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사람의 콜라보 혹은 콜라주
협동조합 성북신나, 그리고 무중력지대 성북
공간과 사람의 콜라보 혹은 콜라주
2018.08.06 18:56 by 이창희

 

역사상 유례없는 고(高)스펙, 88만원 세대, 중규직, 최저시급… 이 시대 청년들에게 거머리마냥 붙어있는 키워드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청년문제 해결에 여전히 게으릅니다. 결국 기다림을 포기한 청년들은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대단하다거나, 거창한 구호를 외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대 그 어느 세대들보다도 유쾌하고 유연하며 진지하고 치열합니다. 조금씩 움트는 이 변화의 물결을 가감 없이 담아보려 합니다.

“마을 곳곳에 숨어 있는 오래된 장소를 찾아내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겠습니다.”

“격무에 시달려서 너무 지쳤어요. 여행을 가고 싶은데 경비가 필요합니다.”

“가수가 되고 싶은데 연습할 곳이 필요해요. 코인 노래방을 다니고 싶어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무중력지대 성북’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가져오면 80만원의 지원금을 준다는 소식을 접한 이들이다. 단체든 개인이든 상관없이 심사를 통과한 10팀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심사는 누가 맡느냐고? 특정 단체가 아닌 지원자 전원이 함께 모여 상호 심사를 벌인 뒤 그 결과를 토대로 선정한다. 이 얼마나 민주적인가. 대한민국엔 아직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긴 하다.

협동조합 성북신나가 무중력지대 성북에서 현재 진행 중인 ‘시민의 발견’ 프로젝트다. 모두가 주인이고 모두가 책임지는 공유형 지역사회를 꿈꾸는 그들의 철학이 담겼다.

“무중력지대는 저희 같은 한 단체가 소유하고 멋을 부려 기획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동시에 명사들을 초청해 비용을 지불해가며 강연을 여는 것도 지양합니다. 시민들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니까요.” (오창민 성북신나 대표)

2018 성북신나 정기총회. (사진: 성북신나)

 

|지역청년 생계형 협동조합을 아시나요

아는 사람은 아주 잘 알고, 반대로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양극단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성북신나. 먼저 이들에 대해 찬찬히 알아보기로 하자.

요즘 날씨 같으면 반갑기 그지없을 찬바람이 쌩쌩 불어대던 2014년 2월, 서울 성북구 소재 성북문화재단의 인턴 10여명은 근로계약 기간이 만료됐다. 동시에 고민도 시작됐다. 다시 저 치열한 취업 시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사실상 하나뿐인 선택지를 포기한 이들은 지역 청년들과 뭉쳐 작당을 모의했다. 취업이라는 좁아터진 문보다 더 배고프고 어려운 협동조합을 선택한 것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청년 주도의 생계형 협동조합, 성북신나의 탄생 신화(혹은 설화)다.

이들의 모토는 ‘지역재생과 청년 일자리 생태계 복원을 위해 기획·연구·교육 등 전방위로 활동하는 협동조합’이다. 세부적으론 청년들의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일자리 및 삶의 생태계 구축, 적극적인 네트워크와 연대를 통해 개인적 고민의 공유·확산 유도 등이지만 사실 선거철에 난무하는 공약들 마냥 크게 와 닿진 않는 언어들이다.

그저 재미있고 즐겁고 싶은 이들이 모였다. 불안한 생태계에서 생존을 위한 치열함 속에 마음이 늘 공허했던 이들은, 사는 일이 신나는 일이면서 더 나은 가치를 위한 일일 수 없을까를 고민했다. 이 고민은 틀에서 벗어난 다른 삶을 지향하면서도 연대하고 소속감을 가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추구하는 가치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렇게 4년하고도 6개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조합에 들어왔다. 도시재생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 배보다 사람이 고픈 청년, 동네 친구를 만들고 싶었던 노인 등등. 그렇게 전체 조합원은 현재 100명을 넘어섰다.

