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개념 무역강국의 비책, 비둘기는 알고 있다
신개념 무역강국의 비책, 비둘기는 알고 있다
2018.04.13 17:27 by 이지섭

 

“아, 징그러! 다른 길로 돌아가자”

길을 걷던 여자 친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돌린다. 그녀 시선이 머물렀던 곳에서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비둘기. 인도까지 치고 들어온 비둘기들은 앞을 가로막고 서서 모이를 쪼아댄다. 발로 요리조리 헤쳐도 보고, 팔로 휘휘 휘저어 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젯밤 진행된 동네 어느 회사 회식의 흔적(토사물)… 그리고 이를 탐욕스레 쪼고 있는 비둘기, 녀석들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일순위자, 도시를 오염시키는 존재다.

 

가히 현대판 지뢰밭이라 할만하다…(사진:Rohan Reddy on Unsplash)

2009년 환경부에서 실시한 ‘유해 집비둘기 관리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엔 약 3만5000마리의 비둘기가 서식하고 있다. 이후 10년간 비둘기 개체 수에 대해 실시된 조사는 없었지만, 자연 상태의 비둘기에 비해 8배 정도 짝짓기를 자주 하는 도시 비둘기들의 특성상 개체 수의 폭발적 증가는 기정사실이다. 수만 마리의 비둘기 깃털에서 나오는 각종 세균, 주택이나 차량 또는 문화재를 부식시키는 배설물, 그 배설물의 악취 등을 우려해 환경부는 집비둘기를 ‘유해동물’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 비둘기 포비아에 대한 오해와 진실

더럽고, 혐오스럽고, 불결한 새라는 낙인이 찍힌 비둘기. 그런데 정말 비둘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더럽고 불결한 새인가? 사실 비둘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우리의 오해에서 비롯된다. 조류학자 윤무부 교수는 “비둘기가 오염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환경 탓”이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비둘기는 습성상 물로 목욕하는 것을 즐기고, 가능하다면 하루에 3~4번도 목욕을 하는 꽤 깔끔한 녀석이다.

다만 자연 생태계를 벗어나 살게 된 ‘도시’가 비둘기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아 점차 오염돼 왔을 뿐. 실제로 한국조류학회에서 진행된 비둘기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비둘기의 체내에 축적된 오염물질, 중금속은 비둘기의 일반적인 생활습관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섭취하는 음식찌꺼기, 시멘트 등에 포함된 납의 농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한번 날아오를 때마다 수만 개의 세균을 흩뿌린다던데…

그래, 우리가 오해했다. 애초부터 더러운 녀석들은 아니라는 건 이제 어느 정도 알겠다. 알겠는데… 그래도 찝찝한 건 여전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얘네들은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뒤뚱거리고 둔탁해 보이는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라고? 게으름의 상징이라면 또 모를까. 비둘기는 도대체 어떻게 평화의 상징이 된 걸까?

 

| 이거 왜 이래, 나 십자훈장 받은 조류야!

때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내려간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18년 10월 3일, 프랑스군 504명은 독일군의 십자포화 속에 갇혀 있었다. 적에게 포위된 것은 둘째 치고, 본부와 연락도 두절된 상태. 물과 식량, 탄약은 고갈된 지 오래이다. 설상가상으로 프랑스 본대가 이들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로 오인포격을 시작한다.

이때 지휘관인 휘틀시 소령은 최후의 수단으로 ‘전서구(통신용 비둘기)’를 이용한다. “많은 사상자가 있고, 탈출할 수 없는 상황”이란 메시지를 매달고 날아간 첫 번째 전서구는 이내 독일군의 사격에 의해 격추된다. 절실한 마음으로 다시 지원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내지만, 두 번째 전서구 역시 독일군의 조준 사격에 의해 죽고 만다.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비둘기. 처절한 희망을 담은 전서구가 날기 시작한다. 다시 독일군의 집중 사격. 총을 맞고, 피로 범벅이 되면서도 전서구는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세 번째 비둘기는 42km 떨어진 사단 본부에 성공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병사 194명의 목숨을 살렸다. 전쟁이 끝난 후 이 전서구는 살아생전 사람도 받지 못하는 십자훈장을 받게 된다. 1차 세계대전부터 2차 세계대전의 치열한 전쟁의 시기 동안 전서구들의 활약은 계속됐고, 수천 명 병사들의 목숨을 살렸다. 전쟁이 모두 끝난 후 연합군은 전쟁에서 많은 생명을 살린 전서구를 여러 의사회의 상징으로 그려 넣었고, 이후 UN이 의사회의 관리를 넘겨받으며 평화의 상징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된다.

