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형태의 ‘장애도’
또 다른 형태의 ‘장애도’
2018.02.21 17:43 by 류승연

‘장애도’.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라곤 장애를 가진 자식과 엄마만이 전부인 섬 ‘장애도’. 실재하진 않지만 실존하고 있는 그곳에서 나는 탈출에 성공했다고 믿었다.

더 이상 장애를 가진 자식 때문에 내 인생이 저당 잡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남편도 바라보고, 장애가 없는 딸도 바라본다. 장애가 있는 아들을 데리고 세상을 하직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꿋꿋하게 세상으로 나아가리라 다짐한다.

이 얼마나 훌륭한 극복 사례인가! ‘장애도’에 갇혔던 ‘지옥의 3년’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구나. 수고했어. 스스로를 토닥인다.

그런데 말이다. 알고 보니 나는 ‘장애도’에서 완전히 탈출한 게 아니었다. 폐쇄된 ‘장애도’에서 탈출해 이번엔 개방된 ‘장애도’에 도착한 것이었다. 또 다른 형태의 ‘장애도’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아들의 치료실 순방을 활동보조인에게 맡기기 시작한 작년부터 나는 사회적인 활동을 늘릴 수 있었다. 욕심껏 일도 하게 되었고, 인간관계의 범위도 대폭 늘어났다.

오랜 시간 폐쇄된 ‘장애도’ 안에서 아들만 바라보고, 아들하고의 세계만 구축하다가 세상으로 나오니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깔깔깔 웃고 매사가 즐겁다.

가장 큰 변화는 만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교수, 박사, 선생님이라 불리는 특수교육 전문가, 각 지역의 부모단체 활동가, 장애 아이를 키우는 다양한 직종의 아빠와 엄마, ‘장애’와 삶이 연관되어 있는 일반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느라 일상이 바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불안함을 느낀다. 이건 뭐지?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이 느낌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돌아본다. 무엇이 문제인지. 금방 답이 나온다.

이번엔 나의 모든 인간관계가 ‘장애’로 점철돼 있다. 물론 친구도 만나고 동네 아줌마들도 만나지만 그들에겐 의무감으로 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인간관계란 것도 꾸준히 상호작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때가 되면 의무적으로 만나러 나가는 것이다.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좋지 않다. 그런 변화는.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젠 장애와 관련 없이 사는 일반인을 만나는 자리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한다. 세상에, 시간이 아깝다니!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이고, 나와 마음을 나눴던 동네 아줌마들인데.

어느새 내 삶은 다시 ‘장애’와, 장애를 가진 아들이 중심이 되어 버렸다. 이전과 스케일이 달라졌을 뿐이다.

자식이 장애인이니 장애와 관련된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맞다. 그러면 좋다.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배움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되어버려선 안 된다.

누군가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 내가 죽은 후에도 내 자식이 마을 안에서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남은 생애를 바칠 것이고, 사회에 요구하고 부탁할 것이다. 법과 제도를 고쳐 달라 요구하고, 우리 아들을 보는 시각을 바꿔 달라 부탁할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사회는 내 아들을 포용해 달라 하면서 나는 세상을 품고 있는가? 세상이 아닌 ‘장애도’ 안에서만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고 있던 것은 정작 나 아니었던가?

내 아들이 세상 속에 받아들여지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세상 속에서 어우러져 살 줄도 알아야 한다. 스케일이 크다 한들 그곳 역시 ‘장애도’일 뿐이라면 그건 세상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떠는데 한 친구가 공부 안 하는 아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돌머리를 어떡하느냐, 어릴 때부터 그냥 기술이나 가르칠까 보다. 신세 한탄이 이어지던 중 급기야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봐도 얘는 장애가 있는 것 같아. 학습 장애!”

진짜 장애인 자식을 가진 내 앞에서 공부 안 하는 자기 아들이 장애인인 것 같다고? 순간 당황해버린 난 솟아오르는 복잡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큰 소리로 상황정리에 나섰다.

