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지방선거의 시즌이 찾아왔습니다. 전국 단위로 4000명에 가까운 선출직 공무원들을 뽑는 선거죠. 당연히 수많은 이들이 출사표를 던집니다. 더퍼스트에선 기성 언론이 주목하는 유력 후보 대신, 분명한 뜻을 품고 새롭게 도전하는 이들을 차례로 만나볼 생각입니다.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룬 것보다 이룰 게 많은 사람들일 수도 있죠. 하지만 어떤 도전이든 의미가 없지 않으며, 이를 알리는 것 역시 무의미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퍼스트의 슬로건은 ‘당신의 시작, 우리의 동행’입니다.
30대 후반의 나이. 큰 키에 말끔한 옷차림, 부드러운 인상과 나직한 말투. 국회의사당이 아닌 증권거래소에서 마주칠 것 같은, 정치인이라기보단 잘 나가는 ‘증권맨’에 가까운 모습. 이번 6·13지방선거 세종특별자치시장 선거에 도전하는 고준일 세종시의회 의장의 첫인상이다.
|시민을 위한 다리(脚), 세대를 잇는 다리(橋)
7일 세종시의회에서 만난 고 의장은 만 38세의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마치 구글에서 ‘청년’을 검색하면 첫 이미지로 그의 모습이 나올 것만 같은 느낌. 뒤집어 말하면 이 청년이 대한민국 유일의 특별자치시 의장직의 무게를 어떻게 견뎌왔을까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다. 기성 정치에 도전하는 청년 정치인들을 좌절케 한 민심의 한계를 그간 너무도 많이 지켜봤기 때문일 터다.
고 의장은 기자의 이 같은 기색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소신을 툭 던지듯 꺼내놨다.
“중간에 껴있는 세대는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의견을 동시에 이해하고 하나로 모을 수 있습니다. 나이든 분들의 경륜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어린 아이들의 생각 또한 귀 기울여야 할 가치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는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세종시는 역사가 깊지 않은 젊은 도시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가 많이 거주하지만 그렇다고 노령 인구가 적은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분명 ‘브릿지(bridge)’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곳이다.
그에게 시의회 의장에서 시장이 돼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참고로 시의회 의장은 기본적으로 지역 의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 정부(시청)를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자리다. 돌아온 답이 아주 대단한 것은 아니었으나, 반대로 보면 어느 하나 흠 잡을 곳이 없는 답변이기도 했다.
“의장이자 의원으로서 시민의 대변자 입장에서 시민들과 소통해왔고, 그 소중한 경험을 정책에 반영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동네 형이고 아들 친구인 시장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 그리고 시민들이 저에게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행동으로 옮겨졌다. 의장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어린이 의회’를 운영하면서 초등학생들의 민원까지 귀담아 들었고, 이는 세종시 전 지역 어린이집 공기청정기 설치로 이어졌다. 의정회를 비롯한 지역 어르신 간담회를 정기적으로 가졌고, 지역 양로원의 태양광 발전 난방 설비가 갖춰졌다.
|특명! 갈등을 중재하라
도전자로서 선거에 나선 이들에게 흔히 보이는 모습 중 하나는 상대방에 대한 뚜렷한 공격성이다. 물론 상대 후보의 허점과 미비된 부분을 집요하게 공략하는 것은 효과적인 전략으로 꼽힌다.
그러나 고 의장은 몇 차례 질문에도 자신의 경선 상대이자 현직 세종시장인 이춘희 시장에게 날을 세우지 않았다. 없는 문제도 끄집어내 공론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략임에도 고 의장은 세종시가 ‘문제가 있는 곳’으로 비치는 것을 상당히 경계했다. 그 대신 그는 세종시의 가능성을 알리려 노력하면서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집중했다. 그가 현직 시장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의 애정이 묻어난 대목이다.
물론 현재 세종시에 당면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도시 특성상 크고 작은 갈등이 있고, 또 빚어지고 있는 중이다. 신-구 도심 간 소득 및 복지 격차를 좁히는 문제를 비롯해 시민들 간 갈등이 산적해 있다는 점을 고 의장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자칫 성과에 조급할 수 있는 입장이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주로 농촌이 대부분인 구도심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을 주거지가 많은 신도심에서 소비하도록 하는 등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 나가는 중이다.
계속해서 유입되는 인구로 인한 교통 문제부터 경력단절 여성 문제, 교육기관 확충 문제 등에 대해서도 개별적인 대책을 갖고 있다. 그 대책들의 특징은 아주 획기적이지 않다는 것. 단번에 손쉽게 세상을 바꾸는 대신 충격이나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발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젊은 세종시, ‘핫한’ 30대 시장도 괜찮잖아?
2010년 12월 27일에 공포된 특별법에 따라 만들어진 세종시는 그 역사가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시민들의 평균 연령은 36.8세로, 우리나라 평균 연령이 40.4세(2015년 기준, 국가기록원)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젊은 도시이자 젊은 사람들의 도시다. 인구는 30만에 임박했고, 올해 안으로 넘어설 전망이다.
새롭게 생겨난 도시의 문화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다. 기존의 관습이 뿌리 깊지 않은 지금이 올바른 문화를 정착시킬 최적의 시기다.
“다리를 새로 짓고 건물을 새로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시장은 시민들이 편안하게 각자 위치에서 생활할 수 있게끔, 뒤에서 조용히 돕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지켜본 대부분의 청년 정치인들은 거대한 변혁을 외쳐왔다. 물론 그들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겠으나 고 의장의 결은 사뭇 달랐다. 파도보다는 잔잔한 물결의 힘이 더 강할 수 있다고 믿는 청년의 도전. 그 결과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