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바보 형’을 마치면서.
‘동네 바보 형’을 마치면서.
2018.07.25 23:51 by 류승연

 

2016년 11월 16일 “장애인 바이러스가 있다? 없다?”편으로 시작한 ‘동네 바보 형’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그동안 동환이와 함께 살아가는 저희 가족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떠셨나요? 동환이의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하나의 작은 의미로 남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봅니다.

애초에 ‘동네 바보 형’은 발달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는, 몰라서 오해를 하고 두려워하는 비장애 일반인들에게 발달장애를 가진 당사자와 그 가족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리기’ 위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지금도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댓글로, 메일로 의견을 보내주셨는데 이제 길에서 발달장애인을 만나면 동환이 생각이 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고. 웃음이 나기도 하고, 속으로 “힘내~”라는 응원을 보내는 분도 있다고. 참으로 고마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사 및 치료사 등 발달장애인을 ‘직업상’ 만나게 되는 분들도 의견을 보내주셨어요.

그동안은 일로 만났던 장애 아동. 문제행동이 무엇인가를 먼저 파악하고 그것을 소거시키는 데 목표를 두었던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이젠 내 앞에 있는 이 아이도 자신과 다를 바 없는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사랑받고 사랑하는 한 명의 ‘입체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들.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과는 소통의 장이 되기도 했어요. 처음 글을 쓸 때만 해도 ‘나는 쓰고, 독자들은 읽는’ 일방적 구조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여러 경로를 통해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과 접하게 되고 그러면서 제가 훌쩍 크는 계기도 되었답니다.

분명 ‘동네 바보 형’은 대한민국에서 지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김동환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인데, 혹자는 이렇게도 말하더라구요. ‘엄마의 성장기’라고. 지금 민망하게 혼자서 자기 칭찬 하고 있는 중이냐고요? 네. 그러고 있는 중이랍니다. 흐흐흐.

왜 이 얘기를 하느냐 면요. 제가 변화되었기 때문이에요. ‘인권’이라는 걸 생각할 줄 아는 어른으로, 이제야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권.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 대한민국 헌법 10조에는 이렇게도 쓰여 있죠.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너무도 당연하게 인권을 누리고 사는 평범한 대부분의 우리들은 평소 ‘인권’을 굳이 생각하고 살 일이 없어요. ‘인권’이라는 단어는 책이나 뉴스, 신문 등에서만 보는 단어거든요. 인권을 침해당하고 인권유린 당하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자신의 삶에도 ‘인권’이라는 단어가 들어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죠. 물론 이런 과정 없이 평소에도 인권에 관심이 높은 훌륭한 인격을 지닌 분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전 그렇지 않았답니다.

제 아들이 발달장애인이 되어 숱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었지만 저는 그 모든 것들이 인권침해라는 생각조차 못 하고 살았어요. 제가 ‘인권’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건 제 아들이 활동보조인에게 폭행을 당하고 나서부터였지요.

말을 못 하기에, 스스로의 의사를 정정당당히 표현할 수 없기에, 아마 동환이는 제가 모르는 곳에서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인권침해들을 경험했을 것이란 생각이 그제야 비로소 들기 시작하더라구요.

인권이라는 건 참 묘해요. 알고 보니 인권은 장애인 자식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어요. 인권이라는 건 모든 소수자 집단에 관한 문제였고, 때론 소수자 집단이 아니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시시때때로 벌어지는(침해하기도 하고 침범당하기도 하는) 일상적인 성질의 문제였더라구요.

“인권은 불편한 것”이라는 김형수 선생님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기억나시나요? ‘목발의 달인’이자 멋진 지성을 지닌 매력적인 한 남성이요. 그의 말대로 인권은 불편해요. 모르면 모르고 살되, 한 번 알기 시작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긴 힘든 그런 게 바로 인권이랍니다. 아마도 이를 일컬어 인권감수성에 눈뜨게 된다고 표현하는 것이겠지요.

