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우정이 하나되는 곳
음식과 우정이 하나되는 곳
2018.11.29 20:35 by 김경윤

사해가 모두 동포인데

누구에게는 후하게 하고

누구에게는 박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연암과 만난 비치의 말

 

#1

사신 일행을 따라갔던 박지원은 청나라 심양에서 710일부터 14일까지 닷새간 머문다. 첫날 하루 정도로 시차 적응을 마친 박지원은 이튿날부터 한밤중에 숙소를 몰래 빠져나와 심양의 젊은이들과 예속재(藝粟齋)에 모여 밤새 술을 마시며 필담을 나누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 기록은 속재필담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예속재는 중국의 수재 5명이 동업으로 운영하는 골동품 상점이었다. 여기에 가상루(歌商樓)라는 비단집의 여섯 선비도 대화에 참여했다. 연암과 중국인 11명의 밤샘 필담은 그렇게 탄생했다.

박지원은 자신이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름·출신·용모 등을 기록했는데, 그 기록이 사뭇 자세하다. 오늘날 흔히 명함 한 장 주고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29세의 전사가, 39세의 이구몽, 24세의 목춘, 31세의 온백고, 40세의 오복, 자식을 다섯이나 둔 35세의 비치, 47세의 배관 등이 연암과 주로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연암의 나이가 44세이니 이 또한 세대를 넘나드는 대화였다.

 

#2

밤샘 대화에는 음식이 필수. 전사가가 일행을 위해 마련한 음식이 밤 10시쯤에 나왔는데, 연암은 음식 목록을 상세히 기록한다. ‘떡 두 쟁반, 양 내장탕 한 동이, 삶은 거위 한 쟁반, 찐 닭 세 마리, 찐 돼지 한 마리, 계절에 나는 과일 두 쟁반, 임안주 세 병, 계주주 두 병, 잉어 한 마리, 밥 두 솥, 나물 요리 두 쟁반, 모두 은자 열두 냥 어치’. 박지원의 꼼꼼함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은 모여 가족사부터 골동품 감식 방법, 조선과 청나라의 술·노래·서적 비교, 치안 경비 등에 대해 물 흐르듯이 대화를 이어갔다. 밤을 새워 이야기하느라 꾸벅꾸벅 조는 이도 더러 있었다. 연암 역시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코를 골며 잠이 들기도 했다. 연암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한다.

잠시 뒤에 이웃집 닭들이 서로 홰를 친다. 나도 매우 고단하고 술에 취해 의자에 잠시 기댔다. 이내 코를 골며 바로 잠이 들었다가 날이 밝을 무렵에야 깜짝 놀라 일어났다. 모두들 서로 침상에 기대어 베기도 하고 눕기도 했는데, 의자에 앉은 채 자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혼자 일어나 술 한두 잔을 마시고, 배생을 흔들어 깨워 간다고 말하고는 즉시 숙소로 돌아왔다. 날은 이미 동이 트고 있었다.”

이 다음 날에는 가상루에 모여 또 밤샘 대화를 했고, 이 역시 연암은 상루필담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박지원의 여행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난다. 사람을 만나 우정을 만드는 것. 박지원의 강철 체력은 우정 만들기에 힘을 쏟기 위한 준비였다.

 

#3

그로부터 200년이 넘게 지난 현재, 4명의 젊은이들과 떠난 단동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북한음식을 직접 경험하면서 북쪽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었다. 뭐 그런 것을 여행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느냐고 지적하는 이도 있겠으나, 낯선 사람과 말을 섞을 때에 음식만한 것이 또 어디 있으랴.

91일 단동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찾아간 곳은 류경식당. 단동에서 가장 유명한 북한 식당 중 하나다. 과연 소문대로 규모가 크고,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다. 음식을 선주문하고 나서야 식탁으로 안내된다. 사실 우리의 목적은 음식에 앞서 사람이기에 주문부터 도움을 요청했다. 남쪽 말이 들리자 북한 종업원들의 낯빛에는 이내 긴장이 감돈다. 주로 중국인과 재중 북한인들이 고객들이라 남한 손님이 많지 않은 듯하다. 얕보이기 싫은 마음에 비싼 음식들을 주문한다.

서비스는 정중하고 절도가 있으나 기본적으로 말 섞는 것을 경계한다. 경계를 풀 방도를 찾아야 했다. 식탁에 나온 냉면을 보고, 먹는 방법을 일부러 물어본다. 냉면이야 남쪽에서도 수 백 그릇 먹어보았으니 방법을 모를 리야 없건만, 단지 말을 걸어보고 싶은 수작에서다. 종업원 한 명이 방법을 설명하며 손수 알려준다. 고명과 면을 섞기 전에 따로 면을 들어 올린 뒤 면 위에 식초를 들이붓는다. 과하다 싶을 정도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많은 양의 식초를 면에 뿌리고 고명과 양념장과 면을 뒤섞는다. 일행들은 그 냉면을 조금씩 맛본다. 평소에 먹던 슴슴한 맛과 달리 간이 적절하고 맛있다. 그러자 종업원이 묻는다.

면을 자르게 가위를 가져다 드릴까요?”

아닙니다. 면을 자르면 목숨이 짧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르지 않고 먹겠습니다.”

그렇다면 남조선 사람들은 수명이 짧겠습니다.”

이전에 왔던 남한 관광객들이 버릇처럼 가위로 면을 자르고 먹었었나보다. 종업원의 응수에 웃음꽃이 핀다. 됐다. 말문이 터졌으니 이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아뿔싸. 음식 사진을 찍는 척하며 종업원의 모습을 담으려는 우리 일행의 모습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이내 강압적인 태도로 사진촬영 금지를 통보한다. 분위기가 다시금 무거워진다. 이내 시작된 북한 공연을 구경하며 분위기를 전환해보려 했으나, 이야기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그저 겉도는 이야기만 몇 마디 맴돌고 말았다.

