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부모가 장애인 자식을 낳은 가정
장애인 부모가 장애인 자식을 낳은 가정
2018.06.08 18:13 by 류승연

나는 쌍둥이 남매를 키우는 엄마다. 비장애인 딸에 대해선 여느 엄마들과 다를 게 없다. 수학 단원평가에서 곱하기 식을 틀린 아이를 앞에 두고 속으로는분통을 터트리지만 겉으로는내색을 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며 하나씩 설명을 해 나간다.

영어 학원 숙제를 모두 마쳤는지 물어보고, 곧 다가올 동요대회에서 참가상 이상을 받아보자며 음정 무시하고 부르는 딸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시범도 보인다. 딸을 키우는 데 있어서는 이렇듯 매일의 일과가 중요하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는다. 나이 들면 알아서 대학을 가거나 가지 않을 것이고, 어디에든 취업을 할 것이며, 알아서 좋은 남자(얼굴만 안 따지면 된다)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지지고 볶으며 잘 살아가리라.

(사진: 류승연)

이번엔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의 엄마가 된다. 아들을 키우는 데는 매일의 일과만큼이나 미래를 보고 가는 게 중요하다. 아들의 현재 일과는 먼 미래를 위한 준비단계의 일환으로 진행돼야 한다.

성인이 됐을 때를 대비한 교육과 일상생활 자조기술 습득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부터 연결돼 일관성 있게 이뤄져야하기 때문이다. 딸처럼 매일의 일상을 잘 살아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성인이 되어 내가 죽고 난 이후에 혼자 살아갈 날들을 잘 살아내기 위한 방법들을 익히기 위해 현재부터 준비하고 대비한다.

딸처럼 아들의 미래도 걱정을 안했으면 좋겠다. 발달장애를 좀 가졌으면 어때. 알아서 스스로의 성인기를 잘 살아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들의 미래에선 어쩔 수 없이 엄마인 내가 개입해야 할 상황들이 발생하기도 할 것이다. 바로 결혼 문제 같은 것 말이다. 가장 걱정되기도 하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회피하고 싶은 문제이기도 하다.

아직은 어려서 그저 천사 같고 귀엽기만 한 아들도 이제 사춘기를 지나고 수염이 숭숭 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남자가 되겠지. 마음이 어리다 해서 욕구까지 어린 건 아니지. 성인이 되어갈수록 욕구의 범위는 다양해질 것이고 그 중에는 연애나 사랑에 관한 욕구도 있겠지.

맨 처음에는 중매를 통해 지적장애를 가진 아가씨랑 아들을 맺어줄 계획을 세웠다. 바로 옆집에 아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아들 부부를 돌봐줄 생각을 했다. 만일 아들 내외가 자식을 낳는다면 그 아이들이 스무 살이 돼 자신의 부모를 돌볼 수 있을 때까지 나와 남편이 손주들을 키울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오래 지나지 않아 깨졌다. 내가 설계한대로 아들이 따라와 주지도 않을뿐더러, 이 과정에서 아들의 욕구는 온전히 무시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설계에서는 우리 부부의 노후도 없었다. 죽을 때까지 자식을 옆에 끼고 손주를 키우다 끝내 골병이 들어 병원에서 죽게 될 노후를 생각하니 이건 아니올시다 싶었다.

그러다보니 다음에 든 생각은 그래. 결혼이고 연애고 네가 알아서 네 마음 가는대로 한 번 해 보거라로 바뀌었다. 다만 과거와는 달리 성인이 되면 정관수술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권 시비에 걸릴 수도 있는 문제인 발달장애인 자식의 정관수술. 그런데도 굳이 이 생각을 했던 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권리가 있는 손주들에게 발달장애인 부모에 대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이 모든 일을 내 손주들이 똑같이 겪게 하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 길은 세상과 맞서 정면으로 대결해야 하는, 어려운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결론에 도달했냐고? 아무 생각이 없다. 사실 감도 못 잡겠다. 어떤 게 옳은 방향인지도 모르겠고 일단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자며 굳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주에 특별한 만남을 갖게 됐다. 장애인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일반인들의 모임에 가게 된 것인데, 우리 가정과 다른 게 있다면 자식이 장애인이 아니라 엄마가 지적장애 당사자인 가정이라는 것이다.

