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에 현혹되지 말 것! LP와 음악사랑
간판에 현혹되지 말 것! LP와 음악사랑
2018.05.11 13:49 by 전호현

 

유부남들은 와이프가 친정에 간다고 하면 대체로 슬픈 척 침착함을 유지하며 속으로 친구와 뭘 하고 놀까 즐거운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이 글을 읽고 남편들에게 물어보면 분명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내 상상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이상하게 그런 날은 친구들이 바빠 홀로 집에서 치맥과 스포츠를 감상하게 되거나, 친구와 만나더라도 초기에 너무 달린 나머지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알딸딸한 상태로 이른 저녁 귀가를 하곤 한다. 멍청한 건지 미련한 건지 아무리 반복해도 이것만큼은 계획이 안 된다. 오늘은 와이프를 친정에 데려다주고, 집에 가기는 싫은데 약속을 잡지 못해 방황하다 우연히 처갓집 주변에 숨어있던 괜찮은 LP BAR를 발견한, 조금은 당황스러운 이야기다.

 

메모로 이루어진 천장

사실 이곳은 첫인상부터가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LP와 음악사랑’이라니, 이 무슨 구시대적인 이름이란 말인가. 간판 색상도 충격적이다. 분명 아저씨들이 흥에 젖어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아닌 느낌에 계단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러나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는 정말 싫었고(비가 오는 것도 한몫했다.) 다른 곳을 찾기에는 너무 늦어 무거운 발걸음으로 가게 문을 열고 말았다. 그런데 웬걸!(정말 웬걸이다!) 지하에 자리 잡은 이곳은 이름과 달리 너무나 모던한 곳이었다. 가게 전체를 드리우고 있는 메모 더미와 곳곳에 자리한 독특한 그림, 홍대에서나 맡을 법한 향초 냄새는 어떤 분명하고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게다가 자리배치나 사장님의 음악취향까지 내 취향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쪽 벽면의 LP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자리에 앉아 맥주 흡입을 시작. 이른 시간 사람이 많지 않아 사장님과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이번 사장님도 첫 번째 소개했던 ‘엘비스’처럼 단골이었던 손님이 가게를 인수한 경우였다. 6년 동안 단골이었다가 이 가게의 세 번째 주인이 되고도 벌써 3년이 지났다고 했다. 가게 자체는 16년의 세월 동안 음악만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 시간들을 잘 지켜낸 덕분에 이런 편안한 느낌의 가게가 되었구나 싶었다.

 

고풍스럽게 녹아내린 초

가게는 일반적인 LP BAR처럼 반사벽이 아니라 우드로 이루어져 소리가 자극적이지 않고 기분 좋게 울리고 있었고, 온몸을 태우며 바 위로 흘러내리는 커다란 양초는 독특한 분위기 연출에 한 몫 더하고 있었다. 이곳의 스피커는 일렉트로 보이스의 울버린. 외장은 사장님이 새로 짠 틀에 넣은 빈티지 모델. 여러 장르를 잘 표현해 내지만 특히 재즈에 잘 어울리는 스피커라 가게의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자연스러운 음색 덕에 우드로 만들어진 실내와 궁합도 좋았다.

 

스피커와 독특한 그림들

 

턴테이블의 구동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음반을 올리는 동그란 원반을 플래터라 부르는데 이것을 어떤 방법으로 돌리느냐에 따라 나누는 것. 대략 아이들러(Idler)형, 벨트(Belt)형, 다이렉트(Direct)형, 이렇게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한다. 아이들러형 턴테이블은 회전하는 모터 축에 고무 재질의 아이들러가 직접 닿아서 플래터를 돌리는 구조라 플래터가 회전하는 힘이 강하다. 벨트형 턴테이블은 모터의 축과 플래터의 원반을 가는 실이나 고무재질의 벨트로 연결한 방식이다. 스위치만 누르면 정확한 속도로 회전하는 다이렉트형 턴테이블은 조작이 간편하고 레코드를 다 듣고 나면 자동으로 카트리지가 올라가고 동작을 멈추는 오토 리턴 기능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참고: 최윤욱의 아날로그 오디오 가이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난 대부분의 것을 겉만 보고 쉽게 판단을 내렸다. 살을 빼고 싶으면 운동을 하면 되지, 노력을 안 하니 일이 잘 될 리가 있나 등등. 지금 생각하면 젊은 꼰대의 대표로 손색이 없을 정도의 생각으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참 어쩔 수 없는 상황도 많더라. 막상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나도 별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안 뒤로는 ‘사정이 있겠지’라는 생각부터 하게 되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겉과 완전히 다른 이 가게처럼 오래되어도 변하지 않은 가치는 안에 있으므로 직접 들어가 보도록 하자.

 

들어가는 입구

덧- 이 글을 얼른 마무리하고 영화 보러 가야 된다. 마누라 친정에 언제 또 가?...

덧2- 인터넷이 되지 않아 없는 음악도 있다. 있는 음악만 재생.

 

 

LP와 음악사랑

FOR 강북에서 느끼는 홍대
BAD 70-80 아니에요...

 

필자소개
전호현

건설쟁이. 앨범 공연 사진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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