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동, 압록강, 그리고 그들의 시작
#1 단동, 압록강, 그리고 그들의 시작
2018.10.05 17:55 by 지적인 프로젝트

지난주 지나치게 거창한 프롤로그로 불특정 다수의 어그로를 끌었음에도 정작 본편의 행방은 묘연한 까닭에 각계각층의 지탄과 독촉이 끊이지 않았던 터, 이제 본격적인 시리즈를 시작하는 바입니다. 중국 단동에서 있었던 23일의 행적을 3인칭 시점으로 다룹니다. 문체의 다양성과 문학적 재미를 꾀하기 위한 목적에서 작가의 신원은 공개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1회 연재를 목표로 하되, 그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등장인물>

윤상근

-1986년 경기 고양 출생. 성인이 되자마자 홀연히 미국으로 떠남. 뉴욕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다 돌아와 난데없이 고양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아주 잠시 함. 현재는 고양시 사람공동체 리드미 2대 대표를 역임 중이며, 놀기 위한 삶을 구현하는 데 모든 것을 헌신하고 있음. 삼국지를 열 번 넘게 읽었지만 많이 상대해도 괜찮음.

신지혜

-1987년 부산 출생. 통영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 틈나는 대로 사회과 부도를 펼쳐보며 서울에서의 삶을 꿈꿨음. 결국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 입성에 성공했지만 6년 만에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깨닫고 서울을 떠나 경기도 고양시에 정착함. 21살부터 진보정당 가입과 함께 왕성한 사회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중. 부드러운 외양 이면에 엄청난 전투력과 HP를 지닌, 타고난 투사.

김동욱

-1987년 경기 고양 출생. 군인으로서의 삶에 발을 들였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돌연 민간인으로 복귀함. 그 이유는 본인밖에 모름. 아직 물이 빠지지 않아 모든 행동거지에 각이 잡혀있음.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으나 힘으로 해결하는 일에 워낙 탁월함을 보임에 따라 물리적인 업무에 최적화돼 있음. 이번 단동 프로젝트의 최대 수혜자.

이창희

-1983년 서울 출생. 8년간의 국회와 청와대 출입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현재는 더퍼스트미디어에서 편집을 하지 않는 부()편집장을 맡고 있음. 하나에 꽂히면 정신 못 차리는, 이미 이 시대에는 흔해빠진 캐릭터. 못 하게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DNA를 지녔음. 오늘은 어디서 무엇을 해야 재미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아침을 시작함.

김경윤

-1964년 서울 출생. 지적인 프로젝트의 맏형이자 스승이자 지식 담당. 중년의 인문학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심상치 않은 외관으로 인해 입출국 심사 시간을 심하게 잡아먹는 캐릭터. 조선시대였다면 장원 급제를 하고도 남을 지식과 통찰을 보유했음. 허나 동시에 욕설을 비롯해 음담과 패설을 넘나드는 언어 구사의 1인자.

나경호

-1980년 서울 출생. 짜장면 한 그릇으로 포섭이 가능한 불혹의 백수.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기나긴 시간 동안 솔로부대원으로 복무 중.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매력을 지녔음에도 탈영이나 전역에 대한 본인의 의지가 없음. 기본적으로 상당히 게으르나 신체 부위 중 입 하나만은 무척 부지런함. 백수인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경향이 몹시 과한 탓에 주변의 탄식을 자아내곤 함. 하지만 알고 보면 그림과 웹디자인 분야에서 경이로운 실력을 가진 금손.

지적인 프로젝트의 기원이 된 술자리.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경호, 창희, 경윤, 지혜, 동욱.(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지적인 프로젝트의 기원이 된 술자리.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경호, 창희, 경윤, 지혜, 동욱.(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아니 근데, 거긴 정말 뭐가 있긴 있는 거야?”

뒷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좌석 의자를 뒤로 젖힌 상근이 말했다. 이미 비행기에 올랐음에도 일말의 의구심은 가시질 않는 눈치다. 서른이 넘도록 가 본 적 없는 중국, 그것도 북한과 맞닿은 도시 단동이라니. 호기롭게 따라나서긴 했지만 그곳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 어제 먹었던 곱창보다 맛있는 것이라도 있다는 건가.

있지. 평양냉면. 슴슴한 여기 냉면 말고 북쪽에서 먹는 오리지널 버전. 근데 뭐든 대수겠나. 압록강 바라보면서 한잔 기울이면 그걸로 된 거지.”

가장 연장자인 경윤의 마음은 이미 단동에 가 닿아있었다. 이 정도의 멤버라면, 이런 조합이라면 뭐가 나와도 나올 것이란 확신. 평생을 인문학에 투신한 그의 촉이 활주로로 이동하는 기체와 함께 꿈틀대기 시작했다.

동욱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듯 연신 티켓만 만지작거리며 중국 승무원들을 훑어본다. 뒤늦게 합류를 결정한 터라 마음의 준비 같은 건 집에 두고 온 그다. 바로 옆에 앉은 지혜는 야무지게 입국 신고서부터 작성하고는, 기내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창희는 한국에 혼자 남게 된 경호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받지 않는다.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신 모양이다. 거듭된 권유에도 한사코 합류를 고사한 그였다. 자신은 초한지에서 유방이 이끄는 한나라군의 병참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겠다나 뭐라나. 막상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후회막심한 기분으로 밤새 통음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5명은 중국으로 떠났고, 1명은 한국에 남았다. 각자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무 것도 정하지 않은 채로. 모든 것은 모든 일정이 끝난 뒤에 생각하기로 했다.

