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도 깎고 가격도 깎아요”
면도기 시장의 당찬 혁명가들_ 와이즐리
“수염도 깎고 가격도 깎아요”
2018.08.06 11:21 by 송희원

 

한번 상상해보자. 무언가를 사야 하는데, 제값 이상의 돈을 내고 있단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게 되풀이된다. “그럼 사지마”라고 반문한다면, “달리 방도가 없다”고 답해야 한다. 이런 부조리에 맞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방도’를 제시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본분이다. 국내 면도기 시장에 값싸고 질 좋은 제품으로 도전장을 내민 ‘와이즐리’도 그중 하나다.

면도기는 생활필수품이다. 남성들에겐 당연하고, 여성들도 제법 쓴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지난 수십 년간 1개의 다국적 대기업이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비싼 돈을 지불하고 그 업체의 면도기를 구입하거나, 값싸며 조악한 일회용 면도기를 써야 했다. 이런 고충을 공감했던 3명의 남자가 뭉쳤다. 제품을 직접 만들어, 시장을 바꾸기 위해서다. “생필품이 비싸서는 안 된다”는 신념은 그들을 소비자에서 공급자로 변신하게 만들었다.

“생필품이 비싸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면도)기치를 올리다

[FIRST trigger] 매일 자라는 수염, 매일 자라는 불만

“깜짝 놀랐어요. 작디작은 면도날 1팩이 4만원이 넘더라고요. 심지어 할인가더군요. 자취하는 대학생으로선 납득할 수 없는 가격이었죠. ‘왜 이렇게 비싸야 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어요.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김동욱(28) 와이즐리 대표의 회상이다. 그날 김 대표는 비싼 브랜드 면도날 대신 일회용 면도기를 구입해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피부 자극이 너무 심해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쓸만한 건 너무 비싸고, 저렴한 건 쓸 수가 없고… 개인적이며 일상적인 고민. 하지만 누군가에겐 소소한 넋두리가 원대한 포부가 된다. 바로 김 대표처럼 말이다.

김동욱 대표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이 면도기 시장 1위 업체인 질레트의 모회사인 ‘한국P&G’라는 것, 가장 많은 실무경험을 쌓은 곳이 소비재, 유통에 특화된 글로벌컨설팅기업 ‘베인앤드컴퍼니’라는 건 학창시절의 ‘넋두리’로부터 촉발된 행보다.

“직무경험을 통해 면도날의 원가가 상상 이상으로 낮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오랫동안 다국적 대기업이 독점한 결과, 가격거품이 심해졌다는 것도 깨닫게 됐죠.”(김동욱 대표)

 

[FIRST Join] ‘날’ 선 남자 셋이 뭉치니…

김 대표가 가졌던 의구심, 축적했던 경험과 지식, 그리고 ‘바꾸고자 하는’ 의지는 결국 창업이란 결실로 이어졌다. 2016년에 와이즐리의 테스트 모델인 ‘스퀘어 쉐이브 컴퍼니’를 만들었고, 2017년 1월 프로젝트팀이 성립됐다. 정식 서비스 오픈은 올해 1월. 창업 멤버는 딱 3명이지만, 모두 자신의 분야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다. 먼저 고객 데이터 관리를 맡고 있는 김윤호 이사는 드라마 제작국 마케팅 PD와 구글코리아 마케팅/영업 근무를 했다. 대형매장에 물건을 납품하는 게 아닌 와이즐리 입장에선, 고객 데이터로 인사이트를 도출해 재구매로 잇는 역할을 하는 김 이사의 어깨가 무겁다.(참고로 김윤호 이사는 김동욱 대표의 친동생이다.)

전영표 이사는 김동욱 대표의 직장 동료였다. 한국P&G에서 재무기획과 영업기획을 역임했었고, 그 경험을 살려 ‘베이글랩스’란 스타트업을 직접 운영했던 이력도 있다. 기업운영 경험이 부족한 김 대표 입장에선 ‘삼고초려’가 필요했을 만큼 중요한 자원이었던 셈. 개국공신들의 가치는 그저 ‘직무능력’에 그치지 않는다. “시장을 바꾸겠다‘는 일념이 더 큰 무기다.

김 대표는 “글로벌 기업에서 억대 연봉을 포기하고 의기투합한 멤버들”이라며 “좋은 동지의 존재와 화합은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했다.

왼쪽부터 김윤호 이사, 김동욱 대표, 전영표 이사(사진: 와이즐리)

[FIRST trouble] 모멸, 괄시, 문전박대로 빚은 면도날 하나

창업멤버 셋은 직장 다니며 모은 돈을 모두 털어 자본금을 마련했다. 사무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김 대표의 부모님 집에서 합숙을 하며 사업을 준비했다.

