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뮤다 삼각지대보다 더 무서운 그곳, 포.토.라.인
버뮤다 삼각지대보다 더 무서운 그곳, 포.토.라.인
2018.03.16 16:23 by 이창희

범죄 혐의로 조사를 받는 이들이 방문하게 되는 검찰청. 피의자가 유명 정치인이라면 언론사 카메라들이 도열한 검찰청 출입문 앞을 비켜가기 어렵습니다. 흔히 포토라인(photo line)’이라 칭하는 그곳에 최근 전직 대통령이 등장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

 

검찰청 포토라인이 갖는 의미

지난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현관 앞. 각 언론사 취재진과 각종 시민단체, 일반 시민 등 수백명이 운집한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했다. 눈이 부시게 터져대는 카메라 플래시.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 누군가의 욕설과 탄식 그리고 환호. 포토라인에 선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고, 사죄의 뜻이 담긴 짧은 몇 마디를 남긴 채 조사실로 향했다.

이는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고 거의 모든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영상과 사진으로 이 전 대통령의 모습을 접했다. 그가 110초 가량 머물렀던 포토라인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포토라인은 그 명칭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언론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일반적으로 검찰에 출석하는 유명 인사에 대한 취재는 과열될 우려가 높고 취재진 간 몸싸움과 자리다툼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소위 이 나오는 위치에서 촬영을 하고 싶은 것이 기자들의 본능이기 때문. 이에 따른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취재진 내부에서 합의를 거쳐 일종의 경계선을 설정하는데, 이것이 바로 포토라인이다.

이 전 대통령과 같은 유명 인사의 경우 출석 예정 시간이 미리 공지돼 있고, 이에 따라 기자들은 하루 전날이나 당일 이른 시각에 미리 현장에 포토라인을 마련한다. 보통은 검찰청 청사 현관을 등지고 카메라들이 일렬로 배치되며, 피의자가 현관으로 향하는 길목을 확보한 뒤 적당한 지점에 표기를 해 둔다. 노란색이나 녹색처럼 눈에 잘 띄는 색깔의 테이프로 삼각형을 만드는데, 삼각형의 1개 변은 1m 가량으로 사람 1명이 서 있기 알맞은 넓이다.

의혹을 받는 정치인에게 검찰청 포토라인은 버뮤다 트라이앵글보다 더 무섭다.
의혹을 받는 정치인에게 검찰청 포토라인은 버뮤다 트라이앵글보다 더 무섭다.

단순히 취재 편의와 질서 유지를 위해 마련된 경계선일 뿐이지만 정치인들에게는 공포와 오욕의 공간이다.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정치인은 단지 혐의를 받고 있는 단계이고 아직 죄가 확정된 것이 아님에도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뇌리에는 죄인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된다.

정치인 입장에서 그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단순히 의혹을 받는 동안에는 언론을 통한 반박이나 해명을 통해 상황을 최소 공방전 양상으로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포토라인에 서는 순간부터는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기 전까진 사실상 죄인 취급을 피하기 어렵다.

각 정당이나 국회의원들이 검찰에 불려가는 일을 심각하게 기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죄가 있고 없고의 사법적 판결은 검찰과 법원의 역할이지만, 이와 별도로 정치적 판결은 사실상 포토라인을 전후로 해서 이뤄지기 때문에서다.

위기의 이명박 전 대통령.
위기의 이명박 전 대통령.

 

최고 권력자도 피해갈 수 없었다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민생경제가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매우 엄정할 때 저와 관련된 이유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또한 저를 믿고 지지해주신 많은 여러분들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미안하단 말을 드립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말을 아껴야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일로 마지막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스럽다는 말씀드립니다.”

검찰에 출두한 이 전 대통령이 포토라인에서 1분여 동안 밝힌 대국민 메시지다. 무수한 의혹을 받으며 검찰 조사를 받게 된 상황에 대한 심경과 송구스러움을 나타냈다. 동시에 억울함의 뉘앙스도 숨기지 않았다.

그가 말을 아껴야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지금까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던 역대 대통령들 역시 대체로 말이 길지 않았다.

지난 199511월 수천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소환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국민들게 죄송합니다라는 짧은 소회와 함께 조사실로 향했다. 20094월 뇌물수수 혐의를 받아 검찰에 나타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한 뒤 취재진들의 추가 질문에도 다음에 합시다라고 짧게 답했다. 지난해 3월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 당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기계적인 말을 남긴 채 포토라인을 떠났다.

 

무덤 혹은 단두대가 되어선 안 되는 그곳

재임 시절 행적으로 엄청난 의혹을 받고 있는 이 전 대통령. 다수의 국민들이 철저한 진상 조사를 원하고 있으며, 죄가 드러날 경우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나라 정치의 비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대통령 또한 국민의 한 사람일 뿐이다. 잘못을 저지른 정황이 포착됐다면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고, 죄가 드러난다면 법원의 판결에 따라 벌을 받는 것이 법치주의다. 동시에 이 같은 기준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이 민주주의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청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서 무조건 죄인으로 몰아가는 언론의 보도 행태, 그리고 이를 비판적 시각 없이 받아들이는 국민적 인식은 분명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정치적 판결은 감정에서 비롯되고, 이 결과를 비극이라고 여기는 것 모두 감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고 강변했지만 그래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역사의 비극이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되풀이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감정의 지나친 비약이다. 그 누군가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 것 자체가 비극일지는 몰라도.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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