며 울컥한다.

벌써 9년 전이다. 임신 7개월 만에 세상에 나온 우리 아이들은 두 달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다. 한 달 남짓 인큐베이터 안에 있다가 나머지 보름 정도는 일명 ‘바구니’라 불리는 곳으로 옮겨졌는데 나는 아이들이 ‘바구니’ 안에 있는 게 좋았다. 하루 30분씩 주어진 면회 시간마다 간호사 몰래 손가락과 발가락을 만져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아들 옆 바구니에는 또 다른 아이가 누워 있었다. 아빠 엄마 모두 20대를 갓 넘겼을까. 매일 면회를 가면 신생아 중환자실 안에 있는 여러 아이들의 사정도 드문드문 알게 된다. 어느 날부터 아들 옆 바구니 젊은 부부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의사가 포기할 것이냐 묻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한다. 남편과 나는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바구니 안에 있는 아기의 얼굴이 우리 아이들과 다르다. 뚜렷한 특징을 지닌 다운증후군이다. 며칠 후 젊은 부부는 아기를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양육을 포기하고 입양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젊은 부부가 왔던 마지막 날이 생각난다. 바구니 속에서 아기가 계속해서 울었는데 아빠는 단 한 번도 아기를 만져보지 않았다. 어린 엄마는 옆에서 같이 울다가 아기의 손을 한 번 잡았다 놓았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 때 그 부부가 포기한 아이가 은지일 수도 있을 터였다. 아마 그래서 나는 은지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들의 다운증후군 친구가 늘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이제 나는 은지가 생활하는 곳. 그곳이 궁금해진다. 궁금하면 어쩌라고? 찾아가 보면 된다.

은지가 생활하는 곳은 ‘은평 기쁨의 집’(070-7113-5509)이다.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43명의 여학생이 이곳에서 살고 있다.

‘기쁨의 집’은 내가 막연하게 그려오던 시설의 무서운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철창과 수갑과 오물은 간데없고, 우리 집보다 깨끗해 보이는 거주공간이 나를 반긴다. 각 층마다 있는 거주실은 콘도식으로 되어 있는데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우리 집과 똑같이 생긴 거실이 나오고, 우리 딸 방과 똑같이 생긴 작은 방들이 있고, 심지어 우리 집보다 깨끗해 보이는 화장실과 주방도 있다. 그냥 집이다. 일반 가정의 모습을 띠고 있는 ‘시설’인 것이다. 내 무지가 드러난 첫 번째 순간이다. 내가 그려오던 시설의 이미지는 80년대에나 있을 법한 것이었다. 요즘에는 많은 시설들이 이렇게 집의 형태를 띠고 있단다.

나는 은지의 일과가 궁금하다. 학교가 끝나면 은지는 곧바로 시설에 가서 긴긴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 걸까? 우리 아들은 학교가 끝나면 치료실에 들렀다 집에 온다. 집에 와서는 그대로 놀다가 하루를 마감하기도 하지만 날이 좋으면 놀이터에도 가고, 키즈카페도 가고, 동네 곳곳에 산책도 나가고 가끔씩 외식도 하는데 은지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은지도 나라에서 제공하는 바우처 카드를 이용해 필요한 치료수업을 받고 있었다. 직접 센터나 복지관에 가기도 했지만 시설 내에 언어치료사와 물리치료사 등이 거주하고 있어 그들에게 수업을 받기도 했다. 또 시설 내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은 나름대로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음. 그럼 걱정할 필요 없었네”라고 생각을 했다. 나의 두 번째 무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나는 왜 은지의 의식주가 해결되고 바우처 카드로 몇 개의 치료수업을 받고 있으면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나도 모르는 새 나는, 시설에서 거주하는 장애인은 먹고 자고 생활할 곳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먹고 자고 입는 것이 해결되어도 그것만으로는 인간적인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없었다. 늘 결핍이 있었다. 그것은 30명이 넘는 종사자가 24시간 아이들을 빈틈없이 돌본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삶의 질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삶의 질. 우리 모두는 삶의 질을 더 높이기 위해 현재를 열심히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도 다를 바 없어야 한다. 그들 역시 사람이니까. 나와 똑같은 사람이고 내 아들과 똑같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난 그것을 간과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는 것에 안심을 해버린 것이었다. 내 아들과 똑같이 보장받아야 할 은지의 인권, 더 나은 삶을 살 권리 같은 건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시설에 사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것들만 충족이 되면 안심을 해버렸던 것이다.

그것을 일깨워준 것은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였다. 나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나의 무지를 깨닫고 반성한다. 이곳에서도 늘 고민하는 건 장애 아이들의 삶의 질이다.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이상의 충족감을 주기 위해 고민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여행을 가기도 하고, 우리 딸이 다니는 것과 같은 피아노 학원도 보내보곤 하지만 현실적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다. 인력과 재정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설은 나라에서 지급하는 지원비와 불특정 다수의 후원으로 꾸려진다. 나라의 지원비는 정해져 있기에 후원이 많을수록 더 나은 복지, 단순한 생존 이상의 무엇을 해볼 만한 여지가 늘어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후원이 충분한 시설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후원이 꼭 돈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물품 후원도 좋고, 재능을 기부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것들보다 더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을 후원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가족봉사자 매칭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의 장애 아이와 한 가족을 연결시켜 주는 일이다. 예를 들어 우리 가족이 은지와 매칭이 되면 우리는 정기적으로 은지와 만나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고, 주말에는 우리 집에서 함께 잠도 자며 은지를 돌보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중 가족봉사자 매칭이 잘 된 경우에는 봉사자 가족을 아빠, 엄마라 부르며 아이들이 따르곤 한단다. 부모란 존재를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이기에 자신을 돌봐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는 게 정서적으로 매우 큰 안정감을 준단다. 가족매칭이 아니어도 좋다. 여행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소풍 한 번을 가려고 해도 늘 인력이 부족하다. 장애 아이들의 특성상 외부에 나갈 때는 1대1의 돌봄이 필요한데 몇 명의 외부활동을 위해 몇 명의 종사자가 자리를 자주 비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각 기업이나 대학의 동아리 등이 자신들의 인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시설의 장애 아이들을 후원한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일 텐데. 주변을 둘러보면 그동안 모르고 있었을 뿐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시설은 많을 터였다. 후원은 꼭 거창해야만 후원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설은 의식주만 해결되면 장땡인 그런 곳도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작은 후원이 조금씩만 보태지면 시설에 사는 장애 아이들도 ‘삶의 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삶의 질’은 온전한 부모가 있는 아이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게 아니다.

요즘은 탈시설이 추세다. 폐쇄적인 형태로 운영되는 시설을 없애고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거주형태와 시스템을 바꾸자고 한다. 맞는 말이다. 좋은 시설도 많지만 창살과 수갑과 오물이 난자하는 무서운 시설도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시설이 아니면 갈 데가 없는 일부의 케이스도 있을 터였다. 그러니 시설을 대신할 획기적인 대안이 나오고 상용화되기 전까진 시설에 사는 장애인의 삶에도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작은 관심이 모이면 그들의 삶의 질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은지의 삶도 조금 더 충만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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