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어학원까지 다녀야 하는 이유
사투리 어학원까지 다녀야 하는 이유
2018.04.06 17:18 by 제인린(Jane lin)

 

최근 중국의 번화가를 걷다가 직접 겪은 일이다. 귀에 쏙쏙 박히는 경쾌한 노래 소리에, 발을 멈추고 가사를 헤아려 봤지만, 도통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중국어를 공부하고, 중국에 산지 수년이 흘렀는데, 아직 노래 가사 하나 제대로 이해 못 하다니… 자책하던 필자에게 중국인 한씨가 말한다. “저거, 광동어야. 홍콩 가수가 부른 노래인데, 나도 뜻을 몰라.” 같은 중국인도 모르는 언어. 표준어와 방언 사이의 간극이 이리도 크단 말인가?

나랏말싸미 듕귁은 달아…

 

他们说, 그들의 시선

중국 국영 방송 cctv와 지역별로 운영되는 위성방송국이 방영하는 모든 영상물 속에는 빠짐없이 중국어로 적힌 자막이 함께 실린다.

정보 전달 기능이 주된 목적인 뉴스라면 고개가 ‘끄덕’일만도 하지만, 그 외 드라마, 코미디 프로그램, 토크쇼는 물론 각종 스포츠 영상까지 중국어 자막이 필수적으로 게재되는 모습을 보면 순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상상해보라. 우리 드라마에 우리말 자막이 필수적으로 깔리는 모습을.)

같은 중국어를 사용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반드시 자막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궁금해지는 건 필자뿐일까?

중국 내 방언을 전문으로 번역해주는 ‘방언 번역기’의 등장은 중국 내 방언과 표준어 사이의 간극이 어느 정도 심각한 문제인지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왼쪽부터)각각 마카오 지역 언어, 광동어 등을 번역하는 애플리케이션. (사진: 바이두)

 

她说, 그녀의 시선

중국에서 대표적인 남방지역으로 꼽히는 후난성의 중심지 창사 일대에는 유명한 외국어 교육학원이 있다. 해당 사설 학원에선 영어, 일본어, 한국어 외에 ‘광동어’를 수강 과목으로 추가해 교육해오고 있다.

외국어와 동일한 수준에서 교육하는 광동어는 사실 중국 광동성과 홍콩, 마카오 일대에서 주로 사용하는 해당 지역 방언이다. 하지만 이 지역을 오가며 무역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익혀야 하는 ‘또 다른 언어’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방언이 표준어와 이렇게 심각한 차이가 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치 다른 지역, 다른 국가의 언어를 습득하듯 어학원까지 다녀가며 공부할 정도로 말이다.

방언을 전문으로 교육하는 어학원이 중국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사진: 바이두)

그렇다면 이렇게 ‘차이’나는 방언이 중국 내 몇 개나 존재하고 있을까. 현재 가장 많은 중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는 푸통화(중국의 표준어, 普通话)로 한족의 약 70%가 이 언어를 쓴다. 그 밖에도 크게 △관화 △우어 △커자화 △민어 △웨어 △상어 △강어 등 7개에 달하는 언어가 따로 존재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인구를 가진 중국. 오랜 역사와 인구, 광활한 대륙의 크기만큼이나 언어와 문자의 차이도 큰 셈이다.

더욱이 중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북방의 언어인 ‘푸통화’를 기준으로, 그 외 지역 언어를 ‘방언’으로 구분하는 ‘이중 언어 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가 흔히 느끼는 방언, 즉 사투리와 비교하기도 애매하다. 각 언어 간의 어순, 문법 등 차이가 너무 심해 서로 다른 지역 방언으론 의사소통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다.

이 같은 배경으로, 중국인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푸통화’를 필수적으로 배운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푸통화를 습득해야 하는 셈. 만일의 경우 자신이 소수민족 출신이며, 해당 소수민족이 오랜 시간 사용해온 언어와 문자가 있을 경우 이들은 마치 제2외국어를 습득하듯 푸통화를 교육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꿈이 교사 또는 대학 강단에 서고 싶은 이라면 교원 자격증 습득 이전에 우선적으로 ‘푸통화’ 자격증을 통과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푸통화라는 단일한 언어를 통해 거대한 대륙과 14억 인구에 대한 통일적인 언어 정책을 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용되는 언어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중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역시 푸통화. 일명 ‘관화’로 불리는 데, 약 9억명의 인구가 관화를 주요 언어로 사용해오고 있다. 두 번째로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어다. 약 1억2천만명에 달하는 이들이 활용해오고 있는데, 동쪽 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한 저장성 일대의 거주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언이다.