 

|모이면 재미있고 함께하면 즐겁다

재미있게 살고자 모인 사람들이 뿜어내는 집단지성의 힘은 엄청났다. 우후죽순처럼 돋아나는 아이디어는 ‘to do list’를 끊임없이 만들어냈고, 마하 속도의 추진력이 이를 뒷받침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청춘마을살이발전소 ‘청춘발상(發想)’. ‘동네에서 다 같이 먹고 자고 놀자’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1회차 ‘일단 밥 먹자’를 시작으로 ‘이제 놀자’, ‘그럼 뭐할까’, ‘끝맺음’으로 진행됐다. 한 자리에 모여 밥을 먹고 각자의 욕구를 공유하며 여러 즐길 거리를 탐구했다. 그 가운데 다양한 세부 프로젝트가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성북 여가 문화 탐구생활 대동여흥지도 만들기’ 같은 것들이다.

다 같이 먹고 자고 노는 프로젝트, ‘청춘발상(發想)’. (사진: 성북신나)

지역 내 여러 단체들과 함께한 ‘성북 마을여행’도 눈길을 끈다. 일견 지역의 명소를 소개하는 흔한 프로젝트지만, 그 과정에서 주민들과의 소통과 또 다른 가치 창출에 포커스를 맞춘다. 서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정릉 스카이아파트가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것도 이들이었다. 이른바 ‘굿바이 스카이아파트’. 철거를 통해 사라지는 ‘소멸의 공간’을 전시와 공연 등을 통해 ‘추억의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지역 주민들은 성북신나가 발행하는 마을 웹진 ‘신나지’를 통해 이 같은 프로젝트와 지역의 갖가지 소식을 접한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소식을 전할 수 있다. 개개인의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만드는 ‘썸 맵’은 동네 맛집과 흥미로운 장소에 대한 정보가 가득 담겨 있다.

 

|중력이 없는 곳에서 꿈은 날개를 달고

성북신나는 지난 6월부터 서울시로부터의 민간 위탁을 통해 ‘무중력지대 성북’의 운영을 맡고 있다. 무중력지대는 청년들이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성북신나는 중력을 포함한 어떤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다양한 일들을 벌여나가는 중이다.

무중력지대 성북. (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서울시를 통해 확보된 공간에서는 세미나와 포럼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누구나 참여하는 만큼 다루는 주제에도 아무런 제한이 없다. 그저 모두가 떠들고 즐기는 시간이다. 인디밴드를 비롯해 다양한 이들이 찾아와 공연을 열고, 때로는 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심지어 조리가 가능한 공간도 있어 아무 때고 찾아와 밥을 해 먹을 수도 있다.

공부를 하고 싶은 이들이 도서관이나 카페 대신 이곳을 찾는다. 소소한 무언가를 손으로 만들고 싶은 이들도 수시로 방문한다. 무엇보다도 요즘같이 무더운 날씨에는 오가는 길에 이만한 휴식처도 없다.

무중력지대 성북의 문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2시간 동안 열려있다. 물론 특별한 이벤트가 있거나 누군가가 원할 경우 더 열어놓기도 한다. 현재는 운영 인력의 한계 때문에 12시간으로 제한돼 있지만 정규 운영 시간을 장기적으로 더 늘릴 계획이다.

오창민 성북신나 대표. (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일상의 변화가 이상을 구축하고 세상을 바꾼다

물론 이들의 프로젝트가 모두 빛이 나고 성공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예상치 못했던 벽에 직면하고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다. 성북신나는 좀처럼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역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무던하게 움직였다.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시장 상인들은 일시적 관심이 아닌 매출의 신장을 원한다. 주민 입장에선 여전히 시장은 대형마트보다 불편하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모두 다르고 조율 자체도 쉽지 않았다.

무중력지대 성북 내부. (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이를 계기로 성북신나는 그간 ‘만능’이라고 여겼던 이벤트 위주의 접근법을 다시 고민하게 됐다. ‘임팩트 있는 한 방’ 대신 ‘은은하고 일상적이며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된 시점이기도 하다.

성북신나는 지금까지의 활동을 바탕으로 ‘2.0’ 시대를 준비 중이다. 핵심은 커먼즈(commons)다. 토지와 같은 자원을 시민들이 직접 나서 공동으로 이용·관리하고 책임까지 지는 것으로, 일종의 공유지 개념이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도시의 삭막함을 지워낼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온전히 시민의 힘으로요.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하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땅이란 것은 사실 태초부터 누구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오창민 대표)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고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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