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삭발을 했을까?
그들은 왜 삭발을 했을까?
2018.04.04 18:11 by 류승연

 

4월 2일. 장애 아이를 둔 엄마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아침부터 카톡방에 불이 나고 가슴도 콩딱콩딱 뛴다. 오후 2시 청와대 앞으로 집결! 장애인 자식을 둔 209명의 부모가 단체로 삭발식에 나서는 날이다.

나도 일찍부터 채비를 서둘렀다. 삭발을 자원할 용기는 없었다. 남편은 내가 여자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단서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이라고 한다. 비록 뻣뻣하기가 빗자루와 다를 바 없지만 그나마 긴 머리까지 짧으면 영락없는 남자가 될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삭발을 감행할 용기는 없었지만 주변 지인 몇 명이 삭발당사자로 나섰던 터라 현장에 가서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지지를 보내고 싶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참석하는 집회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부모님은 신신당부를 했다. 데모 같은 거 하면 큰일 난다고 했다. 부모님 말 잘 듣는 순종적인 학생이라 데모(당시는 집회가 아닌 ‘데모’라 불렀다)에 참여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당시 학생집회에 나는 불만이 있었다. 진지한 마음으로 총학생회를 찾아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데 무조건적인 반대만 있을 뿐 그래서 뭘 어쩌자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제시가 없었다. 선배들은 질문을 회피하기에 바빴고 나는 실망을 했다. 그 이후 부모님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닌 자의의 판단에 따라 나는 일체의 데모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집회를 취재하는 입장이 되었다. 집회 당사자들과 방패를 든 경찰 사이를 오가며 현장 분위기를 스케치하고 주요 인물들의 인터뷰를 했다. 집회라는 건 처리해야 하는 일거리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랬는데, 그랬던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장애인이 되고 나자 이젠 집회라는 게 내 자신의 일이 되어버린다. 함께 수다를 떨고 까르르 웃으며 밥을 먹었던 엄마가, 맥주 한 잔을 함께 했던 아빠가 삭발식에 자원을 한다. 나는 그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지지해야 할 의무마저 느낀다.

 

이날 집회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서 주관했다. 전국 각지에서 2000여명이 넘는 부모들이 모여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요구했고, 그 중 200여명이 삭발을 감행했다.

처음 집회가 시작될 때만 해도 나는 들떠 있었다. 여기저기서 아는 얼굴이 보이면 인사를 하느라 바빴다. 집회가 시작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자 살짝 신나기까지 했다.

“오~ TV에서 보던 거랑 똑같다. 진짜로 이 노래를 부르네”. 그뿐이랴. 사회자의 진두지휘에 따라 오른손을 들고 “투쟁! 투쟁!”이라 외치고 있으니 왠지 웃음마저 나오려 한다.

이런저런 식전 행사가 끝나고 그 시간이 왔다. 삭발의 시간. 나는 지인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앉아 있던 자리를 벗어나 단상 앞으로 걸어갔다. 아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나 열심히 찾고 있는데 삭발식이 시작된다. 젊은 엄마의 긴 머리 위로, 늙은 엄마의 흰 머리 위로 바리깡이 지나가자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떨어져 나간다.

마침 바람이 불고, 내 얼굴과 목에도 그들의 잘린 머리카락이 내려와 앉는다. 기분이 이상하다. 불쾌함과는 차원이 다른, 더 깊고 묵직한 이건 뭐지? 가슴이 죄는 듯한 이건 대체 무슨 기분이야?