중국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대련 공항. (왼쪽부터) 지혜, 상근, 경윤, 창희.(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중국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대련 공항. (왼쪽부터) 지혜, 상근, 경윤, 창희.(사진: 더퍼스트미디어)

비행시간은 생각보다도 짧았다. 서해바다 2만 피트 상공에서의 감상 따윈 느낄 새도 없었다. 인천을 출발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일행은 중국 대련 공항에 도착했다. 김포 공항보다도 작은 공항에 100명도 되지 않는 인원이 내렸다. 입국 수속은 당연히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항 게이트를 나서자 사방에서 매캐한 담배 연기가 일행을 반긴다. 금연구역 따위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스모킹 프리존이다. 동시에 한국에선 쉽게 접하기 어려운 데시벨의 고성이 고막을 짓누른다. 중국 땅을 밟았음을 실감하는 순간, 경윤이 말한다.

뭐해? 다들 한 대 피워야지!”

제각기 담배를 물고 생경한 풍경을 훑는 사이, 바쁜 사람은 창희 하나뿐이다. 이들 중 유일하게 중국어가 가능한 그는 택시기사와 흥정을 거쳐 일행을 택시에 태운다. 단동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다.

중국 대도시 치고는 비교적 깔끔한 대련의 풍경이 일행의 시야에 들어온다. 동시에 자유’, ‘강건’, ‘화합따위의 단어가 들어간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붉은색 선전구호가 곳곳에 눈에 띈다. 중년의 택시 기사는 올해 여름이 난생 가장 더웠다며 묻지도 않은 말을 건넨다. 창희가 한국 역시 그랬다는 대답을 하자 곧 지구가 망하려는 징조라며 혀를 끌끌 찬다.

대련 기차역의 웅장한 모습.(사진: 더퍼스트미디어)
대련 기차역의 웅장한 모습.(사진: 더퍼스트미디어)

대련 기차역의 규모는 공항보다 못해도 4배는 컸다. 기차역이 공항보다 큰 나라가 몇이나 될지에 대한 담론을 주고받는 일행을 뒤로 하고 창희는 매표소로 향한다. 어째 할배들을 데리고 해외 여행을 다니는 한 TV프로그램에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다.

미리 예매해둔 표를 발권하는 데만도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다. 더구나 한없이 허술한 주제에 사람을 귀찮게만 하는 보안 검색에 붙들렸다. 여기에는 경윤의 범상치 않은 행색이 원인을 제공했다. 언뜻 보아도 100kg은 훌쩍 넘는 풍채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철지난 반투명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매서운 눈, 왕년의 월남 참전용사 못지않은 검붉은 피부. 중국 공안들은 경윤을 불러세워 짐을 뒤지면서도 경계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이다.

귀찮은 마음에 몇 마디 쏘아 붙이니 그냥 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중국이란 나라는 늘 이런 식이다. 어디를 가나 시간적 여유를 두지 않으면 여행 자체가 팍팍해지는 신기한 나라다. 덕분에 일행은 근사한 식사를 포기한 채 KFC에서 요깃거리를 사들고 서둘러 기차에 올랐다.

수령 과정이 쉽지 않았던 단동행 기차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지혜, 경윤, 상근, 창희.(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수령 과정이 쉽지 않았던 단동행 기차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지혜, 경윤, 상근, 창희.(사진: 더퍼스트미디어)

단동행 기차는 겉모습이 한국의 KTX와 닮았다. 속도도 시속 300km를 넘나든다. 개혁개방의 결과로 중국의 철도 인프라는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그러한 기술 발달의 속도를 시민의식이 좀처럼 따라가지 못해서 문제지만. 어쨌든 교환학생 시절 수도 없이 기차를 탔던 창희를 제외하고, 나머지 4명은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 마냥 들떴다. 창밖으로 드넓은 대륙의 논과 밭만 지겹도록 펼쳐졌지만 다들 개의치 않고 떠들기 바쁘다.

2시간 30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일행은 드디어 목적지인 단동에 도착했다. 높이가 10m는 돼 보이는, 중국의 국부(國父) 마오쩌둥 동상이 한 팔을 치켜들고 서서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동시에 부동산 투자를 종용하는 홍보물이 일행의 손으로 날아든다.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단동의 부동산에 한국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는 뉴스는 사실이었다. 모기처럼 귀찮게 달라붙는 이들을 뒤로 하고 일행은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드디어 단동 도착. (왼쪽부터) 경윤, 창희, 상근, 동욱.(사진: 더퍼스트미디어)
드디어 단동 도착. (왼쪽부터) 경윤, 창희, 상근, 동욱.(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숙소를 향해 5분여를 걸었을까.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자 앞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압록강이다. 흡사 여의도 둔치에서 바라보이는 한강과 닮았지만, 그 의미는 너무도 달랐다. 일행은 걷다 말고 우두커니 서서 난생 처음으로 압록강과 철교를, 그리고 그 너머의 북한 땅을 바라봤다. 모두가 말을 잃고 앞을 응시하고 있는 그때, 육중한 소리를 울리며 기관차 한 대가 철교를 넘어 달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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