“아니야. 그 정도로 장애라고 하지 마. 은석(가명)이는 그냥 성격이 개구쟁이인 사내 녀석일 뿐이야. 학습장애라니,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은석이가 불쌍하다 얘”.

나는 마음이 불편했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다음부턴 건성으로 시간을 때운다. 친구들을 만날 이 시간에 내가 평소에 만나는 장애 관련 사람들을 만났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다. 그러면 서로를 전부 이해하고 있어서 모든 순간이 편안한데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친구들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10대에 만나 40대인 지금까지 서로의 크고 작은 모든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척하면 척이다. 내가 이 세상에 살다 갔음을 증명해 줄 이가 있다며 가족 다음엔 이 친구들일 것이다.

그런 내가 장애인 자식을 키우는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이젠 친구들이 불편해진다. 다음에 만날 약속을 정하자는데 자꾸 미루게 된다. 그냥 내가 편한 사람들만 만나고 싶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장애와 관련 있는 일반인들. 말 안 해도 내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들만 만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내 아들이 살아나갈 세상은 내 아들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 내 아들이 세상 속에서 포용되길 바란다면 나 역시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의 시각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아들이 받아들여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정면대결이다.

장애인은 약자니까 무조건 위해주고 포용해 달라고만 해서도 안 된다. 얼핏 보면 장애인 인권을 위하는 것 같지만 그 또한 세상과의 정면대결을 피하려는 회피의 한 방법일 수 있다. 게다가 그럴 경우 오히려 장애인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이들만 많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건 커다란 ‘장애인 월드’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아들이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고 일어나서도 안 된다. 그러려면 나 역시 편안한 ‘장애인 월드’ 안에서가 아니라 불편한 세상 속에서도 편안해지는 법을 찾아야 한다.

또 다른 형태의 ‘장애도’ 안에 갇히고 났더니 그에 따른 부작용도 속출한다. 내 아이의 장애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아이만을 위해 사는 좋은 부모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또다시 내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새해가 되어 열 살, 이제 십대에 들어섰다는 조급함도 한몫을 했다. 나는 아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치료를 시작해서 아들을 괴롭혔고, 뿌리치는 아이에게 의사소통보조기구인 AAC를 강압적으로 들이밀기도 했다. 아이의 치료에 목을 매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치료가 아닌 일상 속에서 일상생활 자조기술을 익히는 데 목표를 두고 그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새 장애의, 장애를 위한, 장애에 의한 삶 속에 다시 들어서고 있었다.

내 아들이 장애인이 이상 평생 ‘장애도’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다 해서 ‘장애도’ 안에만 갇혀 있어서도 안 된다. 그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장애도’와 ‘세상’에 한 발씩 모두 걸치고 있어야 한다. 그건 끊임없는 자아성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평생을 살아가면서 제3, 제4의 ‘장애도’에 갇혔다 빠져나오기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된다. 그것을 알고만 있으면 된다. 내 아들이 살아나갈 세상은 우리끼리 지지고 볶는 ‘장애도’ 안에서가 아닌 ‘세상’ 속에서라는 걸 잊지만 않고 있으면 된다.

이제 3월이 되면 나는 친구들을 만나 맛난 것을 먹으러 갈 것이다. 그 때 나는 말을 할 것이다. 아니, 해야 한다. 사실 이전에 했던 은석이 얘기에 마음이 불편했다고. ‘장애’를 편하게 말하지 못하고 쉬쉬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내가 아직 그 정도 경지에 이르진 못한 것 같다고. 그러니 앞으론 이 부분을 조금만 신경 써 달라고.

장애와 무관한 삶을 사는 친구들과 장애로 점철된 삶을 사는 내가 서로 편안해지기 위해 나는 세상과 관계 맺기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 주변에서부터 시작이다. 그것이 ‘진짜 세상(real world)’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고, 또 다른 형태의 ‘장애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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