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이해교육을 넘어 장애에 대한 자부심으로!
장애이해교육을 넘어 장애에 대한 자부심으로!
2018.04.12 19:48 by 류승연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다가온다. 장애인의 날이 오면 모든 학교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전교생을 대상으로 장애이해교육을 실시한다.

어떤 학교에서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인형극으로 ‘장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고 노력하며, 어떤 학교에서는 장애 당사자로 이뤄진 공연팀을 초청해 전교생이 공연을 관람하고 궁금한 점 등을 당사자에게 직접 질문하기도 한다.

반면 많은 학교에서는 아직도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초빙된 인권 강사나 특수교사가 TV화면을 통해 설교를 늘어놓다 끝나기도 하고(이때 학생들의 대다수는 딴짓을 하고 있다), 어떤 학교에서는 하교 시에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것으로 장애이해교육을 마치기도 한다.

내가 자랄 때와 비교하면 분명 발전한 모습이다. 우리 땐 장애이해교육이란 말조차 없었다. 그저 장애인은 장애인, 또는 애자, 또는 바보, 또는 병신으로 불리던 시대였다.

그렇다면 나는 “이 정도라도 하는 게 어디야”라며 고마워해야 할까?

사회가 발전해 간다는 건 사람들의 인식도 함께 발전해 간다는 걸 의미한다. 이미 이만큼이나 성장한 사회에 맞게 우리들의, 아니 우리 후세대의 사회인식 수준도 높아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숙한 사회에 걸맞는 성숙한 시민이 되기 위해, 그러니까 장애인과 더불어 이 사회를 살아나가야 하는 비장애인들을 위해 필요한 일인 것이다. 불쌍하고 도와줘야 하는 장애인을 위해 귀찮지만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란 얘기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중요하다. 관점이 변하면 출발점도 달라진다.

나는 오늘 이 관점의 변화를 위해 근래 만나본 가장 멋진 한 남성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는 빛나는 지성을 지닌 40대의 근사한 남성이며, 크림커피가 기막히게 맛있는 연희동의 한 카페를 알고 있다. 이름은 김형수.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 전문위원이며, 뇌병변을 가진 장애 당사자다.

그를 처음 만난 건 한 포럼에 참석해서였다. 사회적 협동조합 출범을 앞둔 포럼에 나타난 그는 이제 막 출발을 앞두고 의욕에 들떠있는 사람들에게 왜 사회적 협동조합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을 신랄하게 이어갔다. 이런 사이다 탄산 같은 사람이라니! 나는 속으로 박수를 백만 번쯤 보냈다.

두 번째 만남은 합정동에 있는 한 불고기집에서였다. 장애 아이 부모들과 특수교사, 치료사 등이 함께 모여 수다회를 가진 자리였는데 그곳에 그가 있었다. 나는 그 날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돼 버렸다.

그는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통념을 완전히 깨버렸다. 아들을 위해 엄마인 내가 노력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자식이 아닌 부모 자신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해줬다.

그에게 푹 빠진 나는 이번엔 개인적 만남을 갖고 싶었다. 미리 연락을 하고 사무실 근처로 찾아갔다. 장애 당사자로 살아온 그의 시각은 그동안 내가 만나온 부모들이나 전문가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것은 충격적이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바로 이 사람이다!”. 나는 그를 스승으로 삼기로 했다. 그가 나를 제자로 받아줄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나는 제자를 하기로 혼자서 마음을 먹어 버렸다.

그래서 오늘은 장애인의 날, 장애이해교육을 앞두고 그가 하는 강연의 일부 내용(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을 소개하려 한다. 그의 강연은 “장애인은 도와줘야 하는 약자니까 잘 대해 줍시다”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닙니다”라는 훈화 말씀과는 차원이 다르다. ‘장애’가 ‘불쌍함’이 아닌 ‘자부심’으로 변환되는 시각의 변화는 당사자인 그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얘기다.

우선 그는 “인권이 재미가 없는 국민교육현장이 되어버린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일방적인 설교 수준으로 끝나곤 하는 장애이해교육에 우려를 나타낸다. 인권교육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설교로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상호 소통의 환경이 잘 조성되었을 때 진정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사회에선 학생들이 장애나 장애인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관심을 가질 때 이것을 적극적으로 대답해 주거나 알려주는 어른이나 선생님이 많지 않다.