결혼한 지적장애인 여성. 그들이 낳은 아이들의 반은 장애가 없었지만 나머지 반은 엄마와 똑같은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내 아들의 미래 모습으로 이미 일상을 살고 있는 가정인 셈이었다.

발달장애 당사자가 부모이고, 자식마저 발달장애인인 가정. 이 가정에서 당사자 엄마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정말 놀랍게도, 내 예상과 다르게) 외로움이었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 지적장애 여성들은 대부분이 경계선 장애를 지닌 경증의 발달장애인이라 한다. 하지만 경증이던 중증이던 장애는 장애다. 발달장애가 없는 나도 발달장애인 자식을 키우다 보니 이해가 안 되고 슬프고 화날 때도 많았는데 이들은 어떠랴.

왜 아이가 말을 안 듣는지도 이해가 안 되고, 화만 내는 남편도 이해가 안 되는데 무엇보다 이런 힘든 마음을 터놓고 지낼 주변 이웃이 없는 것이 가장 힘들단다. 알겠지만 어느 가정에서나 엄마가 슬프고 힘들면 그 가정은 건강해지기 힘들다. TV에서도 각종 서적에서도 엄마가 먼저 행복하자!”고 외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당사자들을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과 일상을 함께 하는 사회복지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밀려온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왜 많은 수의 발달장애 당사자 가정이 힘들고 외로운 일상을 살아야 할까? 나는 왜 미래에 다가올 아들의 결혼생활을 지금부터 두려워해야 할까?

나라에서의 제도적 지원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함께 사는 이웃들의 공동체 의식이 더 아쉬운 부분이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발달장애 당사자가 꾸린 가정은 마을 안에 하나의 섬처럼 홀로 존재해 둥둥 떠 있기 때문이다.

장애는 없어지지 않는다. 장애는 완치되지 않는다. 장애는 특성이다. 평생을 지니고 살아야 할. 그렇다면 장애를 장애가 아닌 개인의 특성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제는 그럴 때도 되었다. 시대가, 우리의 인식이 이제는 그 시점에 도달할 때도 되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발달장애인 가정을, 발달장애의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 이룬 가정으로 바라보면 이들을 포용하는 우리의 시각이 달라진다. 이들도 마을 주민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도움이 필요하기에 나라에서의 제도적 지원을 받는, 그냥 옆집 이웃일 뿐인 것이다.

그러면 이들도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것이다. 외롭지 않을 것이다. 마을 안에서 친구가 생길 테니까. 이웃이 생길 테니까. 가정 내에서 자식 고민, 남편 고민이 있을 때 터놓고 지내며 수다를 떨고 의지를 할 수 있는 이웃이 있을 테니까.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말이다. 발달장애 당사자 가정이 마을 안에서, 지역 안에서 이웃으로 받아들여 질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는 내 아들의 미래 일을, 아들의 성인기를, 아들의 결혼문제를 지금부터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머리를 쥐어짜며 정관수술을 시키네 어쩌네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둬도 된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가 특성이 될 수만 있다면.

오늘도 아이들이 하교를 하고 집에 오면 나는 두 가지 엄마의 길을 동시에 살아내야 한다. 매일의 일과가 중요한 딸 엄마로서의 삶. 미래를 보며 현재를 사는 아들 엄마로서의 삶. 딸 엄마로서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만 아들 엄마로서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불안감은 나 혼자 없앤다고 완전히 없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세상이 도와주면, 마을이 도와주면, 이웃이 도와주면 가능하다. 어떻게? 장애를 특성으로 바라보는 것부터, 그로 인해 시선을 바꾸고 장애 당사자를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나는 대한민국이 점점 더 건강한 방향성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당분간은 정관수술이니 뭐니 그런 생각 싹 접고 아들만 잘 키울 것이다. 그리고 몇 달 후엔 지난주에 만난 사회복지사에게 다시 연락을 해볼 것이다.

장애 당사자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일반인 모임은 잘 운영되고 있는지, 친구나 언니가 생긴 당사자 엄마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장애 당사자 가정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그 결과를 직접 듣고 싶다. 긍정적 답변이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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