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원 높은 ‘공작人’들의 세상,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 메이커 스페이스를 가다②
한 차원 높은 ‘공작人’들의 세상, 여기에 있다
2018.08.09 15:43 by 이창희

손에 잡히는 대로 뭐든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게 좋기만 한 당신. 수익활동이든 취미든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어느새 그렇게 도래한 ‘호모 메이커스’의 시대. 제조업 르네상스가 움트고 있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기록적인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이 땅에서 마음 편히 내 물건을 만들 공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기술력을 갖춘 도구와 장비는 희소하고, 구매 혹은 이용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만들고 싶고 만들 것도 있는데, 인프라 구축은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이죠.

다행히 최근 정부 주도의 메이커 문화 확산 정책이 시행되면서 전국 곳곳에 메이커 스페이스들이 생겨나는 중입니다. 이곳에서는 고가의 장비들을 무상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고, 사용법에 대한 교육도 받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과 같은 메이커들과 함께 어울리며 정보 교류와 작업물에 대한 공유도 가능합니다.

“필라멘트는 다들 아시죠? 3D 프린터에 쓰이죠. 종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강연자의 설명에 교육생들의 눈이 반짝인다. 3D프린터 기초장비 교육 현장. 그런데 ‘기초’라 하기엔 약간 위화감이 있다. ‘PLA(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친환경 수지)’, ‘적층두께(프린터에서 하나의 레이어가 갖는 두께)’같은 전문용어가 난무하지만, 10여명의 교육생 어느 누구도 용어에 대한 거부감을 찾아볼 수 없다. 분명히 메이커 교육현장을 취재하러 찾아왔는데, 계속 듣다 보니 마치 개발자들의 협업 현장이나 전문가들의 포럼을 연상시킨다. 서울 성수IT종합센터에 위치한 ‘성수 메이커 스페이스’의 풍경이다.

3D프린터 사용 교육. (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지난 7일 오후 방문한 성수 메이커 스페이스에선 기초장비 교육이 한창이었다. 담당 매니저의 주관하에 3시간 동안 3D프린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실습까지 해보는 과정이 진행됐다. 교육생들은 모두 사전 인터넷 신청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가한 이들로, 메이커 장비에 관심이 많은 학생·직장인 등이다. 교육을 이수하고 나면 앞으로 이곳에 마련된 장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서울산업진흥원(sba)에서 위탁 운영 중인 성수 메이커 스페이스는 종로의 ‘팹 랩 서울(Fab Lab Seoul)’, 용산의 ‘디지털 대장간’ 등과 함께 서울에 위치한 대표적인 메이커 스페이스다. 장비를 갖추고 자체 교육을 실시하는 등 메이커 문화의 저변 확대를 위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세부적인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다.

성수 메이커 스페이스.(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완전 초보들도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상대적으로 ‘조금 아는’ 분들이 오시죠. 이를테면 메이커 분야에서 창업을 하시려는 분들, 타 분야의 경험이 풍부하신 시니어들, 대학 동아리 멤버나 전공생들입니다. 자연스레 단순 취미보다는 무언가 ‘목적의식’을 갖고 오시는 분들이 많죠.”(김병규 성수 메이커 스페이스 매니저)

실제로 이곳은 준비된 자들을 위해 ‘한 차원’ 높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장비 교육 외에도 사물인터넷(IoT) 제작자를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스마트 디바이스 출시를 위한 다양한 워크숍 및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예비·현직 창업가들이 시제품을 제작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인 셈이다.

경험과 기반이 있는 이용자들이 주로 모이다 보니, 가게로 치면 ‘단골’인 이용자들이 많다. 공간 곳곳에서 은은히 풍기는 ‘전문가의 냄새’도 이곳만의 특징이다. 장비를 다루거나 공간을 활용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거의 모든 활동이 자율적이다. 각자 순서를 지켜 장비를 사용하고, 이용 후 정리정돈은 기본이다. 매니저들의 별다른 안내가 없이도 규칙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성수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한 시니어 이용자가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이날 성수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만난 이용자 곽재서(65)씨는 “평생 목공만 해온 입장에서 봤을 때 이런 공간은 그야말로 획기적”이라고 했다. 인생이 메이킹의 연속이었던 곽씨에게 ‘만듦’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만든다’고 생각하면 힘들고, 번거로울 것 같지만 운동 같은 취미보다 스트레스 해소에 더 도움이 됩니다. 학생들에겐 집중력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죠. 부모와 자식이 힘을 합쳐 무언가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가족 간의 소통과 화합에 그보다 좋은 일이 없죠. 모쪼록 이런 공간들을 통해 메이커 문화가 활성화되고, 많은 이들이 만드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화 예고: 대한민국 메이커 스페이스를 가다③ 재활용? 아니 이젠 새활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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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고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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