 

그 때였다. 삭발 자원자 중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 사람을 발견했다. 성인 발달장애인 아들을 마을의 일원으로 잘 키워내고 있는, 선하고 유쾌한 그녀다. 그런 그녀가 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자리에 앉아 삭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충격이 왔다. 그녀의 눈빛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눈빛, 눈빛, 처음 보는 그녀의 눈빛과 표정. 늘 웃던 모습이 아니라 진지하고 깊고 무거운 그녀의 그 눈빛을 보자 나는 “지금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라고 소리치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대체 여기서들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왜 우리가, 부모들이 이렇게 삭발을 해야만 해요? 왜 다들 거기 앉아 있는 거예요?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곧이어 단상 위에 앉아있던 또 다른 아는 얼굴과 눈이 마주친다. 하루에도 수차례 경기를 일으키며 누워만 지내는 딸을 위해 먼 지방에서 마다않고 단숨에 올라와 삭발식에 동참한 그녀. 빡빡이가 된 머리로 손을 흔들어 아는 체를 하고는 활짝 웃는다. 세상에. 활짝 웃는다. 활짝.

나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손으로 큰 하트를 만들어 보내고 양손 엄지 척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선 얼른 얼굴을 돌린다. 활짝 웃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도저히 안 되겠다. 1초만 더 눈을 마주하고 있었더라면 눈물이 터져 나왔으리라. 그 활짝 웃는 웃음이 정말 기쁘고 신이 나서 활짝 웃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건 울음보다 더 슬픈 활짝이었으니까.

 

이날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매니페스토 공약으로 내놓은 낮시간 데이 서비스, 직업 서비스, 가족지원 등의 정책협약을 지키기 위해선 치매 국가책임제를 선언한 것처럼 발달장애인 문제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각 정책의 세부 내용에 대해선 추후에 하나씩 구체적인 사례들과 더불어 풀어내는 자리를 만들도록 하겠다. 지금 여기에서 ‘주간활동 서비스’라며 살짝 언급을 해도 일반인들은 그게 뭔지 잘 모를뿐더러, 아직 어린 학령기의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조차 ‘주간활동 서비스’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내 생애 처음으로 참석한 집회에서 나는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집회를 해야만, 그것도 삭발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택해야만 그나마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정부에서 관심 가지려는 인기척이라도 한다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왔고,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여전히 ‘장애는 남의 일’이 되어 모두의 관심 밖에 있다는 사실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게다가 잘 모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 역시 한없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염치가 있어야지. 부모는 뭐 하고 국가가 장애인을 다 책임지냐?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장애인과 그 가족들 호의호식하라고?”라는 한 기사에 실린 댓글을 보고 나서 국가책임제라는 게 세부 내용을 잘 모르는 이들에겐 나라에서 장애인을 한평생 먹여 살리는 것으로 잘못 이해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라는 건 장애인이 되는 순간부터 나라에서 돈을 줘 장애인을 한평생 잘 먹이고 잘 입히게 하자는 정책이 아니다.

현 정부에서 치매 문제를 개별 가정의 차원이 아닌 국가 돌봄 차원에서 해결하겠다며 국가책임제를 선포한 뒤 이를 위한 여러 정책이 잇따르고 있는 것처럼 발달장애에 관한 여러 정책도 국가 돌봄 차원에서 접근하자는 제안이고 요구이다.

그렇다고 각 정치인이 무턱대고 나와 “앞으로 발달장애인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쇼”라고 해봤자 지방선거를 앞둔 공수표에 불과하고 예산 문제에 발목이 잡혀 없던 일 처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일단 정부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라는 큰 틀을 약속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현실적인’ 정책 마련을 위해 민관 정책협의체를 구성하자는 게 이날 집회에 나온 부모들의 바람이고 요구이다.

부모인 우리는 장애인 자식을 키우지 않을 테니 나라에서 알아서 다 키워달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입히지 않고, 먹이지도 않고 나라에서 돈으로 우리 애들 문제를 다 해결해 달라는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 부분은 확실하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적어도 오해로 인한 왜곡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

장애인 자식을 데리고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하루하루 잘 살아내는 것. 아휴. 갈수록 만만치 않다. 아이가 커가면서 느끼고 겪고 마주하게 되는 문제들 역시 무게감이 달라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거나 포기하거나 숨어버릴 수는 없지. 난 엄마니까. 우리들은 부모니까. 그러니까 일단 가보는 거다. 그 끝이 어디든. GO!

 

/사진: 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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