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황리에 연재 중인 <지적인 프로젝트>의 외전(外傳)이자 프리퀄(prequel)이자 시퀄(sequel)입니다. 본편과의 앙상블 혹은 마리아주를 통해 보다 더 풍성한 스토리를 독자들께 전달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마련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38년전인 1780년 6월 24일. 연암 박지원은 팔촌형이자 중국으로 가는 사신단의 정사(正使·총책임자)인 박명원의 자제군관으로 평안도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로 들어갔다. 그 유명한 ‘열하일기’의 시작이다.
당시는 한여름 장마철이었다. 압록강의 물은 불었고, 물결은 거셌다. 이미 정해놓은 일정에서 열흘이나 넘게 지체된 행렬이었다. 마음은 달렸으나 몸은 더뎠다. 계획된 방향으로 갈 수 없었고, 같이 건너야 할 일행들이 물결에 뿔뿔이 흩어졌다. 그 와중에 박지원은 수역 홍명복에게 묻는다. 국경을 넘으며 던진 최초의 질문이었다.
“자네, 도(道)를 아는가?”
실로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정신없는 상황에서 이 무슨 철학적인 질문이라니. 홍명복은 당황했고, 엉뚱한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궁색한 답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박지원은 말한다.
“압록강은 바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계가 되는 곳이야. 경계란 언덕이 아니라 강물이네. 무릇 천하 인민의 떳떳한 윤리와 사물의 법칙은, 마치 강물이 언덕과 서로 만나는 피차의 중간과 같은 걸세. ‘도’라고 하는 것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강물과 언덕의 중간 경계에 있네.”
2018년 9월2일 일요일, 나는 단동의 호산장성(虎山長城) 꼭대기 망루에서 압록강 너머를 바라보았다. 바로 저곳이 박지원이 최초의 철학적 질문을 던진 곳이리라. 박지원이 되살아나 내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자네, 도를 아는가? ‘도’라고 하는 것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강물과 언덕의 중간 경계에 있네”
이 말을 듣고자 50대 중반 거구의 사나이가 그 험준한 호산장성을 기어올라 망루 꼭대기에서 저 강물을 바라보았다면 이유가 되겠나 싶다. 박지원이 건넜던 바로 그 강물을 바라보며 박지원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 그곳에서 나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길을 아는가? 잃었는가?”
9월1일, 4명의 청년과 함께 비행기와 기차를 타고 바다와 산을 건너 단동(丹東)에 도착했다. 둘째 날 아침, 전날의 취기가 지워지기도 전에 호산장성으로 가자고 고집을 피웠다. 다행히 일행은 순순히 나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나의 ‘열하일기 여행’이 시작됐다. 마음 같아서는 신의주 통군정에서 시작하고 싶었으나 그곳은 분단의 땅, 금기의 땅이었다. 내가 시작할 수 있는 최선의 장소는 바로 호산장성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압록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으로 떠들썩하지만 청년들은 방황하고 있다. 길을 잃은 것이다. 청년뿐만 일까? 남한과 북한, 어른과 아이,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 제국과 약소국. 그들은 과연 길을 알고 있을까? 그 같은 길 찾기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 연암이 던졌던 질문을 다시 떠올려본다.
압록강 단교에 오른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폭격으로 끊어진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하려, 무엇을 위해 이 다리에 올랐는가. 배 위에서 조선과 청나라를 동시에 굽어본 박지원처럼, 나는 다리 위에서 신의주와 단동을 동시에 바라본다. 나는 지금 ‘중간 경계’에 서 있다. 그 경계에 서는 것으로 길 찾기를 시작해보자 다짐하며.
1964년 서울 출생. 현 경기 고양시 거주. 중년의 인문학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심상치 않은 외관으로 인해 다양한 오해를 받음. 엄청난 지식과 통찰을 보유했으나 동시에 욕설과 음담과 패설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언어 구사의 권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