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엉셩떼” 프랑스의 고부갈등(上)
“봉쥬르, 엉셩떼” 프랑스의 고부갈등(上)
2018.05.15 16:58 by 김은성

남편이 프랑스 사람이라고 말하면, 여성 동지들이 궁금해 하곤 합니다. 그건 바로 시어머니’. 질문은 극과 극입니다.

프랑스도 고부 사이는 별로겠지?”

서양 사람들은 시어머니 며느리 사이가 거의 남남이라며?”

그럴 리가 있습니까. 유럽이라도 같은 인간이고 가족관계인데요. 다만 세세한 차이가 존재할 뿐입니다. 물론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더군요. 글로벌 가족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다소 얄팍할지언정 명쾌한 결론을 턱턱 내놓긴 합니다. ‘단짝 친구 같은 고부 사이!’, ‘외국인 시어머니도 한국 시어머니와 다르지 않네요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실제 인간관계란 텔레비전의 평면적 리얼리티보다 결이 훨씬 복잡다단합니다. 도미니크(시어머니 성함입니다.)와 김은성의 관계를 대체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분명한 건 고부관계에 대한 흔한 오해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렸단 겁니다.

그립고 보고 싶어. 먼 나라에 사는 할머니 같아. 친할머니처럼 허물없는 건 아니니까. 우아하고 다정한 이모할머니 같달까.”

감정을 언어로 정리하고서야 깨달았어요. 그녀를 끈끈하게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인간으로 좋아하는 건 분명하다는 것을.

하긴 이게 당연한 거죠. 우리 만난 지 겨우 2년째인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를 유동적 관계지만, 현재로선 호감이 가득한 관계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4번의 휴가를 한 집에서 보내고 난 후의 생각인데요. 처음에 그녀를 향한 내 맘이 어땠는가 하면, 떠올리기만 해도 벽장에 숨고 싶네요. B급 며느리 정도가 아니라 미친 며느리였어요. ‘literally CRAZY!’.

​‘당신은 나를 평가할 수 없다’, ‘모두를 지배하는 24개의 반찬’ ‘크리처 레벨2’. 영화 ‘반지의 제왕’의 대사 패러디.(그림: 바티)​
​‘당신은 나를 평가할 수 없다’, ‘모두를 지배하는 24개의 반찬’ ‘크리처 레벨2’. 영화 ‘반지의 제왕’의 대사 패러디.(그림: 바티)​

서먹했던 고부 사이, 원인은 시어머니 트라우마

재작년 여름이었습니다. 남프랑스 시댁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남편·시어머니(이때는 결혼 전. 프랑스 연인들은 결혼 전에도 상대의 가족들과 휴가나 명절을 보냅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연인 상태로 평생 사는 커플도 굉장히 많고요.)와 함께 미술관에 가기로 했습니다. 일 년 간 못 만난 아들과 시시콜콜 담소를 나누며 드라이브 즐기시길 권하는 속 깊은 며느리처럼 보이고 싶었을까요? 괜시리 남편에게 이런 말을 건넸죠.

도미니크더러 앞좌석 앉으시라고 말해 줘.”

우리 엄마라면 아이고, 됐다. 커플끼리 앉아라.’라고 했을 것 같은데 도미니크는 한번 묻더니(두세 번도 아니고!) 제 말대로 하더군요. 분노한 저는 자동차 뒷좌석에 깡패처럼 드러누워서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친구에게 보낼 폭풍 카톡을 미리 써두면서요.

. 미쳤나봐. 커플 떼어놓고 자기가 앞자리에 왜 앉아? 아들이 이뻐 죽겠나 봐. 지금 20분째 쉬지 않고 이야기해. 불어도 징글징글해진다.”

영화, 드라마 속 ‘시어머니’ 이미지를 떨칠 수가 없었다.(사진: jtbc 일일드라마 ‘귀부인’)
영화, 드라마 속 ‘시어머니’ 이미지를 떨칠 수가 없었다.(사진: jtbc 일일드라마 ‘귀부인’)

그날 찍은 사진을 보면 제가 꽤 분위기 있게 나왔더군요. 두 사람과 멀찍이 떨어져 벤치에 앉아 깊은 사색에 잠겨있었으니까요. 돌아와서는 난생 처음으로 싸우다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했습니다.

우울한 마음에 방에서 맥주 한 캔 하겠다 했더니 남편은 놀라더군요.

오늘 햇볕이 너무 아름다운데 정원에서 마시는 건 어때? 테이블 가져다 줄게.”

기가 막혔습니다. 이토록 눈치가 없을 줄이야.

이 꽉 막힌 양반아! 시부모 눈 피해서 마시고 싶다고. 혼자서! 몰래! 시어머니가 바쁘게 집안일 하는데 며느리가 선글라스 끼고 맥주 마시라고? 정원에서? 마리 앙트와네트처럼?”

흥분한 상태에서 내던진 제 말을 남편은 전혀 해독하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곤 또박또박 말했죠. 그때는 패닉 상태여서 정확한 멘트는 다 잊어버렸는데, 아마 이런 요지였을 겁니다.

