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겠다, 남의 돈으로 해외여행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정치인의 ‘외유(外遊)’
좋겠다, 남의 돈으로 해외여행
2018.04.13 18:04 by 이창희

비즈니스를 위해 해외를 다녀오는 이들은 한해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을 방문해 현지 사례를 학습하고 돌아와 법을 만드는 데 참고하기도 하고, 타국 정치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외교 활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 경우 경비가 발생하는데, 이는 국가예산으로 충당합니다.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데 나랏돈을 사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과정과 방식입니다. 국민의 혈세를 사용하는 해외 출장에서 개인의 관광에 치중한다거나, 다녀온 뒤 제대로 된 내역 보고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분명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특정 기관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기관과의 관계적 특수성이 존재한다면 이 역시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진: Volodymyr Kyrylyuk/shutterstock.com)
(사진: Volodymyr Kyrylyuk/shutterstock.com)

개인이 아닌 모두의 문제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 전체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국회의원 시절 한국거래소·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우리은행 등의 지원을 받아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해 미국, 벨기에,이탈리아, 스위스, 중국 등을 다녀온 것이 문제가 됐다.

공적인 업무를 위한 출장이었지만 김 원장이 당시 금융계를 감시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이었다는 점에서 대가성 지원이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와 KIEP, 우리은행은 정무위의 피감기관이거나 감시 대상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김 원장의 사퇴를 거론하면서 연일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에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법적으로는 물론 도덕적으로도 큰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맞서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300명에 달하는 모든 국회의원들의 해외 출장 내역을 따져보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이번 논란의 쟁점이 김 원장 1인의 거취에서 여야 정치권 전체로 확산된 것이다. 개인의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서라도 이참에 정치인 해외 출장의 실태에 대해 꼼꼼히 파악하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뜨거운 논란의 주인공,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사진: 금융감독원)
뜨거운 논란의 주인공,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사진: 금융감독원)

출장비 받고 관광도 하고, 그런데 의무는 없다고?

일반적으로 국회의원들의 해외 출장은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이뤄진다. 우선 국회사무처와 의원연맹 등 국회 보조금을 받는 협회의 지원으로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 등 피감기관이 비용을 대거나 외국 기관의 초청을 받는 사례도 있다.

국회 돈으로 다녀올 경우 방문 목적과 활동, 성과를 기록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인터넷을 포함해 여러 루트를 통해 이를 공개할 의무도 있다. 하지만 내용이 부실하거나 일부러 거짓으로 작성하는 사례가 과거부터 끊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피감기관이나 민간기관 비용으로 다녀오는 경우는 그나마도 보고하거나 공개할 의무가 없다. 어디에서 무엇을 목적으로 얼마나 돈을 썼는지 전혀 알 길이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이 해외 현지조사 등 그럴듯한 구실만 붙여놓고 관광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도 제재할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 언론 등을 통해 문제가 불거져도 그때 뿐이다.

그들이 언제 어디로 가는지 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는지도 알고 싶다. 우리는.
그들이 언제 어디로 가는지 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는지도 알고 싶다. 우리는.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것

과거부터 논란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지난 2015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국제보건의료재단 예산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2014년에는 당장 검토하고 처리할 법안이 쌓였음에도 의원들이 해외로 나가는 일정은 취소되거나 미뤄지지 않았다. 이는 복지위 뿐만 아니라 국회 각 상임위에서 최근까지도 만연했다.

임기가 불과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해외로 나가 사실상 관광을 즐기거나, 국회가 열리고 있어 일해야 할기간에 해외에서 골프를 치다 들통난 사례도 있다.

윗물이 맑지 못하니 아랫물 역시 깨끗할리 만무했다. 일부 지방의회 의원들은 자연재해가 발생한 자신의 지역구를 뒤로 하고 해외 출장을 다녀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임기 종료를 앞둔 말년병장정치인들이 무더기로 해외에 나가는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해외로 출장을 다녀오는 과정에서 의도성 여부를 떠나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외 공관에서 현지 업무는 제쳐둔 채 국회의원 의전에 매달려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물론 입법 권한을 가진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느라 공관 측에서 의전을 과도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국회가 툭하면 내놓는 특권 내려놓기논의에서도 이 같은 문제는 조금도 다뤄진 바 없다.

이쯤 되고 보면, 허무맹랑함의 대명사인 어떤 사람이 언젠가 내뱉은 일갈이 조금도 허무맹랑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 나라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도둑놈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고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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