첫째 날의 대화 시도는 그렇게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려는데, 책임자 급으로 보이는 종업원이 사진 촬영을 해주겠다 제안한다. 냉랭하게 응대한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나보다. 5인이 나란히 늘어선 독립투사 콘셉트의 사진은 그렇게 탄생했다.

 

#4

다음 날 저녁이 됐다. 전날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엔 작고 조촐한 북한 식당을 찾았다. 전날의 식당 규모가 크고 규율이 엄한 데다 상호 감시도 심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었다고 판단했다. 이번에는 압록강변 도로 가에 위치한 송도원 식당을 찾았다.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는 작은 식당이다. 식당 분위기도 류경식당에 비해 훨씬 자유롭다.

식당에서 가장 값비싼 신선로와 소고기 요리, 대동강 맥주와 평양 소주를 주문했다. 식당 한 구석에 작은 무대가 설치돼 있어 공연 여부를 묻자 일요일이라 공연은 따로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차라리 다행이다. 공연을 보느니 종업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욱 소중하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손님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 두 테이블 있었던 손님들도 이내 빠져나갔다. 이제 손님은 오로지 우리뿐이었다. 번역하지 않아도 서로 말이 통하는 두 나라의 동포들이 있을 뿐이다.

내일이면 다시 한국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니 오늘이 단동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음식이 떨어질 때면 다시 음식을, 술이 떨어질 때쯤이면 다시 술을 주문했다. 그렇게 먹은 음식이 도합 10여종, 마신 술이 소주로만 쳐도 15병이 넘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고, 많이 마셨으나 일행은 얼굴만 상기됐을 뿐 모두가 멀쩡했다.

처음에는 경계심을 보이던 북한 종업원들도 우리의 모습이 신기하고 좋았는지 차츰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모여들어 한두 마디씩 이야기를 거든다. 남북의 관계 이야기, 고향 이야기, 음식 이야기, 단동에서의 생활 이야기로 조금씩 흥이 돋는다. 급기야 우리 일행 중 한 청년이 본인의 생일이라는 거짓말을 던져본다. 사실 생일은 전날이었지만 무슨 상관인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것을.

우리의 거짓말(?)에 종업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이윽고 아코디언이 등장하고, 갑작스레 노래가 시작됐다. 계획에도 팔자에도 없던 생일축하 공연이 급조돼 펼쳐진 것이다. 처음 듣는 북쪽의 생일축하 노래는 음정도 가사도 달랐지만, 그 마음만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생일축하 노래에 큰 박수를 치며 충분한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우리들의 예상과 달리 찔레꽃그리고 고향의 봄이 연주됐고, 남과 북은 같은 노래를 목 놓아 불렀다. 마지막 노래인 다시 만납시다가 울려 퍼질 때, 우리 모두를 휘감은 뜨거운 그 무엇의 온도는 최고조에 달했다. 저마다 붉은 눈시울에서 터져 나온 농도 짙은 액체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생일축하 노래에 눈물을 감추지 못한 청년.(사진: 더퍼스트미디어)
생일축하 노래에 눈물을 감추지 못한 청년.(사진: 더퍼스트미디어)

그렇게 그 시각 송도원 식당은, 이제는 어떤 무슨 이야기든 하지 못할 것이 없는 곳이 됐다.

통일이 되면 남조선의 어느 곳에 가보고 싶습니까?”

한라산이 있는 제주도에 가고 싶습니다.”

남조선 음식 중에서 무엇이 제일 먹고 싶습니까?”

제주도에서 난다는 귤이 먹고 싶습니다.”

아까 전 생일축하를 받은 감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그 청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선언을 한다. 미래에 다시 꼭 단동을 찾아올 것임을, 그리고 그때엔 제주도 귤을 한 상자 가져와서 선사하겠노라고. 그때까지 잘 지내고 계셔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뜨거웠던, 송도원 식당에서.(사진: 더퍼스트미디어)
뜨거웠던, 송도원 식당에서.(사진: 더퍼스트미디어)

#5

어느새 영업시간은 종료됐고, 식사도 마무리됐다. 일행은 남은 돈을 더 털어 북한 담배를 한가득 샀다. 단동 길거리에서는 가짜 담배를 많이 판다는데, 이곳에서 파는 담배는 북한에서 직접 가져온 진짜 북한산이란다. 진짜면 어떻고, 가짜면 또 어떠랴.

모두들 말없이 담배연기를 내뿜었으나 속으로는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어서 통일이 되라고, 통일은 더디 되더라도 서로 교류하고 나누는 평화의 시대는 어서 오라고, 그래서 이국땅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먹고 마셨던 기쁨을 북녘 땅에서 맛보고 싶다고. 그때까지 서로들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자고.

이 소박한 꿈이 바로 통일이 아닐까? 통일은 명분과 당위가 아니라 삶 속에서 서로 기쁨을 나누는 생활로 와야 한다. 지도자들의 만찬장이 아니라 민중들의 조촐한 술상에서부터 와야 한다. 그렇게 우리 일행은 송도원 식당의 불이 꺼지고도 그 주위를 맴돌며 곱씹고 또 곱씹었다.

 

필자소개
김경윤

1964년 서울 출생. 현 경기 고양시 거주. 중년의 인문학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심상치 않은 외관으로 인해 다양한 오해를 받음. 엄청난 지식과 통찰을 보유했으나 동시에 욕설과 음담과 패설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언어 구사의 권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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