남프랑스 시댁 정원의 테이블과 의자. (사진: 김은성)
남프랑스 시댁 정원의 테이블과 의자. (사진: 김은성)

은성은 손님이고 도미니크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그녀가 자기 집안일 하는데 왜 마음이 불편해요? 여름이니까 더워서 차가운 맥주 마시는 건데 왜 불편하죠? 정 마음에 걸린다면 일을 좀 도울지 물어봐도 좋고요. 물론 괜찮다고 할 것 같지만요. 그런데 정말 이해가 안 가요. 오후 일정도 즐겁게 보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화를 내는 거죠? 나에게 털어놓지 않은 무슨 중대한 문제가 있는 거죠? 솔직히 말해 주세요. 아니야. 은성 마음에 뭔가 숨어 있어요. 나에게 불만이 있는 것 같아.”

 

한국에선 사랑스럽던 연인이 갑자기 히스테릭한 몬스터로 변한 게 슬펐는지, 남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기억이 납니다. 계속해서 자신에게 무슨 불만이 있는 건지 물어보면서 슬퍼했어요.

 

뻔한 며느리가 되지 않으려 모두를 불편하게 하다

그때 저는 내 안의 시어머니 트라우마와 격렬하게 싸웠던 것 같아요. 어릴 적 우리 집에선 거의 매일 큰소리가 났거든요.(친할머니와 엄마의 관계가 썩 좋지 않았다고 이해하시면 될 듯 합니다.)

저는 한국의 장녀답게 울지 말라며 엄마의 기를 세워주는 동시에 무서운 친할머니와 투쟁하며 자랐고요.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축복(?)이 등 뒤에 날아와 꽂혔죠.

네 이 똑똑한 년. 말 참~ 잘하네. 커서 변호사나 돼라!”

시어머니라는 존재가 두려우면서도 절대로 지고 싶지는 않은 두 개의 마음. 저렇게 우아하게 미소 짓고 있어도 속으론 하나하나 평가하고 있겠지 하는 의심. 그래서 하루는 참한 며느리인 척 하다가 하루는 굉장히 무뚝뚝하게 구는 이상행동을 반복했습니다.

어떤 태도를 취해도 결국 나답지가 않으니 하루 종일 갈팡질팡했던 거죠. 머릿속에 계속 빨간 경고등이 깜빡거리는 기분 아세요? 평소처럼 호탕하게 웃으면 너무 호들갑스러운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지, 권하는 음식을 모두 먹으면 게걸스러워 보이지 않을지, 그렇다고 깨작거리면 성의를 무시하는 걸로 보이지 않을지.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에 제동이 걸렸어요.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민에 지쳐 자꾸만 잠만 쏟아졌습니다.

주위는 어여쁘고 마음은 지옥. (사진: 김은성)
주위는 어여쁘고 마음은 지옥. (사진: 김은성)

어떤 인간관계도 전형적이진 않음에도, 한국의 고부 관계는 꽤나 전형적입니다. 숱한 아침 드라마와 <아침마당>, 그리고 내 친구들의 하소연이 가르쳐 줬거든요. 도미니크를 마주할 적마다 내 머릿속 김미경 언니가 혀를 끌끌 찼어요.

긴장 풀지 마라. 외국 시어머니는 다를 거 같지? 오버하지 말고 적당히 거리를 둬. 지금은 별일 없으니 우리 며느리 예쁘다 예쁘다 하지? 당신 아들과 너 사이에 분란 생기면 태도 변하는 거 한순간이야.”

맞아요. 철저히 공부해서 대비하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온라인 서점에서 프랑스+고부관계를 검색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런 책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을 지식in’으로 임명했습니다.

프랑스 며느리는 시댁에 안부전화 자주 해?”

...궁금하면 하겠지? . 요즘은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에게 전화 자주 하는 시어머니 현상이 생겼다는 기사가 났더라. 그럼 화난 며느리가 대화 중에 종료 버튼을 꾹 눌러버린대. 하하하하.”

옳거니! 역시 자유의 나라 프랑스로군싶었죠. 파리지엔처럼 최대한 도도하고 독립적인 며느리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식사 마치고 설거지도 돕지 않았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런 건 친구네 놀러가도 하는 거였는데.

나중에 들은 건데, 제가 식사를 거르거나 화난 표정으로 책을 읽을 때면 시부모님들은 굉장히 걱정하셨다고 합니다. 남편에게 넌지시 이렇게 말하면서요.

아이고. 여기서 한국말을 사용하지 못해 쓸쓸한가 보구나. 다음엔 꼭 은성의 친구들도 데려오렴. 머물 방도 많은데 뭐가 문제니. 다함께 남프랑스로 여행 오면 되잖아.”

 

필자소개
김은성

프랑스어 모르는 한국여자, 한국어 배우는 프랑스 남자 바티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나라 말로 부르건 들은 척 안하는 고양이 미코와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살고 있습니다. 국제부부의 생생한 삶을 담은 '다큐적 접근'적 에세이를 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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