지난해 베이징에서 개최된 양회에서 각 지역 방언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중앙정부 조치에 의해, 지역을 대표하는 인민대표들은 모두 강제적으로 푸통화로만 공식 자리에서 발언할 수 있었다. (사진:바이두)

또, 일명 민어로 불리는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수는 약 8천만명에 달한다. 민어는 고대 한어와 가장 가까운 형태의 언어로 중국 내에서 가장 복잡하면서도 습득하기 어려운 방언으로 꼽힌다.

이어 약 7천만명의 인구가 사용하는 방언은 일명 ‘커자화’로 불리는 데, 주로 해외 화교들이 사용하는 중국어다. 중국 인구 가운데 약 4%에 달하는 이들이 사용 중이며, 광동성과 복건성, 후난성, 쓰촨성 일부 지역에 조금씩 분포돼 있다. 또한 중국 후난성 일대를 상징하는 ‘상(湘)’을 붙여 부르는 상어는 중국 인구 가운데 약 5%에 달하는 8천만명이 사용한다. 그리고 장시 지역민이 주로 사용하는 강어 활용자의 수는 약 4천만명에 달한다.

이들 7개의 방언들 가운데 정부의 ‘푸통화’ 강조 정책과 가장 큰 마찰을 불러일으킨 언어는 홍콩, 마카오, 광동성, 광시장족 자치구 일대를 아우르는 지역에서 사용되는 ‘월방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홍콩 영화 속의 배우 장국영이 구사하던 중국어도 바로 월방언에 속한다. 주로 과거 춘추전국시대에 패망한 월나라 사람들이 남쪽으로 이주해 지금껏 당시의 언어를 사용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억 중국인 가운데 약 7천만명이 사용해오고 있다.

월방언은 중국이 개방하기 이전, 해외에 먼저 진출했던 화교들에 의해 푸통화보다 먼저 중국어로 알려지기 시작했던 언어로 영국인들은 해당 언어를 가리켜 ‘cantonese’라는 단어로 따로 분류해 지칭할 정도로 유명하다.

이 월방언을 사용해온 일부 홍콩 거주민들 사이에선 중국 정부의 표준어 교육 정책에 불만을 가지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 지역이 중국 대륙에 앞서 해외 문물을 먼저 받아들이며 경제적, 문화적으로 빠른 발전을 이뤘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푸통화 정책에 반대하는 일부 홍콩 지역 거주민들은 자신들과 경제적인 수준이 크게 벌어진 중국 대륙인들의 언어를 강제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현재 처지를 비관하고, 반발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홍콩의 대표적인 교사 양성 교육 기관인 사범대학 재학생 중 일부는 최근 캠퍼스 내에 ‘푸통화 정책에 반대한다’는 벽보를 게재한 뒤 학교 측으로부터 강제 정학 조치를 받기도 했다. 그저 의견을 게재했을 뿐인데, 정학 조치 및 교육자로서의 자질에 대해 의심을 받는 등의 지탄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해당 처벌 수위의 배후엔 중국 정부가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측도 조심스레 제기되기도 했다.

그때그때, 다른 거죠~

하지만 이런 상황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완전히 상이한 지역 언어 탓에 홍콩과 광저우 일대에서는 월방언과 푸통화를 전문으로 번역하거나 통역하는 이색적인 직업도 활성화돼 있다.

전문 통역업체에선 영어, 일본어, 한국어 등의 순서로 통역을 하는 비중이 큰데, 그다음 순서로 월방언에 대한 수요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기차역, 공항 등에 해당 언어를 전문으로 구사하는 통역사가 배치돼 있다. 푸통화 보급률이 약 60%에 그치고 있는 중국에서 이 같은 방언 통역, 번역을 전문으로 돕는 이들의 등장은 당연하다는 게 현지인들의 반응이다. 방언 번역, 통역 비용은 영어, 일본어, 한국어 등의 통번역 비용과 유사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난 2010년부터 후베이성 우한시에서는 타지역민들이 주로 오가는 기차역을 중심으로 해당 번역, 통역 전문가를 필수 배치하고 있다. 이들은 해당 철도국에 직접 고용돼 있으며, 월평균 4~6천 위안(약 90만원)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중국 4년제 대학 졸업생이 대기업에 취업해 받는 월급과 동일한 수준이다.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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