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하던 국민 청원하게 만든 국대
성원하던 국민 청원하게 만든 국대
2018.02.21 16:57 by 이창희

여자 단체전 팀추월에서 김보름, 박지우 선수는 개인의 영달에 눈이 멀어 동료인 노선영 선수를 버리고 본인들만 앞서 나갔습니다. 인터뷰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인성이 결여된 자들이 한 국가의 올림픽 대표 선수라는 것은 명백한 국가 망신입니다. 오늘 사건을 계기로 김보름과 박지우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 그리고 올림픽 등 국제 대회 출전 정지를 청원합니다. 아울러 빙상연맹의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를 엄중히 밝혀내 연맹 인사들을 대폭 물갈이 하는 철저한 연맹 개혁의 필요성도 청원합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국가대표팀. (사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논란의 중심에 선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국가대표팀. (사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한 국민의 날선 청원이다. 같은 날 있었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에서 상식에 벗어난 플레이를 펼친 국가대표 김보름·박지우 선수의 자격을 박탈하고, 이에 책임이 있는 빙상연맹의 개혁을 요구한 것이다. 해당 청원은 거센 국민적 분노 속에 불과 하루 만에 20만명의 동의를 확보했다. 이틀이 지난 21일 오후 현재 5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청원으로 읽는 사회 이슈와 흐름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페이지. 당신도 할 수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페이지. 당신도 할 수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소통의 국정 철학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의견수렴 루트다. 국민 개인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청원을 등록하고 30일 이내에 20만 개의 추천을 받을 경우 정부와 청와대 관계자들이 청원에 대한 답변을 내놓도록 한 시스템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째인 지난해 817일 공식 출범했다.

청원은 정치개혁 외교·통일·국방 일자리 미래 성장동력 농산어촌 보건복지 육아·교육 안전·환경 저출산·고령화대책 행정 반려동물 교통·건축·국토 경제민주화 인권·성평등 문화·예술·체육·언론 기타 등 17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청원 등록이나 동의를 하기 위해서는 네이버·페이스북·트위터 계정을 통한 간편 로그인이 필요하다. 카카오톡의 경우 일부 이용자의 부적절한 로그인 정황이 발견됨에 따라 연결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시행 6개월을 갓 넘어선 현재까지 청와대에 올라온 청원 수는 11만개를 돌파했다.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음에 따라 청와대가 답변을 내놓은 첫 번째 청원은 지난해 9월 등록된 소년법 폐지 문제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과 김수현 사회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동영상을 통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민청원 최초로 20만명 동의가 넘은 소년법 폐지 청원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민청원 최초로 20만명 동의가 넘은 소년법 폐지 청원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이어 임신중절 처벌 폐지를 비롯해 조두순 출소 반대, 권역외상센터 지원 확충, 전기·생활용품안전관리법(전안법) 폐지 및 수정, 암호화폐 규제 반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정형식 판사에 대한 특별감사 등에 대해서도 청와대의 답변이 이뤄졌다.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후 답변 대기 중인 청원들도 있다. 미성년자 성폭행 형량 상향조정, 초중고 일선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아파트 단지 관련 도로교통법 개정, 국회의원 급여 최저시급 책정, 댓글조작 관련 네이버 수사,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의 평창올림픽 위원직 파면 요구 등이 그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시기적으로 대두된 사회적 이슈들이 주로 등장하고 여기에 반응한 여론이 동의를 보내는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국민적 이목이 쏠리는 사건이 발생하면 이에 대해 개선을 촉구하는 성격의 청원이 즉각적으로 올라오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 정부로서는 여론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아울러 대책 마련에도 빠르게 착수할 수 있다.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청원들. (사진: 청와대)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청원들. (사진: 청와대)

위 더 피플그리고 국민신문고무엇이 다를까

청와대 국민청원은 사실 미국 백악관의 위 더 피플(We the people)’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둘은 유사한 시스템이지만 세부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일단 청원 기간이 30일이라는 점은 같다. 무한정 올려둘 수 없으니 동의할 기간을 한 달로 제한하는 것.

정부의 답변을 듣기 위해 필요한 동의 수는 미국이 10만명인 반면 한국은 20만명이다. 미국 3억명, 한국 5000만명의 인구를 감안할 때 한국 기준이 더 높은 편이다. 다만 답변의 대기 기간은 미국이 60, 한국이 30일이다. 청원에 대한 답변은 한국이 더 신속하다. 답변 형식 또한 미국은 서면인 데 반해 한국은 자체적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활용해 보다 생생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 더 피플의 경우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생겨났으며, 특이한 점은 미국인 뿐만 아니라 13세 이상이라면 어느 국적의 사람이라도 청원이 가능하다. 필자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판이 걸려있는 사안이거나 주 정부 관할 사항 등에 따른 예외 조항을 이유로 답변이 거절되기도 한다. 법적인 구속력이나 강제성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백악관의 국민청원 시스템인 ‘위 더 피플(We the people)’.
미국 백악관의 국민청원 시스템인 ‘위 더 피플(We the people)’.

한국에는 국민청원에 앞서 시행돼온 국민신문고 제도도 있다. 관청을 찾아가 북을 울려 억울함을 호소하는 조선시대 고발 시스템에서 따온 것으로, 민원·제안·참여 혹은 부패·공익신고 등이 대상이다. 법령·제도·절차 등에 대해 설명이나 해석을 요구할 수 있다. 행정기관의 부당하고 위법한 처분으로 권리를 침해받거나 불편이 있을 경우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국민청원이 특정한 이슈에 관해 바라는 조치를 촉구하는 것이라면 국민신문고는 억울함이나 불편함을 고발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직접민주주의 시대로의 진입

6개월 전 청와대가 도입한 국민청원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상당히 우호적이다. 직전 정부가 억압적 태도와 심각한 불통으로 지탄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호응을 얻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다만 청원 중 정부 구조나 역할 등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엉뚱한 주장이 담기거나 초점이 엇나간 것들 역시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소년법 개정이나 임신중절 처벌 폐지 등은 사법부의 판단이 필요한 것으로, 정부가 답변을 내놓을 영역의 것이 아니다.

또한 20만명의 동의가 있다 하더라도 답변이 의무이지 무조건적인 수용이나 시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상당 부분의 청원들이 여기에 해당돼 정부 측에서는 원론적인 입장 표명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기술적인 문제도 지적됐다. 20만명이라는 기준점을 달성하기 위해 소셜 간편 로그인을 악용한 중복 및 조작이 시도됐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실제로 카카오톡 계정으로 거듭 재연결을 시도해 1개 계정으로 무한 투표가 가능한 버그(?)가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현재 카카오톡을 통한 로그인을 잠정 중단시킨 상태다.

그럼에도 국민청원 제도의 실시는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과거에는 국민의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이 투표나 입법 청원, 언론 제보 등으로 제한됐으나 이제는 달라졌다. 선거를 기다리거나 정당·언론에 호소하지 않고도 곧바로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에서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한계를 드러낸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청원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미 1년여 전 촛불을 들어 부도덕한 정권을 무너뜨릴 만큼 국민적 의식은 성장했고, 동시에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함을 증명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고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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