저는요. 우리 모두가 인권감수성에 눈 뜨게 되기를 바란답니다. 이 불편한 감정을 혼자만 느끼고 사는 게 억울해서 그러냐고요? 아니요. 아니예요. 물론 그런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요. (^^;;)

하지만 그보다는 인권이라는 게 비단 이 사회의 약자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장애 비장애’ ‘다수와 소수’ ‘너와 나’, 이렇게 우리 모두가 ‘건강한 사회’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져 살아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동네 바보 형’을 정주행하신 분들에게 하나 물어볼게요. 아직도 제 아들 동환이가 장애인으로 보이시나요?

동환이가 장애인이면요. 아직도 많은 게 힘들어요. 학교에 다니는 것도 힘들고, 마트를 가거나 극장에 가는 등 일상적인 삶을 누리며 사는 것도 참 힘들어요.

그런데 제 아들이 장애인이기에 앞서 그냥 김동환이라면, 열 살 어린이라면 어떨까요? 단지 발달장애가 있을 뿐인 어린이 말이에요. 그러면 제 아들은 지금처럼 이렇게 힘들지가 않을 거예요.

집 앞 가장 가까운 학교에서 필요한 교육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이 될 테고, 다른 열 살 어린이들이 그렇듯이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이 있으면 극장엘 가고, 마트에 가서 편하게 장보기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다른 어린이들과 다른 점은 있을 겁니다. 장애로 인해 나타나는 ‘특성’들이 있을 테니까요. 극장 안의 모든 어린이들이 다 같이 웃고 다 같이 놀랄 때 혼자서 이상한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지거나 알아듣지 못할 옹알이를 외칠 수도 있어요. 얌전히 잘 앉아있지 않고 수시로 일어날 수도 있어요.

“극장에 조용히 애니메이션을 보러 온 다른 어린이들의 인권은 어쩔 테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어요.

그럴 땐 전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경험을 해야 한다고요. 수차례의 반복경험을 해야 한다고요. 그래야 언젠간 얌전히 앉아서 애니메이션 한 편을 조용히 관람할 줄 아는 성인으로 자라게 되니까요. 그런 경험의 기회를 갖지 못하면 27살이 되어도 극장에서 앉았다 일어나고 중간중간에 떠들어대는 청년이 될 테니까요.

그러기 위해선 도와주셔야 해요.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한 줌의 호의로, 한 번의 따뜻한 시선으로, 동환이와 같은 발달장애 아이들이 세상에 나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세요.

‘장애인’으로 놓고 바라보면 썩 내키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와 똑같은 욕구를 지닌 한 명의 사람, 내 자식과 다를 바 없는 소중한 어린이 등으로 시각을 달리하면 그 때부턴 눈살이 찌푸려지진 않을 거예요.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전 확신합니다.

‘동네 바보 형’의 마지막 연재니만큼 저희 가족들의 소식도 전해야겠죠?

먼저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제 아들 동환이. 2년 동안 동환이는 얼마나 멋진 어린이로 자랐을까요?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해야 제 어깨에 힘이 들어갈 텐데 애석하게도 괄목할만한 큰 변화는 없었답니다. 동환이는 ‘느리게 커 나가는’ 아이거든요. 여전히 발화가 안 되고 줄기차게 옹알이만 외쳐댑니다. 그래도 의사소통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신통방통한 사실.

하지만 분명 그 중에도 소소한 발전은 있었어요. 이젠 화장실에 가서 큰일을 봅니다. 할렐루야! 기저귀를 졸업했어요. 씩씩한 형아가 된 거지요.

그뿐인 줄 아세요? 잔머리도 꽤나 늘어서 엄마 아빠가 듣기 싫은 잔소리(옷 입자, 손 씻자 등등)를 할 때는 청각장애인 흉내를 내기도 해요. 알아듣는 얘기도 못 알아듣는 척하며 방으로 도망가 버린답니다. 그런 잔머리조차, 인지가 발달하고 있는 거라 전 웃음이 나요.

