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예술이 되다’ 청년 예술가들의 창업 현장 ‘다펀촌’
‘짝퉁, 예술이 되다’ 청년 예술가들의 창업 현장 ‘다펀촌’
2018.11.30 02:26 by 제인린(Jane lin)

중국의 ‘카피 문화’는 정평이 나있다. ‘샤오미(小米)‘로 대표되는 IT기기부터, 우리나라의 TV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라한 각종 예능 프로, 일본의 패스트푸드점과 체인점 등을 중국식으로 재해석한 것까지… 일상 속에서 다양하게 찾을 수 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카피’ 상품의 다양한 종류와 방대한 양은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최근 들어 중국산 전자 기기의 판매율이 삼성 수출 물량의 수준을 크게 넘어섰다는 언론보도는 그들이 생산한 ‘짝퉁’ 제품을 더 이상 우습게 여길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중국의 스마트폰이 아이폰 시리즈의 판매량을 넘어선 것은 이보다 더 이전 일이다.

이 같은 현상은 그 동안 ‘메이드인 차이나’ 제품에 ‘가짜’라는 프레임을 씌웠던 이들조차 중국산 제품이 가진 합리적인 가격과 기능 등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런 ‘카피’의 경험은 여러 시장에 적용되며 확대되고 있다.

‘예술 작품’에 대한 복제도 그중 하나다. 창작의 고통을 수반하지 않은 복제 예술품은 ‘가짜’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가짜’의 역사와 규모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면 어떨까?

 

중국 광둥성 선전 경제특구에 자리한 ‘다펀촌’ 예술특구. 늦은 밤 붉을 밝힌 화공들이 작품활동에 여념이 없다.
중국 광둥성 선전 경제특구에 자리한 ‘다펀촌’ 예술특구. 늦은 밤 붉을 밝힌 화공들이 작품활동에 여념이 없다.

중국의 예술품 복제 시장은 ‘문제의식’을 발판 삼아 성장했다. 예술을 전공한 졸업생들의 상당수가 취업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발전한 게 바로 ‘복제’의 영역이다. 실제로 복제품 시장의 확대는 젊은 청년 예술가들에게 예술활동과 생계를 동시에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활력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형태의 산업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예술 창업구를 조성했다는 점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사례로 꼽힌다. 바로, 중국 동부 해안가 지역에 자리한 도시 선전의 ‘다펀촌’에 대한 이야기다.

 

365일,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다펀촌의 모습. 1만 여명의 화공들의 예술혼이 담긴 작품이 골목 곳곳에 배치돼 있다.
365일,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다펀촌의 모습. 1만 여명의 화공들의 예술혼이 담긴 작품이 골목 곳곳에 배치돼 있다.

선전이란 도시는 중국 정부가 1980년대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며 가장 먼저 경제특구로 지정된 곳이다. 그로 인해 광둥성의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곳이 지난 40여년을 지나는 동안 ‘상전벽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가 됐고, 현재는 베이징, 상하이에 이어 중국의 3대 도시로 꼽힐 만큼 성장했다. GDP 규모와 인구 증가폭, 산업 규모 및 해외기업의 투자 등의 수치를 고려했을 때 이미 광둥성의 성도인 광저우를 넘어섰다는 평가다. 그리고 이런 경제 발전과 함께 수반되는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기적도 선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다펀촌 또는 다펀 예술마을로 불리는 이 일대는 선전(深圳)시 룽강(龍崗)구 부지제다오(布吉街道) 관할의 작은 마을이다. 총면적 0.4km², 원주민의 수는 300여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 동안 값 싼 지대와 항구를 인접하고 있다는 지역적 특성에 반한 가난한 예술가와 화공들이 이 마을로 모여들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난 1989년, 이 곳에 가장 먼저 유화 전문 상점을 낸 사람은 홍콩 출신의 화공 ‘황장’씨였다고 한다. 고향인 홍콩과 가까운데도, 임대료 등이 저렴하다는 특징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겨우 20여명의 화공을 데리고 시작한 사업이 대박을 터뜨리자,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기회의 땅’이 된 것이다.