“장애에 대해서 무엇을 물어봤을 때, 그것을 마치 큰 실수인 양 제지하는 자체가 인권적으로 가장 큰 실수다. 장애와 장애인에게 가질 수 있는 긍정과 애정을 콤플렉스와 부정과 측은함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게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부정적인 관념’이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는 목발을 짚은, 다리가 아프고 몸이 불편해서 돌보아야 하고 치료해야 할 환자가 된다. 하지만 그는 장애를 가진 환자가 아니라 목발을 35년 넘게 사용해 온 김형수이다. 내가 야식을 끊지 못해 통통하게 살이 오른 류승연이듯, 그의 목발이나 나의 살은 그와 나의 개인성을 말해주는 하나의 특성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오랜 시간 목발을 짚어서 언제든 누구에게든 목발 짚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목발의 달인’이며, 연희동 일대의 맛집 리스트를 모조리 꿰고 있는 미식 추구자이다.

“사회적으로 돈과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이 잊을 만 하면 하는 ‘장애인을 배려하는 말’들이 당사자들을 더 공분하게 만드는 이유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나 모욕을 배려심과 동정으로 은폐하면서 그런 것들을 오히려 널리 퍼뜨리고 사회적으로 교육시키기 때문”이라고 하는 그의 말은 아주 날카롭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간다. “장애에 대한 자부심의 깃발을 올려라!”고 외친다. ‘장애(Disability)’ 자체가 문화적으로 가치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장애(Disability)’가 문화적으로 가치를 지닌다면 ‘장애인’ 역시 문화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문화적 가치를 지닌 ‘장애(Disability)’ 상태의 사람들이 생산하고 누리고 즐기는 문화 역시 사회적인 힘과 영향을 지닌 문명으로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이 사회에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의 주류 문화에 용해되어 자신들의 장애를 ‘극복’하거나, 불굴의 의지로 인간 승리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감추어야 하는 것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어떻게 장애인 문화가 주류 문화가 되느냐고? 시작은 관점의 변화부터다. 인식의 변화부터다.

듣지 못하는 ‘장애’를 ‘청각 손실’이 아닌 침묵을 인지하고 만들 수 있는 ‘능력’으로 관점을 바꿔본다면? 수화를 언어 장애를 보조하는 것이 아닌 온전한 ‘농아인의 언어’로 바라본다면? 이때 우리와 우리 사회가 청각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는 어떻게 변화할까?

피터팬의 후크선장처럼 장애인과 그의 장애가 강력한 것으로 표상된다면, 미국 드라마의 명탐정 뭉크처럼 장애가 손해나 패배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런 문화실천과 행위로 문화를 생산할 수 있다면, 장애를 인생의 멍에나 고통이 아니라 뛰어난 문화 콘텐츠 아이콘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면, 장애인의 장애를 기적과 구원의 대상이 아닌 향유하고 즐겨야 할 예술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비장애인으로 하여금 그 문화를 닮게 할 수 있다면 장애인 문화는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의 말은 나에게도 와서 닿는다. 지적장애의 우리 아들. 우리 아들이 지닌 지적장애의 특성이 인지가 낮아 불쌍한 장애인이 아닌 어른이 되어도 순수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변화된다면?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가 때때로 환멸을 느끼곤 하는 인간관계의 가면들 속에서 유일하게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청정지대를 우리 아들에게서 경험할 수 있다면? 그 때 우리 아들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장애인, 그 이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목발의 달인’ 김형수가 쓴 글로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한다.

장애인과 장애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할 수도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영화 피터팬을 볼 때, 그 속에서 우리는 후크 선장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애꾸눈에다 갈고리 손을 가지고 있는데 아무도 그를 장애인이라 부르지 않았다.
천사를 닮았고, 순진 순수하며,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진 장애인.
그는 그런 착한 장애인이 아니었다.
그는 욕심 많고 잔인하고 악하다.
그는 그의 장애를 숨기지도 않았다.
그는 장애인이라 팔자타령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나쁜 장애인이었다.
인간 승리를 하지도 않았고, 그를 보면 절대 도와주고 싶지 않다.
우리는 아무도 그를 장애인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는 그저 나쁜 ‘선장’ 뿐이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우리는 그렇게 나쁜 장애인이다.
우리는 그렇게 다르다.
우리는 그렇게 당당하다.
그 누가 우리 앞에서 감히 개성을 논하는가?
이제 다름을 넘어 당당함으로 우리의 삶을 이야기 하리라.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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