와이즐리의 미션은 명확하다. 사명(社名)처럼, 고객들의 현명한 소비를 돕겠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현명한 소비를 완성시켜줄 현명한 제품이 필요했다. 2016년, 그 첫 번째 실험으로 해외에서 제품을 들여와 재포장하는 방식으로 유통했다. 본격적인 제조에 돌입하기 전 면도기에 대한 수요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 브랜드 스토리를 알렸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6개월 동안 팔 분량을 두 달 만에 완판 했다. 국내의 수요를 여실히 확인한 셈. 이후 본격적으로 면도기 완제품 제조에 도전한 때가 바로 2017년 6월이다. 본격적으로 고생길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면도기의 가치를 가르는 기준은 ‘절삭력’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굳이 값비싼 제품을 사는 건 ‘날’이 고급이기 때문. 면도기 생산에 있어 칼에 사활을 걸어야 했던 이유다. 이를 위해 ‘칼의 도시’라는 독일 졸링겐(Solingen)을 이 잡듯이 뒤졌다. 면도날만 생산하는 독일의 전문공장을 찾는 데 1년, 이 업체를 설득해 와이즐리가 필요한 면도날을 공급받는 데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칼을 확보했으니 금형이 필요했다. 하지만 ‘제조’의 영역은 초보 사장님들에게 너무 가혹한 곳이었다. 모르는 것투성이였고, 맘대로 안 되는 것이 태반이었다. 모르면 모를수록 더 많이 뛰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구해야 했다. 김 대표는 “면도기는 독과점이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국내에선 만들어 본 업체가 거의 없더라”면서 “금형업체를 찾기 위해 6개월간 100군데 넘게 찾아다녔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100군데라는 게 말이 쉽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어요. 그중 20~30곳은 문전박대당하고 쫓겨나기 일쑤였죠. 간신히 대화를 텄다고 해도 모멸과 괄시를 당하는 상황들이 빈번했고요. 당시에는 창피한 줄도 몰랐어요.(웃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바닥부터 구르는 것이라고 이미 각오했었으니까요.”(김동욱 대표)

이후에도 관문은 많았다. 기술적인 문제들이나 디자인 같은 것들이다. 벤츠나 테슬라 부품 만드는 분들과 협업해 몇 달 동안 기술적인 문제들을 협의했고, 전문 디자이너들과 상의하며 심미성과 실효성을 극대화했다. “우리가 한 발 더 뛸수록 소비자들은 현명해진다”는 생각에 완성도에 완성도를 더해갔다. 그렇게 제조에만 억 단위의 자금이 투입됐다. 제품이 외면당하면 재기불능 상태에 빠지는, 그야말로 ‘올인’이었다.

와이즐리의 제품. 공식홈페이지(wiselyshave.com)에서 구매할 수 있다.(사진: 와이즐리)

[FIRST outcome] 우린 모두 현명하게 소비할 권리가 있습니다

올해 초, 정식오픈 이후 와이즐리의 상황은 어떨까? 그들의 꿈은 이뤄졌을까?

“판매량과 재구매율이 생각보다 높습니다. 그 밖에 좋은 신호들이 많고요. 출시 후 한 달 만에 포털 검색량이 질레트를 넘어선 것이나, 인스타나 블로그 등에서 자발적인 리뷰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죠.”

김 대표는 매출로 보이는 수치적인 부분보다 더 큰 성과를 강조했다. 바로 경험과 자신감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이 공장 저 공장 돌아다닌 시간들, 무턱대고 제조업자분들 붙잡고 ‘도와달라’ 떼썼던 경험들, 넘어지고 깨지며 깨친 것들, 그리고 그를 통해 결국 무언가 하나를 ‘제대로’ 만들어본 성과까지 모두 큰 자산이란 얘기다.

이 자산을 바탕으로 와이즐리는 다른 생필품으로도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우선 올해 하반기 쉐이빙 폼/젤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누구나 쓰는 생필품이기 때문에 정직한 가격에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슬로건을 앞세워, 향후 면도기 외에도 불합리한 가격 거품이 껴있는 다른 생필품 영역으로도 사업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결국 현명한 소비를 위해선 현명한 제품이 많아져야 하죠. 일단은 그것만 생각하며 열심히 달려볼 생각입니다. 참, 그거 아세요? 수십만원 짜리 화장품 중에 원가 만원도 안 하는 게 수두룩하다는 사실요.(웃음)”

 

필자소개
송희원

목표 없는 길을, 길 없는 목표에 대한 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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