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그들이 고향으로 내려가 창업한 이유는?
잘나가던 그들이 고향으로 내려가 창업한 이유는?
2018.10.23 16:26 by 제인린(Jane lin)

중추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23일,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百度) 신원(新闻) 상단에 ‘베이징대, 칭화대에서 고향으로!’'라는 제목의 기사 한 편이 실렸다. 해당 포털 사이트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노출시켜 오고 있는데, 인터넷에 접속한 지역에 따라서 그 지역에 뉴스가 전달되는 형식이다. 그런데, 해당 기사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이용자 대상이 아닌, ‘국내’ 소식 편을 통해 14억 중국 인구에게 출고됐다. 그만큼 중요성이 높다는 얘기다. 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지난 2010 칭화대를 졸업한 미모의 여성 ‘마이징’씨가 졸업 후 대도시에서 취업을 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 인재 양성을 위한 서원을 건립하는 등 농촌 교육 사업에 헌신했다는 것이다. 언론이 그녀의 삶을 조명한 이유는 석사학위를 마친 뒤 6년 동안 도시에서 연구원으로 일해왔던 그가 결혼 후 두 자녀를 출산하고 홀연히 시골로 떠난 이유가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집 장만이 어렵기로 유명한 베이징에 이미 부동산을 소유했을 정도다. 그녀의 귀향 선언이 더욱 의아했던 이유다.

현지 언론은 그런 부부에게 ‘신하방운동’의 선구자라는 칭호를 붙였다. 그런데,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인 청년은 비단 마이징 가족뿐 만이 아니다. 비슷한 예로 왕 선생의 사연도 꽤 유명하다. 베이징대학교 철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곧장 자신의 고향인 산시성으로 귀향, 그 곳에서 초등생을 대상으로 중국 전통 문학을 교육하는 30대 초반의 창업자다. 일명 ‘왕 선생의 문학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왕레이씨는 서양 교육 일변도를 걷는 현재 중국 대도시의 교육 현실을 지적하며 인성과 감성을 키우지 못하는 획일적 교육 시스템 대신 자연 속에서 문학과 예술 교육에 헌신하는 인물이다. 현지에서는 ‘왕 선생’이라고 불리는 그의 소식은 곧장 초등생 자녀를 둔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 방학 때면 매번 그의 수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학부모들과 학생들로 ‘만석’을 이룰 정도다.

그런데, 그저 단순한 ‘신하방운동’의 지식인처럼 보이는 이들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들은 고향에서 ‘사교육’ 분야의 스타트업을 시작한 셈인데, 그들의 수익이 월평균 수 천 만원에 이른다는 점에서 그들은 ‘명예’와 ‘돈’을 두 손에 쥔 성공한 젊은 청년 사업가가 분명하다.

그들의 사연을 자세히 살펴보자.

 

