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의 원조, 일본군 ‘위안부’ 증언
영화 ‘어폴로지’를 통해 본 사과와 연대의 의미
미투운동의 원조, 일본군 ‘위안부’ 증언
2018.03.09 17:38 by 송희원

“요즘 #MeToo운동이 한창인데 독립영화 중 여성 운동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있나요?”

-서울 마포구 김교동(가명)씨가

최근 온 나라가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운동’으로 떠들썩하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10월, 미투운동보다 먼저 SNS 해시태그 운동이 있었다. 당시 SNS상에선 피해자가 “#문단_내_성폭력”, ‘#미술계_내_성폭력’ 등의 해시태그를 달며 성폭력·성희롱 사실을 폭로했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다가 올해 1월 다시 미투운동으로 부활했다. 서지현 검사가 JTBC ‘뉴스룸’에 나와 검찰청 내부 성추문을 고발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성폭력 문제가 다시 공론화됐고 이후 문화예술계를 시작으로 정치계까지 미투운동이 크게 번져갔다. 곪아있던 고름이 터져 나오듯 지금도 각계각층의 여성 피해자들의 고백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다.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국 최초의 미투운동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에서 시작됐다.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 가시화됐다. 이후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동시에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한국 정부도 하지 못했던 일을 피해 여성들이 직접 나서서 한 것이다. 지금 활발하게 일어나는 미투운동의 원조인 셈이다.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어폴로지>(티파니 슝 감독, 2016)는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방관자인 한국 정부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할머니들의 활동을 담고 있다.

<어폴로지>(티파니 슝 감독, 2016) 포스터(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모습 스틸.

 

|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독립 극영화·다큐멘터리로 꾸준히 제작되었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1995)를 시작으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안해룡 감독, 2007), <그리고 싶은 것>(권효 감독, 2012)과 최근에는 극영화 <귀향>(조정래 감독, 2015), <눈길>(이나정 감독, 2015) 등이 만들어졌다.

그중에서도 <어폴로지>는 가해자의 ‘사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화는 캐나다 국적의 여성 감독 티파니 슝이 6년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된 길원옥 할머니(한국), 차오 할머니(중국), 아델라 할머니(필리핀)의 현재 모습과 증언을 담는다.

‘어폴로지’(apology)는 사과(謝過), 사죄(謝罪)를 의미한다. 사과에는 사과를 받는(또는 요구하는) 주체와 사과를 하는 주체가 있다. 사과를 요구하는 주체는 역사의 증언자인 ‘위안부’ 할머니, 사과를 해야 할 주체는 일본 정부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들은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공식 사죄, 법적 배상”을 요구해왔다. 길원옥 할머니는 일본 극우 혐한 시위대에게 “수치스러운 한국 할망구들”, “꺼져, 한국 매춘부들” 같은 갖은 모욕을 들으면서도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세계 방방곡곡을 다닌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다. 하지만 일본이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버티며 오히려 할머니들을 모욕하는 것을 보면 사과해야 할 사람과 받아야 할 사람의 입장이 뒤바뀐 듯한 착각마저 든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과 학생들의 수요집회 모습 스틸.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과 학생들의 수요집회 모습 스틸.

미투운동의 본질 역시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에 있다. 용기 내어 피해 사실을 고백한 여성들에게 사과는커녕 “명예훼손이다” “무고다”며 역고소하는 가해자들은 영화 속에서 끝까지 사과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모습과 닮았다. 댓글로 피해자들을 모욕하며 2차 가해를 하는 이들은 할머니들을 오히려 ‘매춘부’라고 모욕하는 극우 세력과 닮아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오랜 세월 동안 고통 속에 가둬두었던 것은 이런 가해자들의 뻔뻔함과 사람들의 무관심, 방관, 2차 가해 때문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인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의 모습 스틸.

 

| ‘#위드유’ 당신과 함께 연대합니다

영화 속 차오 할머니와 아델라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가족에게까지 오랫동안 숨겼다. 자신들은 비록 피해자지만, 그 사실 자체가 수치스럽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용기를 얻고 가족에게 고백한다. 함께 목소리를 내며 지지와 연대의 힘을 보내는 감독과 주변 사람들 덕분이었다.

길원옥 할머니가 시종일관 성치 않은 몸으로 많은 국가를 방문하며 피해 사실을 알리고 증언하는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차오 할머니와 아델라 할머니, 그리고 영화에서 항상 그의 곁을 지키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와 수요시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까지. 이들이 없었다면 일본군 사과를 받기 위한 할머니의 지속적인 활동은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좌)와 길원옥 할머니의 강연 모습 스틸.

‘위안부’ 피해자의 범위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여러 국가 및 네덜란드 여성들에게까지 이른다. 이 문제가 비단 한일 양국으로 축소될 사안이 아니란 얘기다. 그것이 길원옥 할머니가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세계 시민을 대상으로 역사의 증언을 반복하고 전 세계의 전쟁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드유(With You)운동’. 용기 내어 고백한 피해자들을 응원하고 동참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성폭력·성희롱 피해자들이 혼자만의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는 걸 돕기 위해선 우리들의 ‘위드유’ 연대가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이런 불행한 일들의 반복을 막는 최선의 방법일지 모른다.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는 길원옥 할머니.

 

Editor's Choice

 

<눈길>(이나정 감독, 2015)

영화 <눈길>은 어린 소녀들이 일제강점기 말에 겪어야 했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종분’은 가난한 집안에서, ‘영애’는 부잣집 막내로 태어났다. 어느 날 두 소녀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위안부’로 끌려간다. 전혀 다른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이제는 같은 운명이 되어버린 두 소녀. 그들 앞에 지옥과도 같은 일들이 펼쳐진다. 김향기 배우가 ‘종분’ 역을, 김새론 배우가 ‘영애’ 역을 맡았다.

<눈길>은 독립영화 전문 사이트, 인디플러그에서 다운로드해서 볼 수 있다.

 

※<TF_독립영화>는 독자 여러분의 참여로 꾸려나가는 콘텐츠입니다. 평소 독립영화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 있거나 제보할 것이 있는 분들은 댓글을 달아 주시거나, 메일(ssong@thefirstmedia.net)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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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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