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정책 이야기를 하는 이유
재미없는 정책 이야기를 하는 이유
2018.05.18 15:28 by 류승연

 

‘더퍼스트미디어’라는 매체를 통해 ‘동네 바보 형’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한 2016년 11월.

당시의 목표는 발달장애를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 내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 아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발달장애인은 어떤 특성이 있고 그 가족은 어떤 삶을 사는지 알리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평소 발달장애에 대해 배운 적도 없고 아는 바도 없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을 만나면 두려워하거나 부담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하지만 알고 나면, 단지 아는 것만으로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풀릴 수 있으리라. 이런 기대에서 시작한 게 ‘동네 바보 형’이다.

그리고 고맙게도 이 시리즈가 작게나마, 아주 사소하게나마 그런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랬다. 원래의 목표는 그것이었다. 알리자. 알리면 오해는 풀릴 것이다.

2016년11월16일 발행된 <동네 바보 형> 1화 캡처 (사진: 더퍼스트미디어)

그런데 요즘의 난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결국 바뀌어야 하는 건 우리들의 인식과 함께 법과 제도 역시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아버린 탓이다.

몰라서 그렇지 알고 나면 아주 한숨만 푹푹 나오는 게 대한민국 장애인 복지법이다.

쉽게 설명하면 그런 거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남편이 태어나면서부터 살고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서울 외곽 변두리에 위치한 이곳은 난개발의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계획적이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다른 동네에서 살아본 내 눈엔 이 동네의 난개발로 인한 문제점이 눈에 훤히 보인다. 하지만 남편은 잘 모른다. 어렸을 때는 여기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이런 빌딩도 들어서고 참 많이 변했다며 뿌듯해한다.

하지만 만약 남편이 이 동네를 벗어나 신도시에 가서 살면 그땐 지금 우리 동네의 난개발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보일 것이다.

장애인 복지법도 그렇다. 나도 몰랐을 땐 소액이나마 치료비 바우처 카드가 나오고, 활동보조인 제도라는 것도 사용할 수 있으니 그저 좋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그건 우리 동네의 난개발 같은 것이었다. 계획된 신도시처럼 여러 분야에 걸쳐 총체적이고도 유기적으로 잘 짜여진 제도가 아닌 부모들의 투쟁에 의해 하나씩 힘겹게 이뤄낸 눈물의 성장탑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들쭉날쭉하고 총체적으로 손대야 할 게 많은, 참으로 가야 할 길이 먼 장애인 복지법이 되었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에 대한 지난주 연재가 나간 후 후속편도 풀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그런데 모든 정책을 다 상세히 쓰려면 매주 하나씩의 정책만 다뤄도 페이지가 모자랄 지경이다. 정책이라 그렇다. 재미도 없는데 뭔가 복잡하기는 되게 복잡하기만 한 정책 이야기. 줄줄줄 써봐야 지루해서 읽지도 않을 정책 이야기. 하지만 필요하기는 한 정책 이야기.

그래서 모든 걸 다 다루지는 못하더라도 한 번에 읽었을 때 이해하기 쉽도록 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가 실현되어야 하고 그 안의 내용은 어떤 게 있는지 아들의 이야기와 결부시켜 마저 소개를 할까 한다.

아, ‘발달장애 국가책임제’가 나라에서 발달장애인을 책임지라는 얘기가 아닌 것은 이제 다들 알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나라에서 발달장애인을 책임지라는 게 아니라, 발달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우리들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법과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해 달라는 얘기다. 그건 확실하게 알고 가야 한다.

자, 그럼 가 본다. 지난주에 다 풀지 못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나머지 이야기.

‘가족지원 확대를 위한 부모 심리상담 지원과 양육지원 사업’이라는 정책 요구안이 있다. 뭔가 알 것도 같은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 그런 내용이다.

시계를 돌려본다. 5~6년 전이다. 아들은 모든 영역에서 발달이 늦었기 때문에 생후 13개월부터 대학병원을 전전하며 온갖 치료를 받았다. 장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병원으로부터 장애 확진을 받는 그 순간의 충격은 대단했다. ‘발달이 느린 아이’에서 ‘진짜 장애인’이 되었다. 무엇보다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이제 앞으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엄마인 내가 몸으로 부딪히면서 하나씩 알아가다 보니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그나마 요즘엔 지자체별로 가족지원센터가 생겨 장애 진단 초기 ‘멘붕’ 상태에 빠진 엄마들의 등대 노릇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한참 부족하다.

왜냐면 가족지원센터가 지자체 차원의 조례에 따라 운영되다 보니 지역별로 예산도 천차만별이고 인력도, 프로그램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곳에서는 도움이 된다는 말이 나오는데 어떤 지역에서는 있으나마나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나오곤 한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에서 요구하는 건 이러한 정보지원에 대한 문제를 각 지자체에 맡길 게 아니라 나라에서, 중앙 정부에서 책임의식을 갖고 다루자는 것이다.

중앙정부 차원의 장애인 가족지원센터가 설립돼 이곳에서 각 지자체 센터에 대한 관리가 가능해지면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 장애인과 그 가족이 살더라도 동등한 양질의 정보를 제공받고, 필요로 하는 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으리라.

