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네가 정한다
가격은 네가 정한다
2018.05.31 18:04 by 영태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킨 영국의 록밴드 라디오헤드는 2007년 자신의 정규 앨범 In Rainbows를 무료로 공개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익숙하지 않은 이러한 가격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라디오헤드 7집 앨범 아트

변화가 빠른 시대의 마케팅 트렌드나 이론이 변화해도 여전히 강력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가격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가성비라는 말도 사실은 성능에 방점이 찍혀 있어 보이지만, 가격이라는 기준에서 성능을 평가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가격 결정 방식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원가 중심, 경쟁 중심 그리고 가치 중심이다. 이 중 가장 매력적인 방식은 아마 고객 가치 중심의 가격 책정일 것이다. 하지만 3가지 방식 모두 본질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을 따져 책정하는 방식이며,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자율적인 선택 하에서 이러한 프로세스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가격은 절대적인 경쟁력이 되었다. 소비자들은 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최저가를 찾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으며, 이러한 노력도 여러 플랫폼에서 쉽게 비교해주는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여전히 공급자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벗어나기 힘들다고 본다. 기본적인 생산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라디오헤드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들은 7집 In Rainbows를 오프라인 발매에 앞서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했다. 물론 다운로드를 하기 위해서는 금액을 입력해야 되는 방식이고, 0원에서부터 자유롭게 지불이 가능하도록 했다. 말 그대로 Pay What you Want(이하 PWYW) 였다.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음원을 다운로드한 사람 중 38%가 자발적으로 돈을 지불했다. 물론 62%는 무료로 다운로드를 하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다운로드 당 평균 2.26달러를 기록했다. 물론 이 평균 수치는 유료와 무료 모두 합한 수치이기 때문에 실제 유료로 다운로드한 사람이 인당 지불한 금액은 더 많을 것이다. 또한 무료로 공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발매한 CD도 많이 팔렸고, 역대 최고 수입을 기록했다. 

또 다른 사례는 Paste Magazine의 캠페인이다. 

(사진: Paste Magazine 트위터)

2008년 당시 Paste Magazine은 파산의 위기를 맞이 한다. Paste Magazine 자체의 문제도 있었지만, 당시 업계 전체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Paste Magazine는 약 20만 명 이상의 가입자가 있었지만 수익은 나아지지 않았고, 파산을 하는 것이 유일한 출구로 보였다. 하지만 PWYW 캠페인을 벌이면서 아티스트의 지원을 받아 잡지를 출시했다. 결과는 당시 약 275,000불 이상 수익을 올렸고, 3만 명의 추가 가입자를 얻었다. 결과적으로 신규 광고주와 투자자가 잡지에 참여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이러한 실험들은 이후 비슷하게 잡지사나 음식점, 호텔, 박물관 등에서도 제한적으로 도입되었다. 물론 PWYW는 원가와 한계비용이 존재하는 제품에는 분명히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PWYW가 가격 전략의 주류가 되진 못했지만, 활용할 가치는 충분하다.

PWYW의 효과

여러 사례들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이슈가 되었다는 점이다. 라디오헤드의 경우 당시 언론은 물론이고,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라디오헤드의 실험은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음원이나 앨범을 돈 주고 살 생각이 없는 사람들 조차 일단 홈페이지에 방문해야만 했다. 다운로드를 하기 위해 유입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홈페이지의 콘텐츠도 잘 활용했다면 앨범에 대한 홍보효과는 단지 숫자로만 계산이 불가능하다. 또 다른 점은 기존 가격전략을 초월한 방식이기 때문에 비교 불가한 우위를 통해 판매량을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그럼 성공적인 PWYW가 되기 위한 조건들은 무엇일까? 더 많은 사례를 통해 살펴본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넛지

라디오헤드는 누구나 무료로 다운로드가 되도록 했지만, 반드시 가격을 입력해야만 했다. 물론 무료로 다운로드를 하고 싶으면, 0이라는 숫자를 입력해야 했지만, 이러한 행위는 일종의 공정심을 자극했다. 성공적인 PWYW를 위해서는 이런 디폴트 설정이 중요하다.

디폴트 설정의 중요성에 대한 꾀나 유명한 사례가 있다. 바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장기기증률이다. 아시다시피 두 나라는 사회문화적으로 매우 비슷하지만 오스트리아의 장기기증률은 99%, 독일은 12%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유는 바로 오스트리아는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지만 독일은 기증을 원하는 사람만 신청을 받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브랜드 품질

라디오헤드는 이미 명성이 높은 밴드다. 충성도 높은 팬들은 항상 그들의 새로운 앨범을 기다리고 있으며, 무료라고 하더라도 기꺼이 앨범 가격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로 따지자면 이미 브랜드 로열티가 높은 상품과 서비스이고, 이러한 것은 그동안 쌓아온 품질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다.

인지도가 전혀 없는 경우 PWYW정책이 오히려 부정적인 인식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보편적 인식이 작용하는 셈이다. 물론 제품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과 가치가 잘 소개된 경우에는 낮은 인지도로 인한 부정 평가가 감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존 인지도와는 별개로 중요한 것은 결국 품질에 대한 신뢰이다.

적합한 상품과 서비스 특성

앞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부분에서 PWYW 정책이 성공할 순 없다. 상품과 서비스의 특성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사례 연구를 통해 살펴본 바에 따르면 디지털 콘텐츠(게임/e-book 등), 전문 서비스(상담 및 코칭/블루칼러 계열의 유지 보수 서비스), 문화 (공연/전시 등), 식품 (맥주/포도주 등)에서 꾀나 효과적으로 작동된다.

 

사실 PWYW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길거리의 버스킹도 하나의 PWYW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많은 비즈니스 모델이 수익화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PWYW 정책을 그대로 도입하지 않더라도 방향성과 사고방식을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원문 출처: 영태 필자의 브런치 <마교_마케터의 교양>

 

필자소개
영태

스타트업 창업 그리고 기획, 전략, 마케팅 그리고 행동경제학의 매력에 빠진 보통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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