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둥이 혹은 겁쟁이’ 중국인의 두 얼굴
‘순둥이 혹은 겁쟁이’ 중국인의 두 얼굴
2018.06.25 18:27 by 제인린(Jane lin)

 

“아직 후진국이라서 어쩔 수 없다.”

“중국은 아직 멀었어.”

언론을 통해 종종 접할 수 있는 중국의 낮은 서비스 질, 그리고 중국에서 겪은 다양한 불편 사례들에 대해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입니다. 심한 경우 ‘짱깨’라는 비속어를 섞어가며 비아냥대는 이들도 적지 않죠.

그런데, 그들이 쉽게 평가하는 것처럼 정말로 중국은 아직 갈 길이 먼 나라일까요?

 

他们说, 그들의 시선

공항 도착과 함께 시작되는 낮은 수준의 서비스와 사람들의 불친절. 이유 모를 높은 음성과 굳은 표정, 고압적인 공무원의 태도. 한두 시간쯤의 기차 연착은 흔한 데다 비행기 결항 소식 역시 드물지 않다. 중국 입성 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중국의 향기’다.

이미 중국에 수년째 살고 있는 입장에서도 여전히 익숙해지기 어려운 중국의 단면이다. 이만하면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가도 주위에서 이 같은 소식을 접하거나 직접 겪을 때면 저절로 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신기하지 않은가. 짧게는 며칠을 다녀가는 여행객 혹은 길어야 몇 년 되지 않은 외국인 입장에서도 이렇게나 불편할진대, 중국인들은 평생을 불편과 불합리한 상황에 노출된 채로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다니.

그럼에도 그들은 목소리 높여 항의하지 않는다. 내색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왜 그럴까.

중국의 흔한 도로.

 

她说, 그녀의 시선

최근의 일이다.

중국 후난성 창사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수속을 마치고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후 10시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몇 시간이 지나도 꼼짝할 줄을 몰랐다. 자정을 훌쩍 넘겼음에도 공항 측에선 군사 훈련이라는 짤막한 이유를 내세우며 출발 시간조차 공지해주지 않았다. 그나마도 베이징이 아닌 다른 소도시가 목적지인 비행기편은 아예 줄줄이 취소가 됐다.

밤늦은 시각, 연착된 비행기를 공항 내에서 기다리는 승객들의 모습. (사진: 제인린)

결국 적잖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이날 공항을 찾은 이들은 대부분 허탕을 치고 말았다. 지연 출발과 취소가 자연 재해도 아닌 군사 훈련 때문이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꼭 필요한 훈련이었다면 미리 사전에 비행 스케줄을 항공사 측에서 조정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날 가장 놀라웠던 것은 따로 있었다. 공항에서 하염없이 대기했던 승객들 중 어느 한 명도 나서서 항의하는 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다들 공항에서 묵묵히 기다리다가 지연과 취소 공지를 듣고 알아서 돌아가거나 다른 비행기편을 알아보는 등 제각기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이었다. 당황하거나 불만 섞인 기색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만약 한국이었더라면 공항 안내센터에서부터 항공사 사무실까지 난리가 났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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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새벽에서야 이륙하는 비행기와 탑승객들의 모습. (사진: 제인린)

중국 지하철과 버스는 대체로 오후 10시를 전후로 모든 운행이 끝난다. 도심으로 향하는 공항버스도 마찬가지다. 새벽 2~3시에 발길을 돌려야 했던 많은 승객들은 아마도 공항 인근 숙소에서 예정에 없던 잠을 청했거나, 값비싼 콜택시로 공항고속도로 통행료까지 지불하고 귀가했을 것이다.

더구나 중요한 계약이나 회사 업무로 출장을 가야 했을 승객들의 경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금전적 손해와 상대방 회사와의 신뢰 관계 문제 등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연 출발이 일상이 된 중국 공항에서 대기 중인 승객들의 모습. (사진: 제인린)

더욱 놀라운 또 다른 일도 있었다. 베이징에서 창사로 향하던 중국 항공기가 돌연 목적지를 변경, 장가계에 착륙한 것. 그것도 심지어 새벽 시간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불시착 사유에 대해 설명이나 사과를 받은 승객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중국인 승객들은 공항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고 눈을 붙이거나 쉴 뿐이었다. 마치 공원에 나와 앉아 먹거리를 늘어놓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같았다. 이걸 환경에 대한 놀라운 적응력으로 봐야 하는 건지 불합리성에 항거할 줄 모르는 것으로 봐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다지도 순종적인 사람들로 만들었을까. 베이징대의 한 노(老)교수는 이들을 ‘역사적으로 강자에 대해 반항하는 순간 더 큰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을 수천 년 역사에서 몸소 체득한 사람들’이라고 진단했다.

“거대한 땅덩어리가 하나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강한 지도자가 군림했을 때만 가능했다. 거대한 땅과 인구를 고려했을 때 각 개인의 불편은 아주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개인이 불편에 저항하는 순간 지금껏 그들이 ‘전체’라는 안정에서 비롯된 현실적인 편안함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중국인들은 모두 갖고 있다.”

실제로 중국 역사를 돌아보면 그러했다. 절대 강자가 부재했던 춘추전국시대와 5호16국 시대에는 지방 군벌들이 할거하면서 엄청난 혼란이 발생했다.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고, 사람들은 수없이 죽어 나갔던 시대다.

결국 중국에서 ‘전체’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은 어제오늘에 생겨난 것이 아닌 셈이다. 일개 외국인의 눈으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을 터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불편을 감내하는 불편이 자연스러운 나라, 중국이다.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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