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지 않는 것들에 대해, 레드 제플린
바뀌지 않는 것들에 대해, 레드 제플린
2018.05.26 23:12 by 전호현

 

어느 날 LP BAR에 대한 내 글을 본 지인이 “괜찮은 곳이 있다”며 연락을 해왔다. 최근 이런저런 일에 치여 딱히 다음 행선지를 정하지 못했던 터라 그 제안이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레드 제플린>을 소개해 준 지인은 생애 첫 직장에서 만난 인연이다. 옆 팀의 팀장님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회사를 나와 같이 사업을 시작했다가 망하기까지 했으니, 내 사회생활 초반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분이다. 보통 같이 사업을 해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서로 탓하기 바쁘고 사이좋을 리 없건만 희한하게 이 분과는 여러 해가 지나도록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멘토라고나 할까.

입구로 내려가는 계단의 사진들

오랜만에 만난 관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LP BAR에 도착했는데 야릇한 이질감이 들었다. 듣던 이야기와도 너무 딴판이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접한 이미지와도 전혀 다른 가게 아닌가? 내부는 모던한 분위기에 널찍한 공간을 뽐내고 있었고, 깔끔하고 깨끗한 사진들은 누가 봐도 새로 오픈한 것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한쪽 BAR자리의 화보들(R.I.P Chester ㅜㅜ)

지하에 마련된 공간으로 내려가며 나의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아! 내 질척질척한 스타일과 맞지 않겠는데…’ 그러나 그 찰나 내 귀를 감싸는 소리! 몇몇 대형 LP BAR의 소리가 비어있는 듯한 음색과는 다른, 따뜻하게 가게 전체를 감싸 안아주는 풍부한 음색이다. ‘뭐지?’하고 스피커를 살펴보니 반사판으로 뒷면을 채운 4개의 스피커가 정확히 가게 모서리마다 위치해 어느 곳 하나 아쉬움 없이 공간 곳곳에 소리를 전달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오는 음악들은 내가 좋아하는 모던락들. 자리에 앉았을 땐 이미 내 불안감은 전부 사그라져 있었다.

모서리마다 반사판과 함께 설치된 스피커

사장님과 이야기하면서 이곳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면서 많은 변화를 겪은 곳임을 알게 되었다. 26년 정도 나이를 먹은 오래된 가게. 지금의 사장님은 2년 정도 단골이었다가 인수 제안을 받고 올해 초부터 이곳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전에는 LP와 전혀 상관없는 금융업에 종사했었다”는 너스레와 함께. 가게를 맡은 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차례차례 바꿔나갔다고 한다.

좀 전에 감탄한 스피커는 그 노력의 산실. 수제 반사판으로 스피커를 감쌌고, 천장으로 이어지는 지지대는 원하지 않는 곳으로 음이 울리지 않도록 방진까지 마무리한 상태였다. 스피커는 BOSS 901로 공연장에 어울리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전면에 풀레인지 1개, 후방에 8개를 가지고 있는 맑기보다 풍부하고 따뜻한 음색을 들려주는 매력적인 스피커이다. 이 스피커를 최대한 활용하여 주말에는 이벤트 제안을 받거나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사장님의 꿈은 공연 위주의 LP BAR로 발돋움하는 것이라고. 세월이 흐르며 가게의 목표도, 분위기도 달라졌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변하지 않고 제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공연을 위한 무대

턴테이블은 외부의 진동에서 플래터와 톤암을 보호하기 위해 대략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첫 번째는 플래터와 톤암을 탄성이 있는 스프링 같은 것으로 받치거나 매다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을 사용한 턴테이블을 플로팅(floating) 또는 스프렁(sprung) 턴테이블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방법은 플래터와 톤암, 베이스, 플린스가 완충장치 없이 단단하게 결합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턴테이블을 리지드(rigid) 턴테이블이라고 부른다. 단어 뜻 그대로 딱딱하고 견고하게 받쳐진 상태인 것이다. 세 번째는 플로팅과 리지드의 절충형으로 플래터와 톤암 그리고 모터까지 얹어진 플린스 전체를 스프링으로 베이스 위에 받치는 것이다. 절충형은 전혀 꿈쩍도 하지 않는 리지드와 쉽게 출렁거리는 플로팅의 중간 형태라고 보면 된다.

(참고: 최윤욱의 아날로그 오디오 가이드)

BAR 뒤쪽을 차지한 술과 LP들

음악과 술에 취해 오랜만에 만난 지인을 붙잡고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되짚으며, 그때와는 달리 사는 게 재미없다고 투덜거렸다. 그런 나에게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다만 자신이 삶에 익숙해져 정형화되어갈 뿐인데 그걸 바뀌지 않는 주변에 화를 내고 있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건 결국 자신에게 화가 나서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에 머리가 띵했다. 새로운 사장님에 의해 <레드 제플린>은 바뀌었으면서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거꾸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와 그가 추천해준 LP BAR 덕에 생각의 폭을 넓혀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갑자기 며칠 전 만화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고민만 하는 애늙은이도 꼰대라고. 경쾌하게 살라고. 바꿔야 바뀌지 않는다. 적어도 오늘은 이 한 잔만 마시고 해결되지 않는 일은 그만 고민하고 경쾌하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덧- 원래 레드 제플린 노래를 넣고 싶었지만 멘토가 추천한 경쾌한 곡으로

 

레드 제플린

FOR 모던하고 깔끔한 LP BAR를 찾는다면
BAD 음침한 곳을 찾는 당신

 

 

필자소개
전호현

건설쟁이. 앨범 공연 사진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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