| 인문학의 저변확대를 위해, 왕 선생의 중국 문학 교실

3년의 도전 끝에 베이징대학교 철학대학원 입학에 성공한 왕레이(王磊ㆍ32) 씨는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돌연 도시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그가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겪었던 고생을 지켜봤던 부모와 친구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선택이었다. 2017년 졸업 직후 고향인 산시성으로 돌아갔는데, 불과 1년 만에 중국 문학을 교육하는 민간 교육 업체 창업자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사실 그의 사연이 알려진 계기는 그의 아버지가 가진 독특한 이력도 한 몫 했다. 그의 아버지는 산시성 일대에서 알아주는 건축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데, 지난 1980~90년대 건축붐이 일었을 당시 큰 돈을 손에 쥐었다. 그런 그의 가족에게 단 한 가지 부족했던 것이 바로 ‘철학이 있는 삶’, ‘인문학적인 삶’이었다. 많은 돈을 소유할수록 고등교육에 대한 갈증을 느껴야 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왕 선생에게 오래 전부터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교육을 받고 자란 왕 선생은 어릴 적부터 줄곧 베이징대 입학을 꿈꿨던 것인데, 그가 중국 최고의 인문학 교육 기관에서 학위를 받은 후 고향인 산시성으로 돌아가 후학 양성을 선언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일반화된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시골 농촌의 아동에게 자신이 배운 교육을 전수하고, 여기에 중국 전통 문학을 함께 교육한다면 인성이 살아있는 이상적인 교육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일찍부터 인문학에 많은 애착을 보였다. 산시성에 대형 공동 주택을 건설하고, 이곳에서 돈 없는 중국 전통 문학가들을 초청한 뒤 1~2개월에 걸친 기간 동안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며 자유로운 문학활동을 후원하기도 했다. 사실 중국에서도 인문학, 순수 예술 등을 전공한 이들의 경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상당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왕 씨의 아버지가 오래 전부터 인문학자를 돕기 위한 사업을 지원해왔던 것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왕 선생의 귀향 창업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왕선생 문학 교실’은 총 3개월 코스로 진행된다. 강의를 수강하고 싶은 학생은 온라인으로 수강 신청할 수 있으며 수업료는 1개월 평균 2500~3500위안(한화 약 40만원~57만원) 수준이다. 그가 수업하는 곳 역시 앞서 소개한 산시성 소재의 대형 공동주택이다. 마치 디즈니랜드에 등장하는 것 같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이 성에는 무료로 숙식을 지원받으며 오랜 기간 순수 문학과 예술 활동을 하는 문학가들이 상주해 있다. 이 때문에 수강생들은 자연스럽게 예술가들이 빚은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왕선생 문학 교실의 창업자 왕레이씨
왕선생 문학 교실의 창업자 왕레이씨(사진: 제인린)

 

| "아이들은 맨 딸을 밝으며 자라야 한다" 청송서원 창업자 마이징씨

허베이성의 우다오허촌(五道河村)의 오래된 고택이 서원으로 개조될 지난 2010년 무렵, 당시 인근 주민들은 베이징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줄만 알았던 마이징(梅)이 귀향 후 무슨 일을 계획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사업성 없는 아이템을 가지고 비전 없는 귀향 창업을 시도했다면서  “곧 망하고 도시로 다시 떠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마이징이 창업한 지 2년이 지난 현재, 그의 ‘청송서원’은 이 일대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교육 업체이자 도서관 기능을 갖춘 곳으로 성장했다.

마이징은 청송 서원 창업을 계획한 이유에 대해 “9살 때, 아버지가 처음으로 베이징에 데리고 가신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도시 아이들이 보고 내내 부러워했다. 내가 사는 고향에는 공교육 기관이 부실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학교가 끝난 후 아이들과 함께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청송 서원은 공익적 기능 갖춘 도서관으로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곳에는 총 2만여 권의 서적이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은 사비로 구매한 것이다. 나머지 절반의 서적은 칭화대학교 학우들로부터 기증받았다. 대부분의 서적은 청소년을 위한 것들로 청송 서원을 찾는 고정 독자는 약 400여명에 달한다. 일부 서적 가운데는 농업 관련 전문 지식을 담은 책도 있어서 농민들의 발길이 자주 이어지고 있다. 이 곳에 설치된 무선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 찾아오는 마을 주민들도 꽤 많다.

그가 운영하는 서원에서는 시간당 수업료 100위안(한화 약 1만6000원)을 지불하면 누구나 다양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현재는 청소년을 위한 서예와 국학, 미술 등의 수업을 진행 중이다. 물론 해당 수업료가 저렴한 수준은 아니지만, 수강생의 경제적인 수준을 고려, 수강 신청 시 가정 환경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는 수강생에 대해서는 비용을 일부 감면해주고 있다. 영유아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부서도 개설했는데, 현재 총 10명의 수강생이 있으며 그 가운데 두 명의 아이는 마이징의 자녀다. 마이징은 “아이들이 시골 생활의 장점을 인지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외부에서 활동하면서 4계절 변화를 직접 체험하고 생명과 수확의 기쁨 등을 알아가는 것”이라며 “틈만 나면 유아반 아이들을 들판이나 자연림으로 내보내는 이유도 그래서다”라고 설명했다.

 

/사진: 제인린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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