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지방선거의 시즌이 찾아왔습니다. 전국 단위로 4000명에 가까운 선출직 공무원들을 뽑는 선거죠. 당연히 수많은 이들이 출사표를 던집니다. 더퍼스트에선 기성 언론이 주목하는 유력 후보 대신, 분명한 뜻을 품고 새롭게 도전하는 이들을 차례로 만나볼 생각입니다.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룬 것보다 이룰 게 많은 사람들일 수도 있죠. 하지만 어떤 도전이든 의미가 없지 않으며, 이를 알리는 것 역시 무의미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퍼스트의 슬로건은 '당신의 시작, 우리의 동행'입니다.
효율성이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단어다. 최소한의 투입으로 기대하는 산출을 얻어내는 것으로, 생산성과 합리성 등과도 연결된다. 누군가는 ‘가성비’를 떠올리기도 할 테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비(非)효율’을 전략으로 내세운 후보가 나타났다. 선거철이 되면 ‘이색’을 무기로 ‘반짝’한 뒤 소멸되고 마는 후보들은 부지기수다. 자연히 기대 따윈 뒷주머니에 넣어놓고 대면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2시간 내내 빛났고, 인터뷰가 끝날 때쯤엔 내 눈빛도 함께 변해있었다.
경기도 고양시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만 27세의 신지현 정의당 후보는 <언더독 레이스>의 2번째 여성 후보이자 역대 최연소 후보다. 또래들 상당수가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거나 첫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출마를 선택한 청년 정치인.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혹은 기대하는 청년 정치인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중상위권 이상의 학력, 뚜렷한 사회운동 경력, 무모한 도전 경험, 누구에게도 어디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패기 등등일 터다.
그러나 신 후보는 이것 중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대학 진학은 무기한 미뤄놓은 상태고, 지역사회 캠페인을 했으되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했으며, 도전은 이번 출마가 처음이다. 여기에 겁도 많다.
“고심 끝에 출마를 결정했지만, 막상 거리에 나가 시민들에게 말을 거는 것부터 쉽지 않았어요. 어렵사리 말문을 터도 돌아오는 말과 시선은 부드럽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자신감은 나날이 떨어지기만 했어요.”
신 후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 그의 집은 풍비박산이 났다. 성인이 되기까지의 고된 시간은 참으로 길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스무 살이 됐지만, 더욱 가혹한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난히 쓸쓸했던 그해 어느 날, 아버지의 폭력을 처음으로 경험한 그는 그길로 동생과 함께 집을 떠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빌린 전재산 2만원을 손에 쥐고.
하룻밤을 지샌 다음 날부터 그는 동생과 지낼 곳을 물색했고, 고양시 일대를 누빈 끝에 ‘후불’이 가능한 고시원을 찾아냈다. 이후 지금까지 7년 동안 생의 절박함이 어땠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방할 터다.
“글쎄요. 저는 제가 살아온 날들이 남들에 비해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누구한테 대견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이유도 없고요. 열심히 살았던 시간이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 시간들이, 제가 책임져야 할 저의 잘못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으니까요.”
이런 저런 이유로 또래보다 먼저 세상을 학습하는 이들은 늘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의 상당수는 자신의 드라마가 세상에서 가장 비극이라 여기고, 이를 극복한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함정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그는 비로소 이 지점에서 차별성을 드러냈다.
신 후보는 남들보다 뒤늦게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유는 짐작하는 그대로다. 생계 때문이었다. 경쟁 후보들이 ‘예비’ 딱지를 달고 지역 곳곳을 다니며 기반을 닦는 동안 그는 그릇을 닦았다. 초반전의 자신감 하락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늦은 만큼 이를 만회하기 위해 남들보다 한 발 더 뛰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정신없이 선거구를 누볐다. 지하철역 앞에서 출퇴근하는 시민들을 향해 이름을 외치고 얼굴을 알렸다.
“조금 허전했어요.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싶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저를 쳐다보지도 않거든요. 다가가려는 기색만 보여도 피하고 싶어 하는 게 확연히 느껴집니다.”
그는 생각을 바꿨다. 시민들을 적게 만나더라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는 방향으로. 공원에 앉아 쉬고 있는 노인에게 인사만 하는 대신 옆에 나란히 앉아 이것저것 질문을 던져봤다. 군중이 몰려있는 곳이 아니라 시민 몇몇이 모여있는 곳에 가서 말을 걸었다.
물론 이 역시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경계심은 쉽게 풀렸고,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그는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알아가게 됐다.
“시민들은 대단한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주차 공간을 정비하고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며 CCTV 설치를 더 늘려달라는, 지극히 소소한 바람이 대부분이에요. 지역 정치인이 조금만 고민하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들요.”
그렇게 그는 하루에 4~5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니까. 한 표가 아쉬운 상황에 이렇게 비효율적인 선거운동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흔들릴 생각이 없다.
“기존의 정치공학으로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죠. 당선만이 목적이니까. 하지만 효율성 극대화에 천착해온 정치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버렸는지 생각해보면 답은 어렵지 않습니다.”
효율성이란 키워드처럼 상식으로 굳어져버린 존재가 있다. 여기에 맞서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쉽지 않은 싸움임을, 역사는 증명해 왔다. 낮은 승률은 둘째치더라도 그 과정의 고됨과 유혹은 사람을 더욱 지치고 두렵게 만든다. 유일한 무기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고난 속에 구축된 담담함과 우직함뿐이다. 어쩌면 결과가 뻔할 가능성이 높은, 비효율을 안고 싸우는 결과가 기대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