게다가 지금은 각 센터나 단체의 방향성에 따라 천차만별로 진행되고 있는 장애인 생애주기별 계획 등에 있어서도 매뉴얼화 할 수 있는 기본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내가 주장하곤 했던 ‘장애 컨설턴트’ 도입에 대한 여건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장애는 벼락같이 찾아온다. 그 누구도 내 자신이 언제 장애인이 될 줄 모르고, 내 자식이 또는 내 가족이 언제 어느 순간에 장애인이 될지 알지 못한다. 그런 게 바로 장애다. 그런 갑작스러운 변화를 맞았을 때 당황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도움받을 수 있는 기관이 있다면 그건 장애인을 위한 복지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위한 복지가 아닐까?

다음으로 살펴볼 건 ‘발달장애인 자기권리 옹호 활동 지원을 위한 자기주도적 서비스 및 의사소통 지원 체계 구축’이다.

주변의 일화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한다. A씨는 중증중복장애를 지닌 딸을 키우는 엄마다. 그 엄마는 얼마 전 은행에 가서 딸 명의로 저축해 놓은 통장의 돈을 찾아야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딸이 성년후견제도를 통해 후견인을 지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년후견제도는 법적 행위 무능력자에 대한 의사조력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다. 예전에는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등의 용어를 사용했지만 요새는 이런 말이 삭제되었다 한다.

어쨌든 A씨가 딸의 휠체어를 바꾸기 위해 딸 통장에 차곡차곡 입금해 놓은 돈을 찾기 위해선 딸의 후견인 신청을 먼저 하고, 그 후견인이 “오케이”라며 승인을 해야 통장의 돈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A씨는 화가 났다. 딸은 중증의 중복장애를 지니고 있지만 법적 행위 무능력자가 아니다. 눈으로, 손으로, 작은 몸짓으로 소통을 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모든 신체를 이용해 자신의 욕구를 드러낸다. 가족들과의 소통엔 문제가 없다. 딸과의 소통에 문제를 겪는 건 은행직원일 뿐이다.

하지만 은행에서는 소통이 안 되는 중증장애인이니 후견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성년후견인 제도는 법적 행위 무능력자들에게 의사조력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그런데 방금 전 사례의 어느 곳에서도 딸의 의사를 조력하기 위한 방안이 강구된 걸 찾아볼 수 없다.

자, 이번엔 우리 아들로 상황을 바꾸어 본다. 지금 우리 부부는 아들 명의로 된 통장이 하나 있다. 20살 성년 이후의 삶을 위해 조금씩 준비해놓는 통장이다.

하지만 우리 아들은 열 살이 된 지금까지도 말 한 마디를 못한다. 그렇다고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는 아들과의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한다. 그 정도로 자신의 요구를, 의견을 확실히 전하는 것이다.

오히려 의사소통에 애를 먹는 것은 슬슬 사춘기를 향해 가는 비장애인 딸이다. 숨기고 싶은 게 생긴 10대에 들어서면서 엄마에게 거리를 두려 하는 게 보인다. 아들과의 소통엔 문제가 없지만 딸과의 소통은 오히려 힘들다.

이런 상황이지만 나는 아들이 19살이 되면 얼른 통장을 해지하고 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단지 ‘등급’으로만 존재하는 아들의 장애진단명을 보고 후견인이 없으면 법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으로 치부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민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아들에게 법적인 권리를 행사할 능력이 없다고 병원에서 진단을 내리면 아들은 20살이 넘으면서 자기 인감조차도 마음대로 뗄 수가 없단다. 엄마인 내가 곁에서 설명을 하고 아들의 의사를 전달해도 소용도 없다. 나라에서는 그것이 엄마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장애 당사자인 아들의 권리를 지키는 길이라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하다. 자식의 권리는 종종 부모에 의해 침범당하곤 하니까. 그건 장애 비장애를 떠나 자주 일어나곤 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서 무슨 일이 발생할 때마다 일일이 법적 후견인의 허락을 받는 게 ‘아들의 권리’를 지키는 길일까? 그렇다면 그건 권리행사의 주체가 ‘부모’에서 ‘후견인’으로 바뀌었을 뿐 당사자의 권리는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 게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어째야 할까? 말은 할 줄 모르지만 의사소통은 얼마든지 가능한 아들의 정확한 요구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전문가가 파견돼 아들의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게 진짜로 아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한 길이 아닐까? 무엇이 당사자의 권리를, 인권을 존중하는 길일까?

말로는 발달장애인 권리와 인권을 위해서라 하면서 정작 현재 마련된 제도는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초점을 ‘당사자 권리’로 가져오자는 것이다. 당사자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장애인의 의사소통 지원을 위한 검증시스템을 만들자는 요구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나라에서 발달장애인을 책임지라는 게 아닌, 발달장애인이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내용의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이제 남은 건 장애인 노동권에 대한 문제다. 가장 어렵고도 많은 논란이 예상되지만 가장 많은 변화가 요구되는 부분.

다음 주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하는 것으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정책 이야기지만 왜 이러한 제도들이 필요한지 조금이나마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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