비둘기는 원래 굉장히 날렵한 동물이다. 사진은 전쟁 당시 카메라를 단 비둘기(위키백과)

그런데 이런 재능을 이때 처음 쓴 게 아니란다. 전장영웅의 활약 훨씬 이전부터, 비둘기는 인간사의 중요한 소식들을 전달하는 우편배달부였다. 성경 속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보자. 노아는 대홍수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육지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비둘기를 내보낸다. 비둘기는 뭍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올리브 가지를 물어오며 기쁜 소식을 전달한다. 또 성경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는 ‘마리아의 잉태’ 장면에선 성령의 메시지를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비둘기가 인간사 중요한 소식을 전달한 만큼, 비둘기는 유용하고 중요한 존재로 여겨졌다. 이는 가까운 우리 역사 속에서도 알 수 있다. 1196년 고려시대, 최충헌은 당시 권력자인 이의민에게 반란을 일으키는데, 반란의 일으킨 이유가 어이없게도 비둘기를 뺏겼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이의민의 아들이 최충헌 동생의 비둘기를 뺏은 일이 계기가 된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들이 비둘기를 이유로 권력쟁탈전을 벌였을 정도면 당시에 비둘기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비둘기는 성경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동물이다. 성모마리아의 잉태장면인 ‘수태고지’를 그린 명화들에는 대부분 비둘기가 그려져 있다.(사진: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여기까지 얘기하니, 작금의 비둘기 신세는 참 처량하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오며 굵직한 공적을 올렸던 녀석들이 지금은 찬밥신세다. 세계 각국에선 비둘기의 개체 수를 줄이려고 불임먹이를 주고, 외로움에 사무쳐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노인들에겐 벌금까지 먹인다.

하지만! 누누이 얘기했지만, 비둘기는 정말로 유용한 동물이다. 생각을 조금만 틀어보자. 비둘기를 떠오르는 도시의 악당이 아닌, 도시의 새로운 자원으로 본다면 어떨까? 우리는 갖고 있는 자원을 가꾸고 십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비둘기 강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것이다.

 

| 통신, 레저, 푸드 산업의 새 역군으로 날갯짓

비둘기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비둘기를 볼 때 우리는 실리적인 것들을 챙길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비둘기는 유능한 통신병이다. 21세기에 들어 최첨단 통신기술이 발달했다고 해서 비둘기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비둘기는 여전히 뛰어난 통신병의 역할을 수행한다. 프랑스는 여전히 150마리 규모의 비둘기 부대를 운용하고 있는데, 프랑스의 장 피에르 드쿨 의원은 “비둘기를 홀대하는 것은 큰 실수”라고 경고했다. 핵폭탄이 터지거나 폭풍·전쟁 같은 위기상황으로 첨단 통신수단이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 있으니 비둘기 부대를 육성해야 한다는 것. 가깝게는 옆 나라 중국이 비상사태에 대비해 자그마치 1만 마리 규모의 ‘비둘기 부대’를 운용하고 있다.

비둘기의 가치는 비단 통신도구로서의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대만과 중국에서는 수십억 규모의 상금이 걸린 ‘전서구 레이스’의 인기가 급증하면서, 경주용 비둘기의 거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한 마리 가격이 무려 4억5000만원이나 한단다.(2013년 기준) 이는 5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한 금액이다. 꿀을 빠는 건 영국이다. 머리 좋은 영국의 비둘기 사육업계는 중국의 수요를 일찌감치 감지, 중국시장을 활발히 공략하고 있다. 영국 로얄 레이스 비둘기 사육협회(RPRA)는 “레이스용 비둘기 사육이 영국 경제에 연간 1억3천만 파운드(1천750억원) 규모의 기여를 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중국 시장 공략을 통해 비둘기 육성사업이 경제에 기여하는 규모를 확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잘 키운 비둘기 하나 열 공장 안 부러울 수 있는 이유다.

비둘기는 성경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동물이다. 성모마리아의 잉태장면인 ‘수태고지’를 그린 명화들에는 대부분 비둘기가 그려져 있다.(사진: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br>
도시의 무법자 비둘기, 하지만 그들의 변신은 무죄

더 실용적인 이유도 있다. 지중해와 그 인근에서 비둘기는 귀한 식재료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 고든 램지는 비둘기를 직접 사냥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먹으며 ‘얇은 마블링의 지방이 환상적’이라고 말한다. 지중해에 맞닿아 있는 국가, 이집트에선 장모가 사위에게 해주는 보양식으로도 유명하다. 터키에서도 비둘기를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요리해 먹고, 중국도 비둘기구이를 즐긴다. 심지어 북한의 김정일도 비둘기를 간장에 절인 뒤 쪄서 만드는 ‘비둘기 간장찜’을 굉장히 좋아했다. 물론 당장에 도시에 있는 비둘기들을 식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지만 제대로 된 사육 환경을 통해 위생 상태를 개선하고, 품종 관리 및 개량을 통해 단계별로 관리한다면 비둘기는 가치 있는 식자원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둘기를 새로운 자원으로 인식하고 활용하게 된다면 지금처럼 도시를 오염하는 비둘기들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며 문제를 일으켰던 소위 ‘비둘기맘’들의 재능을 살려 비둘기 관리 및 전서구 교육업무를 할당시킨다면 고용창출까지도 얻을 수 있다. 단언컨대, 비둘기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자원임이 분명하다.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무역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지금, 감소하는 무역수지 흑자를 풀 수 있는 열쇠를 바로 그들이 쥐고 있는 셈이다.

 

필자소개
이지섭

미스터빈 닮은 꼴. 멍청한 글을 멀쩡하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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