 

다펀촌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
다펀촌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

특히 덩샤오핑 정권 당시 가속화됐던 선전 일대에 대한 대규모 투자 분위기는 다펀촌에 예술을 전공한 창업자들이 몰리게 하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 예술과 창업이 접목된 새로운 형태 창업구가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전 세계 유화 작품의 약 60~70%에 달하는 제품이 이 일대를 통해 유통되기 시작했다. 다펀촌에서 생산되는 유화 작품은 중국 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현재 다펀 유화 마을에는 유화 관련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상점의 수가 1천 500여 곳에 달한다. 각 상점을 직접 운영하는 이들 역시 대부분 미술을 전공한 청년 창업가들이다. 특히 이 일대에서 복제품 작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예술가들의 수는 1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워낙 많은 상점이 운영되다 보니 대부분 매우 소규모 형태다.

 

다펀촌에 위치한 유화 상점의 모습

다펀 유화 마을에서는 유화와 복제 예술품 가공 등의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거기에 중국화, 서예, 수공예, 조각, 액자, 물감 등을 하나의 사업으로 묶어 경영을 하고 있는데, 해당 마을의 사업은 이미 푸젠(福建), 광둥(廣東), 후난(湖南), 장시(江西), 홍콩, 마카오 등 지역까지 뻗어 나갔다

다펀촌이 생산해내는 경제적 효과는 가히 이 곳을 세계 제일의 유화촌이라고 칭할 만하다. 지난해 연매출액은 22억 위안(한화 약 3554억원)을 넘어섰다. 단순 계산으로 하면, 1인당 26만 위안(한화 약 4200만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것인데, 이는 4년제 대학교 졸업 후 국영 기업 또는 민영 대기업에 취업한 사회 초년생의 평균 연봉보다 대여섯배가 넘는 수준이다. 예술을 전공한 순수 예술가들이 가난할 것이라는 인식을 정면에서 반박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수치다.

최근에는 40여개국으로부터 작품에 대한 의뢰도 줄을 잇고 있다. 그 중에는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온 고객도 상당수다. 온라인을 통해서도 주문과 결제가 가능하고, 액자까지 진품과 동일하게 맞춰 해외배송하고 있다. 해외에 거주 중인 외국인 고객의 경우 직접 다펀촌을 찾아와 이미 완성된 작품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펀촌의 명성을 듣고 온라인을 통해 주문하는 이들도 상당하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해 다펀촌에서 팔려나간 작품 가운데 절반 이상은 해외로 수출됐다. 주요 수출국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일대였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중국 정부는 2004년 이곳을 '문화산업시범기지'로, 2006년 '중국에서 가장 창조적인 산업지역'으로 선정했으며, 2011년에는 이 일대를 예술가들을 위한 청년 창업특구로 연이어 지정했다.

 

미술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 다펀촌은 필수적인 방문 코스다.
미술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 다펀촌은 필수적인 방문 코스다.

이 분야에서 유명세를 얻은 이들 가운데는 ‘스타’로 불리며 수 십여 명의 문하생을 두고 상점을 운영하는 예술 창업가들도 존재한다. 화공이자 창업가인 젊은 예술가들은 이 일대에서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예술 작품을 생산해 낸다. 이 일대에서 생산되는 예술 작품의 수는 연평균 700~800만 장에 달한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현금으로 거래되는 작품까지 헤아릴 경우, 그 수는 1000만 장을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 곳에는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는 법이 없다. 마치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대규모 생산공장을 방불케 한다. 이러한 점은 이 곳을 관광지로 만들어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한 때는 일각에서는 이 곳을 짝퉁 예술 창업구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가운 시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긍정적인 시선으로 변하고 있다. 오히려 약 1만 명에 달하는 화공들이 그려내는 예술 작품을 통해 과거 소수에 의해 독점된 작품이 대중에게 확대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평가도 받고, 다펀 유화촌의 작품 속에는 소위 ‘원조’라고 불리는 것들과는 다른 ‘뭔가’가 있다는 칭찬까지 듣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히 ‘모사’가 아닌 스스로 창작한 작품만을 취급하는 스튜디오도 속속 생겨나고 있는데, 선전 시 정부는 이 같은 창작품 제작소에 대해서는 지원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사진: 제인린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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