한때 “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걸”이라고 해서 수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저에게 무수한 비난의 메일을 받게 했던 우리 집 큰 딸 수인이. 10대에 들어선 말괄량이 아가씨는 제 나이에 맞게 잘 자라고 있답니다.

엄마·아빠한테 반항도 하고 말대꾸도 늘어가고 있으며, 이젠 할머니보단 같은 반 친구와 등하교를 하고 싶은 평범한 어린이로 자라가고 있지요.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리지 않아서 감사한 요즘입니다. 장애가 있는 동생으로 인해 너무 빨리 철들지 않도록, 수인이의 유년시절을 지켜줄 수 있도록, 엄마인 제가 그렇게 노력해 가려 합니다.

그리고 남편이요. ‘장애인판’ 일명 ‘장판’에 속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남편이요. 요즘은 서서히 장판의 세계도 알아가려 하고 있답니다. 장판 가족들끼리 함께 모여 노는 자리에도 나가구요. 내일은 장애 아이 아빠들끼리 술 먹는 자리에도 처음으로 참석을 한답니다. 남편의 이러한 변화는 꽤나 의미 있는 일 같아요. 동환이가 커갈수록 아빠의 역량이 중요해지고 그로 인해 아빠도 장애에 대한 보다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요. 저는 알다시피 책을 낸 이후 여기저기에 불려가 북콘서트나 강연 등을 하고 있어요. 특히 교사연수에 초대받아 학부모로서의 경험을 얘기하는 일이 많은데, 얼마 전엔 의욕에 넘친 나머지 특수교사들을 앞에 두고 너무 세게 얘기를 해서 담당자가 곤란해했던 경험도 있네요. 뭐 괜찮아요. 맨날 ‘감사합니다. 선생님들~’하는 얘기만 들어보셨을 테니 가끔은 이런 부모의 얘기도 들어보고 하는 거죠. 그쵸?

‘동네 바보 형’은 여기서 마무리하지만 글 쓰는 작업은 계속 이어갑니다. 제 행복 중 하나는 ‘쓰는 것’이거든요. 제가 먼저 행복해야 제 아들도, 저희 가족도 행복하니까 저는 계속 쓸 거예요. 이제 지금의 폭염도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가을이면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형태로 저를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자, 여러분 이제 진짜 인사를 나눠야 해요. 제 아들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제가 행복했어요. 여러분 덕분에. ‘동네 바보 형’이라는 다섯 글자는 제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내 목숨보다 사랑하는 내 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 준 좋은 소통의 창구였거든요.

제 2, 제 3의 ‘동네 바보 형’이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이 세상에 알려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장애가 특별한 무엇이 아닌, 우리 이웃의 평범한 이야기 중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기를 바랍니다. ‘동네 바보 형’이 그러한 방향의 물꼬를 트는 일을 했기를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제 가족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것만 생각할 거예요. 여러분도 그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까, 이왕 태어난 이상 행복하게 살다 죽어야 하잖아요. 그러니 모두 행복하시길요. 장애가 있든 없든. 그리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환이를 내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PS. 그동안 네이버 블로그나 포스트에 비밀로 달아주신 댓글은 제가 읽을 수 없었더랍니다. 제 개인 블로그가 아닌 ‘더퍼스트미디어’의 블로그와 포스트였거든요. 혹 저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해주고픈 분들이 계신다면 오늘만은 비밀이 아닌 공개댓글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 마지막 화이고, 앞으론 이런 형식의 글로 마주할 기회는 없을 것 같아서 저와 동환이의 실물이 담긴 영상을 링크 붙여봅니다. 한 언론에서 인터뷰를 한 영상이랍니다. 사진과 실물이 크게 다르다는 것에 큰 실망 없으시길 바랍니다. (ㅜㅜ)

▶기사보러가기 : 우리나라에서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건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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